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에 잠 못 이루는 밤

장필순의 제비꽃을 듣고서

by 나무향기

남편은 요즘 자주 시무룩하고, 자주 눈물을 보인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자신이 갑자기 너무 나이가 들어 버린 것 같고, 어린 시절이 너무 그리워서라고 한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왠지 슬퍼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너무 멀어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잡힐 듯했던 어린 시절이 이제는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느낌에 남편은 슬퍼진 것 같았다.

차를 운전하던 남편이 장필순의 ‘제비꽃‘을 틀어달라고 한다. 숨을 내쉬듯 읊조리는, 허스키하지만 맑은 목소리가 속삭이는 듯한 기타 반주에 흘러나온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넌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장필순 노래, 조동진 작사, 작곡>


아주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내가 겨우 중학생이었을 때 라디오에서 들어 본 적 있는 그 노래다. 남편은 이 노래가 너무 좋다고 한다. 가사에서처럼,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온다. 옆을 슬쩍 쳐다보니 차를 운전하는 남편의 얼굴에도 눈물이 흐른다. 우린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오는 그런 나이에 있는 걸까?

남편이 어떤 감정 때문에 요즘 시무룩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우린 살면서 가장 여유롭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평온함은 때론 평온하지 못했던 내 과거를 들추어내고, 그럼에도 행복했던, 지금은 가질 수 없는 나 자신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 같다.

중학생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이 노래의 의미를 40대가 되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이 노래는 마치 제비꽃이 나를 보며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제비꽃을 가장한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 우리는 머리에 제비꽃을 꽂고 함박웃음을 짓던 순수한 소녀, 혹은 소년이었을 것이다. 꿈 많은, 더 멀리 날아가고 싶은, 새를 동경하던 누군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라서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된다. 힘겨운, 벅찬 삶을 꾸리고 있는 야위어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고된 삶에 땀방울이 맺힌 나는 여전히 웃고 있지만,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난다고 털어놓는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으로 내가 ‘나’를 마주할 때도 언제나처럼, 나는 여전히 웃고 있다. 이제는 오랜 삶이 내게 평온을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평온히 창 너머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한밤 중에도 깨어 있고 싶을 정도로 남겨진 시간이 소중하다고…

우리 모두의 일생을 그린 노래였다. 변해가는 ‘나‘를 마주하면서 느끼는 마음을 담담하게 노래로 담아내고 있었다.

인생이 그렇다. 어릴 적 꿈 많던 소년 소녀들은 이제 작은 일에도 눈물을 흘리며, 고된 하루에 땀을 닦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어른은 남은 날들을 아쉬워하는 노인이 될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우린 그 순간순간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지나고 나면 문득 과거의 ‘나’와는 다른 ‘나‘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순간에 느끼는 슬픔은 변해버린 내 모습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나’를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은 다른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도 찾아오지만,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나‘를 그리워할 때도 찾아온다. 어쩌면 더 커다란 슬픔으로 내게 다가 올 지 모른다.

여전히 ‘나’ 임에도 만날 수 없는 ‘나‘.김광석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매일매일 ‘나’와 이별하며 살고 있다.

아직 무더운 여름 언저리에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방울들을 닦아내고 있다.

제비꽃을 들으며 잠못 이루는 밤이 될 것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