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에서 미니멀리스트로

by 나무향기


행복의 비결은 더 많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것으로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에 있다.
-소크라테스

나는 한 때 인생을 맥시멀하게 살아 보고 싶었다. 내 능력이 닿는 모든 곳에 나의 능력을 펼쳐 보이고 싶었고, 그렇게 얻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난 칭찬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 얼마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칭찬은 나에겐 무척 달콤했다.


한 번 맛 본 달콤함은 나를 더 열심히 하도록 부추겼다. 누군가를 이기고 정상에 섰을 때의 짜릿함은 나를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다그쳤다. 공부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달콤한 칭찬과 정상에 선 짜릿함이 좋아서 열심히 공부를 했다.


이렇게 해서 주어진 성과들은 내가 대단한 사람일 거라는 착각에 나를 빠트렸고, 내가 뭔가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꿈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난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바쳤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 공부에 내 젊은 시절을 몰아넣었다. 한 순간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오랜 시간 내 삶의 폭을 줄여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결국 난 모두가 바라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입학 후에 쓰디쓴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다.

더 이상 그곳에서 나는 잘난 사람도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다. 나처럼 한가락 했던 사람들은 죄다 모인 곳이니, 난 그저 비범한 사람들 속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내가 좋아서 한 공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정상에 선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 한 공부니 대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에 흥미가 없었다. 이제까지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공부에만 바쳐 온 내 삶을 보상받으려는 듯, 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데만 정신을 쏟았고, 그 끝은 허무함이었다. 맥시멀하게 살고자 했던 내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세 가지 기본적인 인생의 물음에 답도 모른 채 맥시멀한 삶을 위해 달려온 내가 부끄러웠다. 안타까웠다.

이런 사람이 과연 나 뿐일까?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도 모르고, 앞으로만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측은하다. 가엽다. 그만 달리라고 잡아주고 싶다. 열심히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내 앞에 뭔가 대단한 것들이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달리는 그들이 안타깝다. 내 인생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 닥치는 대로 뭔가를 해야만 하는, 숨 쉴 여유 없이 복잡한 삶을 살고 있는 맥시멀리스트들은 실은, 자신의 삶의 폭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려야 했을 소중한 이들과의 잔잔한 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알기 위해 쏟아야 할 시간,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들여야 했던 시간들을 사실은,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사람은 원래 멀티태스킹을 못한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잘 하는 듯이 보인다 해도 제대로 된 하나를 못하고 여러 가지를 하는 척 시늉만 할 뿐이다. 인생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해 두면, 뭔가 보험을 들어 놓은 뿌듯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결국 내가 선택하는 것은 하나 일 수 밖에 없고, 여러 가지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삶에서 정리하는 미니멀리즘이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불필요한 문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인생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그동안 내가 열어 볼 수 있는 문들은 한정되어 있다. 모든 문들을 두드려보고 들어가 보고 나서야, 이 길이 아니구나 하고 돌아서기엔 인생이 짧다.

아주 오래전 쓰여진, 내가 즐겨보는 책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미니멀리즘의 본질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고나 할까? 미니멀리즘은 가지 수를 줄이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만족’의 문제이다. 적게 가졌어도 만족할 줄 아는, 기본적인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미니멀리스트이다.

어떻게 하면 기본적인 것, 아주 적은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꽉 차 있으면 내가 가진 것이 적어도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고, 내 인생의 분명한 목표가 서 있다면 그 외의 것은 아무리 적게 가졌다 해도 만족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채우고 나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나를 채우지 못했던, 나의 학창 시절은 계속 배고팠고, 목말라 있었지만, 내가 무엇을 채워야 할지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무언가에 고프거나 무언가에 목마르지 않게 되었다.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달리지 않아도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 내가 뒤쳐지고 있는 듯이 보여도 조급해 하지 않았다.

길을 모르고 헤매며 여행하는 사람의 마음은 불안하고 조급할 것이지만, 길을 알고 여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단단한 마음으로 여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알아야한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그 길이 무엇인지, 내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어 생각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수고와 노력은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는 강박에 떠밀려 잊혀지기 십상이다.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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