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리고 얻게된 것들

행복했던 코로나 격리 생활

by 나무향기



“엄마, 나 코로나 걸린 것 같아요.”

목을 부여잡고서 나에게 무서운 이 한 마디를 던지는 아들.

두 달 전, 큰 아들이 코로나에 걸려 왔다. 무더운 여름이 한창인 호주의 1월에 우리 가족의 감금 생활은 시작되었다. 코로나가 우리를 감금시킨 것이다.


<가족 중 확진자가 있으면 무조건 1주일 격리, 격리 마지막 날 가족 전체가 PCR테스트를 받고, 가족 중 확진자가 또 발생하면 일주일 격리 연장>


이것이 호주 정부 방침이었다. 정말 최악의 경우 우리 가족 4명이 순차적으로 다 걸리면 최대 4주를 격리해야 할 판이었다. 작은 아들이

“엄마, 우리 이제 어떡해요?”

하며 걱정을 했지만, 난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서 가족이 붙어 있을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 격리 생활을 즐겨보자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 같지 않았다. 코로나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기에 우리는 격리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지어 진통제도 제대로 구비해 놓지 못했다. 식료품은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었지만, 호주 전체적으로 확진자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 품절인 식료품이 많았다. 고기는 아예 구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 가족이 코로나로 격리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새가 새끼를 위해 먹이를 물어 날라주듯, 장을 봐서 현관문 앞에 놓고 갔다. 우리가 필요했던 진통제까지도 말이다. 빨리 나으라는 고마운 카드와 함께.

생면 부지의 나라에서도 내가 참 잘 살고 있다는,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안도감은 힘든 격리 생활을 행복한 격리 생활로 바꾸어 놓았다.


아들 다음 차례는 나였다. 아들을 방에 격리시키고, 밥도 마스크를 꽁꽁 싸고 접촉 없이 방 앞에다 배달해 주었는데, 설거지하다가 걸린 건지, 알 수 없지만 나까지 코로나에 걸리게 되었다. 불효자는 운다고 했는데, 이 불효자 녀석, 크득크득 웃는다. 동지가 생겨서 좋은 모양이었다. 한 집에서 두 명을 격리시킨다는 건 불가능 해서 이때부터 우린 모든 것을 나누기로했다. 코로나마저도.


다행히 증상이 심하지는 않았다. 아들은 이틀 정도 죽는 줄 알았다고 했는데, 난 코가 좀 답답하고 두통만 있었다. 열도 안 나고, 몸살 기운도 없었다. 밥 맛은 좋기만 했다. 친구가 사다 준 생닭을 푹 고아 닭개장을 만들었다. 아프니까 왜 밥 맛은 더 좋은지… 병에 대한 불안감이 내 생존 본능을 자극시키고, 본능에 충실한 나의 몸은 대뇌를 자극해 입맛을 돋구어 놓은 듯했다. 다행히 이 닭개장으로 우린 며칠을 버틸 수 있었다. 먹을 때마다 닭을 사다 준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숙주와 파를 사다 준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좋은 친구들 덕에 맛있는 닭개장을 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집 밖을 못 나가니 매일매일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얼굴을 맞대고 있다. 그 덕에 우린 서로의 사소한 얼굴 표정까지도 익숙해지게 되었다. 서로의 거울이 되어 눈꼽도 떼주고, 머리도 쓸어 준다. 가족을 넘어선 가까움에 도달한 것 같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아들과 난 매일 카드게임을 하고, 그래도 무료해서 책도 많이 읽었다. 내 마음을 좋은 책으로 채우니 매일매일이 단단해져 가는 것 같았다. 몸은 코로나로 지쳐 있었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다.


다행히 우리 가족의 코로나 릴레이는 나에게서 끝이 났다. 남편과 작은 아들은 코로나를 비껴갈 수 있었다. 남편에게

“내 영혼이 너무 순수해서 코로나가 내 몸속에서 모두 사멸한 듯하니,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내를 둔 걸 감사히 여겨.”

라며 농담을 건네니 남편은 기가 찬다는 듯 웃는다. 남편과 아들이 슈퍼 면역자였는지, 아니면 정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 몸에서 모두 사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우리의 행복했던 격리 생활은 끝이 났다.


우리의 코로나 격리 생활은 끝이 났지만,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다. 코로나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았던 것처럼 장도 봐서 날라 주고, 음식도 만들어 가져다주었다.

마이클한테 전화가 왔다. 전화를 하자마자 마이클이 엉엉 운다. 마이클은 둘째 아들 같은 반 친구, 올리버 아빠다. 올리버네 식구가 모두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우린 불고기를 만들어 초콜릿과 함께 배달해 주었다. 그게 너무 고마웠는지 전화를 해서는 한참을 울먹거리며 고맙다고 한다. 정말 이렇게 많이 아파본 적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단다. 가족이 다 코로나니 해 먹을 힘도 없었고, 오늘은 뭘 먹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우리가 음식을 가져다준 거라고 했다. 고마웠다. 내가 고마웠다. 별 것도 아닌 음식 하나에 이렇게 고마워하니, 내가 더 고마웠다.


이런 게 행복이고, 살아가는 기쁨이지 않을까?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주고,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 내 주변 그런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 나에게 고마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 나도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느낌. 이런 것들이 행복이자 살아가는 기쁨인 것 같다.


코로나로 많은 것을 잃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코로나로 얻게 되는 것도 많은 세상이기도 하다. 내가 잃게 되는 것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힘들다고 고개를 떨구고만 있을 게 아니다. 상황은 변할 수 없지만,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나의 선택이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기쁨, 삶의 만족감은 상황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아주 견고한 것들이라 흔들리지 않는다. 견고하게 우리를 지지하고 있는 사소한 행복과 소소한 기쁨을 모두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을 돌아보고, 내 곁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함께 하는 모두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코로나에 모든 것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코로나에게서도 좋은 것을 찾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