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된 무기력

방충망에 앉은 파리 보고서

by 나무향기



호주에는 파리가 정말 많다. 아주 대왕 파리들이다. 김치찌개를 한번 먹을라 치면 방충망 앞에 파리 수십 마리가 진을 치고 있고, 실수로 문을 살짝이라도 열게 되면 그야말로 파리와 김치찌개를 나눠 먹어야 할 지경에 이른다. 호주 영어 중에서도 특히 내가 사는 퀸즐랜드 영어는 발음이 입을 우물거리듯 분명하지 못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파리 때문이라고 한다. 파리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이 말하다가 입에 파리가 들어갈 지경이라 입을 작게 벌리고 말하다가 영어 발음이 그렇게 우물우물 불분명하게 되었다는 썰이 있다.


이렇게 파리를 자주 보다 보니, 특이한 파리의 행동 양상을 관찰하게 된다.

방충창이 열렸을 때 잽싸게 실내로 들어온 파리들은 처음 맛보는 냄새에 흥분하여 집안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비행한다. 웽웽거리며 공중쇼를 벌인다. 저 재빠른 파리를 도저히 난 잡을 수 없다. 그렇게 포기하고 시간이 지나면 흥분을 유발시켰던 냄새도 가라 앉고, 파리들은 어느새 방충망에 하나 둘 앉기 시작한다. 역시 넓은 곳을 날아다닐 때 느낀 자유로운 비행과 실내에서 즐기는 비행에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어찌됐건 이제는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공중쇼를 벌였던 저 넓은 창공으로 날아가리라.’고 말하듯이 방충망 곳곳을 무언가를 찾듯 샅샅이 기어다닌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지 수색에 나선 것 같았다. 하지만 방충망의 틈은 파리 다리 하나 겨우 빠져나갈 만큼 촘촘하다. 몸 전체가 빠져나가기엔 구멍이 너무 작다. 그래도 여전히 분주히 구멍을 찾는 것 같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지치면 파리는 멍을 때린다. 마치 자기가 감옥에 갇힌 죄수라도 된 것처럼 우수에 젖은 날개를 내리 깔며,

“나, 가고 싶어. 나가고 싶어.”라고 허공에 외치는 것같다.

그러더니 더이상 파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구멍 찾다가 진이 빠지기라도 한 걸까? 휴식을 취하는가? 조금 지나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 갈거야. 나갈거야!” 외치는 듯하다. 불쌍한 파리, 어리석은 파리...


방충망을 벗어나 다른 길을 통해 밖으로 나갈 방도는 찾지 않고, 계속 방충망 위를 오가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결국엔 방충망 구석에 떨어지고 만다. 굶어 죽은 것이다. 자유를 외치다가 기아로 죽은 것이다. 불쌍한 파리...


이렇게 파리가 죽으면 난 그때 파리 사체들을 수습한다. 굳이 힘들여 파리채를 휘두르지 않아도 파리가 자처해 목숨을 잃고 만다. 이건 파리들이 ‘학습된 무기력’* 을 경험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무기력을 선택한 것이다. 파리들의 이런 행동 양상은 ‘선택된 무기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적 무기력과 혼동할 수 있는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적’인 게 아니고 ‘선택된’이다. 파리가 선택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다른 길이 있는데도 다른 방도를 찾지 않고,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안일하게 바라기만 하다가 무기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쉽게만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주로 겪게 되는 무기력이다.


이런 무기력을 파리가 아닌 요즘 아이들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현실에는 있지도 않은 아이템들을 쉽게 획득한다. 버튼 하나로 가상의 공간에서 최신의 장비들이 갖출 수 있고, 커서 하나로 속력이 몇 천배로 늘어나는 기동성을 가진 비행물체를 가지게 된다. 가상의 세계에선 너무나 손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현실 세계로 돌아온 아이는 가상 공간에서만큼의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없는 자신의 속도에 답답해 한다. 쉽게만 모든 것을 이루려는 안일함에 길들여진 것이다. 결국 이런 안일함에 빠져 있다가, 자신이 원했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그 아이는 무기력하게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다. 방충망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쉽게 빠져나갈 궁리만 했던 파리들처럼 말이다.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 하는 이 세상의 법칙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책 한 장을 보는 것도 답답해 하고, 반복되는 연습도 못참아 한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을 하기 힘들어 한다. 그렇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안하고 만다고 한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돌아서 천천히 가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방충망에 앉은 파리를 건드려 다른 쪽으로 날아가도록 유인했더니 정말 날아간다. 날아가는 방향으로 따라가 문을 열어주면 드디어 파리는 자신이 원했던 세상으로, 넓은 세상으로 날아간다.


아이들에게 돌아서 가는, 천천히 가야하는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빨리 결과물을 만나는 데 집중하기 보다, 천천히 그 과정을 익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목적 달성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과물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아이가 과정을 밟으며 나타내는 행동에 칭찬을 해 주어야한다. 설령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 목표와 멀어진다 해도,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게, 실패를 경험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부모가 조급해서는 안된다. 실패를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자신이 하는 실수나 틀린 문제에 대해 속상해 하며 우는 아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틀리는 건 좋은 거야. 그래야 모르는 걸 배울 수 있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모르니까 지금 배우러 온 거잖아. 괜찮아. 틀리는 건 좋은 거야.”


이렇게 하니까 다음부터 아이들이 틀린 것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왜 틀렸는 지에 대해 더 깊게 고민했다. 틀린 것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어떻게 다시 바로잡을 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너무 편한 세상에 살면 때론 그 편안함이 무기력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손쉽게 그 무기력을 택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 나를 깨우친다.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빨리 하는 것보다는 즐기며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도 나 자신에게 늘 되뇌이는 말이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게도 늘 되뇌어 주어야 한다.

빠른 길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목표를 이루려 애쓰지 말고, 나아가는 과정을 즐기라고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도움을 청해 함께 하라고








*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으로 인해 실제로 자신의 능력으로 피할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러한 상황에서 자포자기하는 것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특수교육학 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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