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향기 Jul 14. 2024

횡단보도 앞에서 갑이었던 내가 을이 되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는 갑인가요, 을인가요?

 

힘없이 풀이 죽어 걷다가도 횡단보도만 나오면 나는 뭔가 당당해졌다. 호주에서 산 20년 간, 난 횡단보도에서 만큼은 아주 극빈 대접을 받으며 횡단보도를 횡단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을 오기 전까지 횡단보도는 나에게 무언가 자신감을 주는 그런 길이었다. 좀 과하게 말하면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횡단보도란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게 된 지금, 난 횡단보도 앞에서 너무나 초라해져 버렸다. 횡단보도는 나에게 무언가 초라함을 주는 그런 길이 되어버렸다.


호주에서는 횡단보도가 나오면 보행자는 그 누구보다 당당해진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대부분의 차들은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바로 멈추어 선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보행자가 정말 뭐라도 된 것인 양, 마치 임금님 행차라도 본 것처럼 멈추어선다. 그러면 보행자들은 안전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횡단보도를 횡단한다. 호주에서 보행자는 갑이고, 차는 늘 을이다.


교통과 관련되어 아주 많은 문화 충격을 겪고 있지만 횡단보도 앞에서 겪은 문화충격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한국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신호등이 없는 동네의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려 했다. 차가 그리 가까이 오지도 않았고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 나는 길을 건너려고 했다. 하지만 횡단보도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 다가오던 택시가 '빠앙~~~'하며 경적을 울리더니, 운전기사가 나에게 소리를 친다. 


'아줌마!!!'


그래, 나 아줌마 맞다. 하지만 그건 날 부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줌마' 세 글 자와 함께 나에게 던져진 택시 운전사의 눈빛에는 '아줌마, 차가 지나가려고 하는데 어딜 감히 길을 건너려고 해, 거기 서!'라는 훤히 드려다 보이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 택시 운전기사만이 아니었다. 어디서고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난 늘 차가 오나 안 오나 두리번거리며 차 님이 지나가시도록 멈추어서야 했고, 차 님이 다 지나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차 님이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에서야 겨우 서둘러 길을 건널 수 있었다.


호주에서 갑이었던 보행자의 위치에서 완전히 전세가 역전되어 버렸다. 

호주에서는 혹시나 운전자가 급한 마음에 지나가려던 보행자를 보지 못하고 횡단보도를 지나갔다가는 온갖 욕을 다 얻어먹고, 운전자는 무슨 대역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하다며 굽신거리고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차가 좀 떨어져서 오고 있을 때라도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지나가려고 하면 보행자가 무슨 대역죄나 지은 것처럼 빵빵거리고 난리가 난다. 물론 지나가라며 멈추어서는 차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들이 보행자를 무시하고 쌩하고 지나간다. 차들은 '당연히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겠지 감히 길을 건널 사람이 있겠어?' 하는 눈치다.


한국이 호주보다 땅이 좁고 사람이 많은 복잡한 곳이라서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땅이 좁고 사람이 많으니 더욱 보행자를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차량 뒤에 붙은 초보운전 사인에서도 또 한 번의 씁쓸함을 맛보게 되었다.

'초보운전'이라는 사인만 붙어 있었다면 느끼지 않았을 씁쓸함이었다.


울고 있는 이모티콘과 함께 '초보라서 죄송합니다'


넙죽 절하는 이모티콘과 함께 '답답하다고 화내면 앙대요'


'빵빵 금지, 이러는 나는 더 답답해' 


등등 초보운전자가 무슨 죄인이 된 것 같은 사인들을 보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얼마나 초보들에게 빵빵 거리고 화를 냈으면 이런 스티커들이 차량들 뒤에 붙어 있을까 싶어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호주에서도 초보 운전자들이 사인을 부착한다. 처음 운전을 배우는 사람은 노란색 'L(Learner)'사인을, 운전면허에 합격한 사람은 처음엔 빨간색 'P(Provationary)' 사인을, 거기서 일 년이 지나면 초록색 'P'사인을 부착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법으로 그런 사인을 붙이게 하는 목적은 초보 운전자들이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초보 운전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사인에는 미안하다던지, 이해해 달라던지, 양보해 달라는 어떠한 덧붙이는 문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호주 사는 동안 법적으로 붙여야 하는 사인 외에 다른 문구를 덧붙인 차량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달랑 'L' 자와 'P' 자인 그 사인은 다른 경력운전자들이 알아서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초보라서 미안하다는 쭈글스러운 의미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처음 배워 서툰 것이 그리 죄송할 일일까. 처음 배우면 서툰 것이 당연한 것이다. 능숙한 사람들이 도와줄 일이고 끌어 줄 일이다. '초보'라는 것이 면박이나 구박받을 일이 절대 아닌데 이곳에서 초보는 죄인이 된 느낌이라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누구나 처음에는 초보였을 터인데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운전 문화가 많이 아쉬웠다.


사람이 다니도록 마련된 길에서 사람이 당당하게 못 지나가고, 처음 운전을 시작한 사람들이 운전에 주눅 들게 하는 것은 외국인 입장에서 많이 놀랄 수밖에 없는 문화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온 지 석 달만에 겨우 호주 면허를 한국 면허로 교환하게 되어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횡단보도에 아이 하나가 서 있는데 역시나, 바쁜 차들은 멈추어 주질 않는다. 앞 차는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하지만 난 무의식 중에 횡단보도를 보자 습관처럼 브레이크로 발이 먼저 갔다. 아이가 횡단보도를 안전히 지나갈 수 있도록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랬더니 아이가 꾸벅 배꼽인사를 하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다른 횡단보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차가 횡단보도에 설 때마다 꼬마들, 청소년들 할 것 없이 고맙다는 눈빛으로 꾸벅 목인사를 한다. 역시 한국 아이들은 예의가 참 바르다. 고마워할 줄 아는 좋은 성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고맙다는 마음이 좀 더 당당해 지길 바란다. 미안한 마음이 뒤섞인 고마움 말고, 당당한 고마움이길 바란다. 미안해하며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급히 지나가지 말고, 원래의 보폭으로 안전하게, 당당하게 건너가길 바란다.


횡단보도는 보행자를 위해 마련된 길이다. 주인은 보행자다. 차가 주인이 아니다. 횡단보도 앞에서만이라도 보행자가 갑이 되면 좋겠다. 


<사진출처: Adobe sto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