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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Feb 28. 2023

HOT를 아는 것도 큰 공부입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이런 말들을 거꾸로 돌려보면


'공부 말곤 쉬운 게 별로 없었어요.'

'공부 말곤 재미난 게 별로 없었어요.'

라고 볼 수도 있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과거 최초 수능 만점자가 HOT멤버 중 누구를 가장 좋아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HOT가 뭐죠?'

라고 반문한 인터뷰에 그것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공부만 파고들고, 공부에 더미에 묻혀, 공부를 먹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공부 이외의 세상은 무지로 가득하다.

공부로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의 얄팍함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삶은 여러 조각이 만나고 짜여 하나의 완성품이 되는 아름다운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예술품을 '공부'라는 한 조각으로 채우기엔 인생이라는 작품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다양해 그 조각을 늘이려고 억지로 잡아당기다 보면 결국 찢어지고 말 것이다.


내가 서울대에서 만난 소수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처럼 한국 교육 시스템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서울대 입학 후에 상당한 기간 동안 그동안의 길들여짐을 위해 겪은 모든 고통과 희생을 상쇄하려는 듯이 한동안은 흥청댐에 빠지곤 했다. 매일 술을 마시고, 피지 않던 담배를 피우고, 수업은 빠지기 일쑤다.


그들에게 공부란 그 자체의 의미를 갖는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위한 도구이자 수단으로써의 의미 밖에 갖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란 그들에게 견디기와 버티기의 대상이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울대 입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공부'란 더 이상 그들에게 수단으로써의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그렇게 자신을 흥청거림에 내던지는 것이다.


12년 동안 학교를 통해 배운 모든 것들이 의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서울대학교에서 4년 동안 배운 것보다 고등학교 3년 간 배운 게 훨씬 더 많고,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난 배움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수단으로써의 '공부'에만 길들여졌기에 배움을 즐기지 못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공부' 외의 삶에서 배우는 '공부'를 너무나 무시하며 살았다.


HOT가 누구인지 알고, 그들의 노래에 즐거움을 느끼고, 그들을 사랑한 그 시대의 사람들과 연대를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은 모두 '삶의 공부'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공부에만 올인한 이들은 그런 '삶의 공부'를 놓치거나 등한히 하거나, 무시하기까지 한다. 당장 나의 시험성적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고 만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었지만, 공부를 위해 난 그림 그리는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피아노 치는 것이 좋았지만, 고등학교 때는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책 읽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공부'라는 미명 하에 철저히 소외되고 내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난 '공부'에 특화된 사람으로 변해갔고, 그런 특화에 걸맞게 한국에서 최고의 명문대로 손꼽히는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순간 느낀 짜릿한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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