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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Apr 03. 2023

'공부 좀 해라' 보다 '공부는 왜 하는 걸까?"

짧은 기간 교사 생활을 하며 학부모를 만나는 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공부시킬까 하는 것이 큰 화두였다. 도통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공부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 부모들의 관심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자녀에게 '공부 좀 해라'라는 말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녀에 대한 자신의 조바심일 뿐일 것이다. 


공부하는 꼴을 못 보겠다.

공부 안 하고 그렇게 게임만 해서 되겠어?

공부 좀 해라.


이런 말이 부모의 입 밖으로 나온다면 우리의 자녀는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흥미가 없는 공부를 과연 억지로 해야만 할까.


모든 사람이 어떻게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사고라고 생각한다. 나는 '공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배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학생이라면 모름지기 '배움'에 열심이어야 한다. 배움에 열심이면 된 것이지, 학생이라고 꼭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운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공부 말고도 배우면 재미있는 것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공부에 흥미를 가지도록 아이를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은 자녀도, 부모도 힘든 일이다.


아이는 공부에 흥미는 없어도 운동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음악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게임에 관심이 있을 것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을 것이고, 그저 친구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는 데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배움이라 생각한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아이가 관심 갖는 것을 잘 지켜보고 있다가 그 관심이 더 다양하게 증폭되도록, 혹은 그 관심을 열심으로 바꾸어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공부가 아니라, 가치 있는 배움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지식 습득이 공부의 주된 부분이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의 공부는 지식이 아닌 지혜를 키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배움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지혜는 지식을 다룰 줄 아는 능력이다. 내게 필요한 지식들을 연결하고 지식을 나에게 맞게 실천하게 하는 더 고차원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들은 지식 습득 위주의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지식 습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필요한 지식들을 아는 것은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영역에서는 그 보다 더 중요한 '지혜'를 다루는 능력까지 길러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제껏 받은 교육이,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이 지혜까지 다루어주지를 못하고 있기에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학교 교육을 받던 시절,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과목을 잘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다. 아니, 지금도 그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지 않은가. 수능에서 모든 영역의 점수를 잘 받아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분명 국어는 정말 잘해도 수학은 못하는 이가 있을 것이고, 영어는 정말 잘해도 과학은 못하는 이가 있을 텐데도, 한국의 교육은 모든 과목에서 골고루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한 분야에서 특출 난 많은 인재들을 많이 놓쳤다고 본다. 한국의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인재들이 유학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예를 무수히 보게 된다. 고등학교 때까지 꼴찌에 머물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교육공학자가 된 폴킴 교수의 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 교육은 그를 받아줄 수 있는 시스템이 되지 못했다. 한 가지만 잘하는 인재는 인재로 여기지 않는 편협한 교육 시스템 탓이다.


부모의 목표는 자녀를 공부시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녀가 배움의 필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필요는 언제고 닥친다. 필요할 때 지식을 꺼내 쓰며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 교육이 되어야 한다. 무조건 공부하라고만 외쳐서는 부모 목만 아프고, 자녀의 귀만 닫힐 뿐이다.


아이들에게 가끔 

"너 왜 학교 다니니, 너 왜 공부하니?" 물어보면 

"해야 하니까요. 부모님이 하라고 하니까요."라는 목적 없는 대답들이 돌아오곤 한다. 그 아이들은 공부의 필요성을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이다. 조금 더 나은 대답은

"좋은 대학 가려고요, 좋은 직장 가지려고요."가 될 텐데 그 마저도 공부 본연의 가치를 간과한 대답들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기 위해 우린 공부를 하지만, 한국 사회는 기본적인 소양이 아닌 전문가 수준의 교육을 시키는 것 같다. 그것도 어느 분야든 잘하는 만능 전문가를 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짓눌리고, 부모는 사교육에 수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일본만화를 좋아해서 일본어를 배우는 것과, 흥미는 없지만 학교에서 제2 외국어 과목이기 때문에 일본어를 배우는 아이의 학습 흥미와 속도는 차이가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교육에서는 그 학교가 정하는 제2외국어를 의무적으로 모두가 학습해야 한다. 난 제2 외국어였던 프랑스어를 3년에 걸쳐 배웠고 심지어 프랑스 말하기 대회에서 입상도 했지만, 어른이 되어 프랑스 여행을 갔을 때 제대로 써먹은 프랑스어는 '봉쥬르' 밖에 없었다. 차라리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남편이 구글 번역기를 돌려 더 많이 프랑스어를 한 것 같다. 필요가 생겼을 때 배워야 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언제 써먹을지, 안 써먹을지도 모를 불필요한 지식들을 너무나 과다하게 학습하고 있다. 필요한 것 몇 가지만 배워도, 흥미 가는 것 몇 가지만 배워도 될 텐데 너무 많은 과목을 너무 높은 수준으로 학습하고 있다.


우린 지금 관심이 생기면 학교를 꼭 통하지 않고서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널린 세상에 살고 있다. 어쩌면 학교에서보다 유튜브를 통해, 챗 GPT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필요가 생겼을 때 배워도 늦지 않은데, '언젠가'를 위해 지식을 불필요하게 축적하고 있다. 이런 교육이 과연 필요한 일일까?


난 호주에서 한국어교사로 일하며 첫 수업 때 항상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는 왜 지금 한국어를 배우는 거지?"

아이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어를 잘하고 싶어서요."

"엄마한테 한국말로 잘 말하고 싶어서요."

"한국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편지 쓰고 싶어서요."

초등학교를 겨우 들어가는 나이에도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분명했고, 그렇기에 열심히 한글을 배웠다.


모든 교육에서도 이런 물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공부 좀 하라는 말 대신

"공부는 왜 하는 거지?"

"이건 왜 배워야 하는 걸까?"

라는 물음을 던져 아이들이 공부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아이가 배워야 할 이유도 모른 채 다들 배우니까,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식의 이유 없는 이유로 공부를 한다면 그런 공부는 결국 그 아이의 자양분이 되지 못할 것이다.


교육 시스템 전체를 바꿔놓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기 전에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공부는 왜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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