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향기 May 22. 2023

내가 마음을 뽀송하게 말리는 법

호주 가을,  릴리에게

가을 햇살이 창으로 쏟아질 듯 몰려오면 난 햇살의 포로가 되어 그들이 퍼붓는 공격에 아무런 방어 없이 나를 내어준다. 가을날, 그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다니는 한참이 지나면 내 얼굴과 온몸은 바싹 말라 짭조름해진다.


며칠 햇살의 포로가 되어 짭조름해진 나를 위로라도 하듯, 밖은 비가 내리고 있다. 가을비다. 깊은 밤 이불속에서 가을비가 지붕과 유리창에 집단 착지하는 소리를 들으며 잤다. 소란스럽지 않은 스무스한 착지. 사탕을 물고 자는 것처럼 입 안이 달콤한 꿈을 꾼다. 밤새 내린 비는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고, 온 집은 가을비가 범벅이 된 채로 습한 숨을 내몰고 있다. 달콤했던 꿈은 사라지고 무겁고 습한 공기에 가을처럼 시무룩해졌다.


창 밖을 보니 검은 머리 작은 새가 마당에서 종종걸음을 친다.

비를 맞으면서도 꼬리를 흔드는 작은 새의 다리가 시큼하다.


이럴 땐 신나는 음악이라도 들으면 마음이 뽀송해 질까 해, 평소엔 듣지도 않는 음악을 틀었더니 노래가 맵다. 할로피뇨 한 움큼을 집어 먹은 것처럼 소리가 맵다. 매운 소리에 마음이 부대끼고, 입에서 날숨과 들숨들이 숨 가쁘게 반복된다. 비트 빠른 음악은 어지럼증이 날 만큼 맵다.


매운 기를 가실 마음을 축이기 위해 우유처럼 부드럽고 딸기처럼 달콤한 고양이를 찾아본다.

침대에 나 대신 누워 아침 쪽잠을 자는 고양이의 눈가를 만져본다.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진 고양이 눈 주위를 살살 만져본다. 눈가까지 덮은 보송한 털을 매만지고서야 매웠던 마음이 진정이 된다.

딸기우유를 마신 것처럼 마음이 자꾸만 뽀송해진다.


비 내리는 가을 아침 만지는 고양이 털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햇살 냄새나는 빨래처럼 뽀송하다.

맵고 습한 공기가 감싸는 날은, 딸기 우유 같은 고양이 털을 만지며 마음을 뽀송하게 말려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