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유래 없던 홍수로 많은 사람들의 집이 물에 잠겼다. 차가 떠내려가고, 동물들도 아우성이다. 하늘에선 폭죽 터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나고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친다. 호주에서 이런 날씨를 경험하는 건 드문 일이다. 매일 해가 쨍쨍하고, 비가 내렸다 해도 밤 사이 와락 내렸다가 아침이면 쨍하니 맑은 하늘이었는데, 이런 날씨는 낯설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에 안 그래도 어수선한데, 홍수까지 나니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답답한 심정이다.
비가 오면, 맑은 날씨에는 알 수 없었던 내 집의 부실함을 들키게 된다. 누구의 집에서는 바닥에 물이 새어 들어와 카펫이 다 젖고, 지붕 어디에선가 흘러들어온 물 때문에 천장에서 비가 새기도 한다.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 집은 아예 지붕이 내려앉아버렸다. 날씨가 화창 했을 때는 멀쩡하던 집들에 비가 내리치니, 하나 둘 부실했던 부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렇게 비가 내리쳐도 비 하나 새지 않고 끄덕 없는 집들도 있긴 하다.
비가 내리치고 천둥소리가 요란 하니, 내 인생에서도 이렇게 비가 내리친 적이 있지 않았나 싶다.
타국에서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홀로 육아를 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처럼 도와줄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옆에 있으면 그나마 숨을 좀 돌릴 수가 있을 텐데, 가족과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육아는 오롯이 나 혼자의 몫이다.
첫째는 나도 출산이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에 한국에서 가서 출산을 했다. 다행히 친정 부모님 댁에서 편히 산후조리를 하고 건강하게 아들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는 한국에 가서 출산을 하는 것이 무리였다. 첫째가 학교를 다니고 있어 첫째를 두고 갈 수도 없고,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친정엄마가 오고 싶어 하셨지만 몸이 편찮으셔 오실 수도 없었다.
다행히 시어머니께서 산후조리를 하러 오시기로 하셨다. 한 달을 계획하고 오셨는데 예정일이 두 주가 지나도록 아기가 나올 생각을 않았다. 결국 유도분만으로 무사히 출산은 하였지만, 시어머니는 한 달을 예정하고 오셨던 터라 출산 후 일주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께는 괜찮다며, 둘째니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실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우리 집엔 여자가 나 혼자 뿐이고 내가 거두어야 하는 식구는 셋이나 되었다. 게다가 첫째는 이제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여섯 살 어린아이이고 갓 태어난 둘째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물론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와 아기를 씻겨주고 설거지도 거들어 주었지만 하루 종일 아기 곁에 붙어서 젖 물리고, 기저귀 갈아주고, 밤잠도 못 자는 엄마의 고된 하루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내가 어찌할 수 없을 때 나를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불안감은 둘째를 돌보는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육체적 수고보다 심리적 압박감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의 얼굴에서 붉은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모유도 먹이고,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붉은 반점들은 걷잡을 수 없이 얼굴 전체를 덮게 되었고, 그 붉어진 부분에선 누런 고름이 나기 시작했다. 아기를 둘러업고 병원에 갔다. 하지만 의사가 준 연고를 발라도 반점들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씻기기도 힘들고, 밤에 잠을 재우기도 힘들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닌 끝에 알게 된 병명은 ‘아토피성 피부염’이었다. 아토피성 피부염은 특별한 약이 없다. 약을 써도 잠시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더 악화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오래 사용하는 것도 위험했다. 더구나 태어난 지 이제 겨우 한 달 된 아기라 쓸 수 있는 약이 별로 없었다. 아이의 얼굴은 이제 누런 딱지와 진물이 범벅이 되어 얼굴에 콘프레이크를 뿌려 놓은 것 같았다. 말을 못 했을 뿐이지 아기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얼굴을 긁지 못하게 손싸개를 씌워 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는 밤에 잘 때 아기의 손을 아기 침대 나무 기둥에 고무줄로 묶어 놓기까지 했다. 그것도 걱정이 되어 나는 한 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을 못 자고 꼬박 일주일이 지나자 내 몸이 이상해졌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해야 하나?
콘프레이크처럼 부풀어진 딱지가 뒤덮인 아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뭔가 아기에게 잘못을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내 모유가 좋지 않아 아기가 이런 걸까? 내가 임신 때 좋지 않은 음식을 먹어서 이렇게 된 걸까? 나를 자책하는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진 눈물은 멈추지를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잠도 안 자고 울고만 있는 나를 보던 남편은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는 나에게 ‘산후우울증’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잠을 잘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밤의 고요와 사투하는 일은 끔찍하고 괴로웠다. 아침이 되어 동이 트는 걸 보면 두려움이 엄습했다. 또 괴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었다. 음식을 넣어 씹어 삼키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그때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살은 점점 빠져만 가고 거울 속 내 얼굴을 보기 싫을 정도로 메마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들이닥치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 지붕처럼 내 삶의 부분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남편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휴직을 신청했다. 다행히 이해심 많은 여 상사는 아내를 돌봐주라며 3개월 휴직을 허락해 주었다. 남편은 나를 데리고 산에도 올라가고, 집에서도 걷기 운동을 할 수 있게 트레드밀도 사 왔다. 주변의 경치 좋은 곳은 그때 다 돌아본 듯하다. 아기를 데리고, 기저귀랑 젖병을 챙겨 나를 데리고 다니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남편은 늘 밝은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집 밖을 나섰다.
나는 조금씩 호전을 보이며 하루에 2-3시간이라도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휴직 기간이 거의 끝나 가자 나는 다시 두려워졌다. 남편이 없는 시간을 감당해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 나와 그리 친하지도 않았던 동갑내기 정음이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소식을 듣고 매일 우리 집으로 찾아와 주었다. 나를 대신해서 빨래도 해 주고, 같이 운동도 해 주고, 음식도 차려 주었다. 서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선물 같은 친구가 주어졌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주변의 내 소중한 친구들은 반찬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식사에도 초대해 주고, 나를 돕기 위해 애를 썼다. 그때 받은 사랑은 평생 잊히지가 않는다. 비 새는 지붕을 수리하고, 갈라진 틈을 매워 더 이상 비가 와도 물이 새지 않는 집이 되는 것처럼 내 주변의 소중한 이들 덕에, 내 마음에 난 틈과 상처는 메워지고 있었고, 나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금 호주에서는 홍수로 피해 입은 주민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집을 내어 주기도 하고, 물품을 나누기도 하고, 망가진 집을 복구해 주는 구호 활동이 한창이다. 모르는 이에게도 이런 친절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친절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처럼, 아는 사람이 아닌 모르는 사람, 심지어 편견을 가졌던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은 우리를 아름답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내 주위에 마음에 홍수가 들이닥쳐 비가 새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있지는 않은가?
그의 지붕에서 비 새는 소리가 ‘똑똑’ 들린다면 그의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려보면 어떨까?
설령 그가 내가 모르는 이라 하더라도, 우린 그의 갈라진 마음의 틈을 메워줄 있다.
가족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친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음의 홍수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나의 사마리아 손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