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향기 Oct 23. 2023

짖지 않고 양을 모는 개, 부모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족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그곳. 바로 퀸스타운이다. 뉴질랜드를 다섯 차례나 방문했지만 우리는 다섯 번 모두 퀸스타운에 머물렀다. 그만큼 퀸스타운을 좋아한다.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발을 내디뎠을 때 크라이스처치 공항에서 퀸스타운까지 7시간을 운전해 밤늦게서야 도착했다. 퀸스타운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커튼을 열고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동화 속 어느 나라에 온 것처럼 와카티푸(Wakatipu) 호수가 웅장한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서 펼쳐졌다. 그때 우리 가족 모두를 압도한 뉴질랜드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해 우리는 여행을 갈 여유만 생기면 뉴질랜드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뉴질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잔디밭에 하얀 점처럼 흩어져있는 양들이다. 그 많은 양들을 방목하면서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매번 궁금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sheepdog이라고 하는 양몰이개의 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Earnslow Steamship을 타고 호수 크루즈도 하고 양 떼 목장에 들러 농장투어와 양몰이개의 쇼를 구경하게 되었다. 와카티푸 호수의 멋진 풍경을 증기선을 타고 즐기니 더 낭만적이었다. 다섯 차례나 뉴질랜드를 방문했지만 증기선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린 때때로 숨이 멎을 풍경에 탄성을 질렀고, 이전의 뉴질랜드 여행을 추억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크루즈를 즐겼다. 증기선이 월터 피크 농장에 정박할 즈음 양 떼 목장의 사람들이 물가로 나와 우리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누군가 손을 흔들어 반겨주니 쌀쌀한 날씨에도 마음의 아궁이에 불이 지펴졌다.


<증기선에서 직접 찍은 월터 피크 농장 풍경>



퀸스타운에서 재배되는 채소와 고기들로 만든 맛있는 점심 뷔페를 즐기고 우린 기다렸던 목장 투어를 하고 양몰이 개의 쇼를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양몰이 개의 쇼를 즐기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호주에도 Outback Spectacular라는 쇼가 있어서 양몰이개의 쇼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호주의 양몰이개와 퀸스타운의 양몰이개는 좀 달랐다. 


호주에서 보았을 때는 개가 양 떼를 향해 짖어서 양을 몰았지만, 이번 쇼에서는 개가 결코 짖지 않았다. 개는 주인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꼼짝도 않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주인의 손짓에 재빨리 울타리를 넘어 양 떼들에게로 갔다. 양 떼들 가까이 가지도 않고 울타리 쪽으로만 움직여 양들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지 않게 점잖게 양을 몰았다. 개가 울타리 쪽으로만 움직이는 대도 이미 양들은 풀을 뜯고 있다가 갑자기 한 곳으로 무리 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양 몇 마리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자 양몰이개는 산꼭대기까지 재바르게 올라갔다 그러고는 양을 응시했다. 짖지도 않고 그저 응시만 한다. 그러자 양이 산꼭대기에서 내려왔다. 주인이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우리 목장의 개들은 짖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짖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양들에게도 결코 짖는 법이 없죠. 그저 눈빛으로 말합니다. 눈빛으로 말해도 다 알아들으니까요. 양들이 말을 들을 때까지 개는 양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러면 결국 양은 말을 듣게 되죠."

관중에선 웃음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짖지 않고도 양을 모는 개.


개가 양을 다 몰아 울타리에 넣고 울타리 밖으로 나와 주인에게로 향한다. 주인에게 칭찬해 달라며 주인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빈다. 우리는 또 한 번의 큰 박수를 보냈다. 열심히 양을 몬 개도 대견했지만 주인과 교감하는 특별한 눈빛이 더 감동적이었다. 주인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충성심이 멀리 관객석에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개가 주인을 바라보는 눈빛, 주인이 개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눈빛, 그 애틋한 눈빛들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잊히지 않았다.


우린 어떤 양몰이 부모일까. 

아이들은 모두 양이다. 부모는 양을 모는 목동이다. 목동 역시 막대기를 들고 있지만, 그것은 양들을 후려치는 위협적인 막대기가 아니다. 혹시나 길에서 벗어나는 양들이 있으면 살살 건드려서 방향을 알려주는 그런 막대기다. 

우린 목동으로서 막대기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짖지 않고서도 양들을 인도하는 그런 양몰이개와 같은 부모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큰소리를 내지르는 그런 부모일까. 아이를 복종시키고자, 권위를 내세운다는 명목하에 소리를 치거나, 큰 소리를 내고 있다면 우린 어쩜 그 양몰이개만도 못한 사람일지 모른다. 개도 짖지 않고 양을 모는데, 사람인 우리는 더더욱 양 같은 자녀들을 소리 지르는 일 없이 이끌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말을 안 듣는다고 큰 소리를 친 나는 양몰이개만도 못한 부모였구나... 아니 난 사실 지금도 사춘기에 접어든 둘째 녀석에게 소리를 칠 때가 많다. 분명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자녀를 이끌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양몰이개가 가진 그런 기술도 없는 부모다.


하지만 이제 나도 뉴질랜드에서 본 양몰이개처럼 자녀를 이끌고 싶다. 눈빛 하나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아들도 내 눈빛을 읽을 줄 아는 양이되길 바라 본다.

아들과 더욱 끈끈하고 특별한 애틋한 눈빛을 나누고 싶다.



<타이틀 사진출처: Realnz>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