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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Mar 04. 2022

호주 살이, 셋방 살이


 

 호주에 산 지도 15년이 넘었다. 이렇게 오래 살았으면 호주 살이가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아직 난 호주가 낯설다. 여전히 셋방 살이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사실 셋방을 살아 본 적은 없지만, 어릴 적 친척 댁에 얹혀살아 본 적은 있어서 그 묘한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무리 편하게 해 주어도 편하지 않은, 가족처럼 대해 주려는 노력이 더 나를 소외시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소속감과 이방인의 경계에서 동동 떠다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가 호주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 반응은 한결같이 “좋은 곳에  사시네요.”이다. ‘좋은 곳’? 좋은 곳이란 어떤 곳인가?

캥거루가 뛰어놀고 코알라가 손짓하는 그런 곳?

영어를 쓰고 있는 나라라 아이들 영어 교육시키기에 좋은 그런 곳?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외국이라 좋은 건가?

 

딱히 난 호주가 좋은 곳이라는 데 동의할 수가 없다. 나에게 좋은 곳은 ‘편한 곳’이어야 하는데, 호주는 과연 나에게 편한 곳인가?

물론 아주 호주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이민 2세들에게는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한국에서 내 삶의 반 이상을 보내고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는 낯선 나라이다. 여전히 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고,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호주에서 알게 된 새로운 문화들이 내 삶에 좋게든 나쁘게든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문화들에 영향을 받고 살고 있다고 해서 그 문화가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매번 낯설다.

이렇게 낯서니 편할 수가 없다.

 

사람이 편하려면 공간과 문화도 영향을 끼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편한 사람들이 내 곁에 있고, 그들과 시시콜콜한 것들도 나눌 수 있어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 시드니에 남동생이 살고 있긴 하지만 다른 가족들과  내 소중한 친구들의 대부분은 한국에 있다. 시대가 좋아서 자주 카톡도 하고, 페이스 타임도 하지만, 내 그리움을 다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편하지가 않다.


호주에도 가족처럼 지내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 나머지 가족과 친구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 자리를 메울 수 없다.

그래서 나에게 호주는 편한 곳이 아니다.

 

언제  빼라 할지 몰라  집주인 눈치를 살피는 셋방 살이 같다. 눈치를 누가 그렇게 줘서라기 보다는 그냥 그런 느낌이다. 호주 사람들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 함께 공유한 시간과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 그래서 호주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 나만 모르어색해지는 타이밍이 있다. 마치 재미있는 얘기 한창인데 중간에  끼어들어 분위기 썰렁한 그런 느낌.

 

그러면 왜 굳이 호주에 살고 있나 할지 모른다. 그러게. 나도 왜 내가 지금 여기 있나 모르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아이들의 안전과 교육이라는 명목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깨끗한 공기와 물, 자연이 있어서라고 말했었는데 글쎄, 이 나이가 되어보니, 신체적 안정감보다 정신적 안정감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답은 하나다. 간단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한국에 놀러는 가도 살고 싶지는 않다는 아들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내 아들들에게는 호주가 편한 곳이고 한국이 낯선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식을 위해 여기 눌러 있어야 할지, 내 삶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갈팡질팡이다.

설령 내 삶을 위해 한국으로 간다고 해도 자식을 멀리 두고서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도 아니다.

 

쉽게 생각하고 호주에 왔는데, 참 어렵다.

 

애시당초 외국 어디도 나가 살지 않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맛난 짜장면도 먹고 싶고, 길에 가다 붕어빵도 먹을 수 있는 사람 따뜻한 한국이 그립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아쉽다.

 

셋방 살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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