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Siesta)

by 나무향기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공부를 했던 시절, 잠은 인생의 낭비 같았다. 사람이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으면 그 시간에 정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인간은 잠에 하루의 1/3을 써야 하는지, 그 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때의 두 배가 훌쩍 넘는 나이가 되고서야 잠은 신이 주신 고마운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잠은 쉼과 재충전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인생이란 여행에서도 잠과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던 것을 멈추고 여유롭게 편히 쉴 수 있는 시간, 삶을 재정비하고 다시 활력을 채워줄 충전의 시간, 모든 것을 잊은 채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인생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잠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에서 토끼는 늘 잘난 채 하고, 똑똑하긴 하지만 게으른 사람의 상징이었고, 거북이는 모자란 구석이 있어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의 상징이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이솝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토끼가 맘에 든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토끼가 낮잠을 잤기 때문이다. 토끼는 거북이보다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캐릭터가 아닐까?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토끼는 그 바쁜 경주 와중에도 낮잠을 잘 여유가 있었고, 자신에게 필요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거북이가 자신을 추월해 옆을 지나가고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토끼는 낮잠에 푹 빠져 있었다. 난 이런 토끼가 멋있고, 맘에 든다. 내가 거북이 같은 인생을 살았어서인지, 토끼가 무척 멋있게 느껴진다.

낮잠을 자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큰데, 최근의 많은 연구들을 통해 인간은 하루 중 낮잠을 자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낮잠은 몸을 이완시키고, 긴장감을 감소시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 한다. 또 낮잠을 자면 인간의 뇌는 창의력과 집중력이 높아져 일의 효율성과 생산성도 증가한다고 한다. 실제로 신체적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데, 낮잠은 심혈관계 기능을 활성화해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은 심장질환 발병률이 현저히 낮고, 높았던 혈압도 낮아진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 밤잠도 겨우 자는 마당에 웬 낮잠이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 단순히 낮잠의 당위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낮잠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인간은 잠을 자도록 설계되었지만, 낮잠도 자도록 설계되었다. 이런 원래의 설계를 무시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쉼 없이 달려간다면 결국 우리 몸은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설계를 무시하고 트릭을 쓰기도 한다. 낮잠을 대신해 커피를 마시며 뇌를 각성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커피가 낮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뇌가 잠시 각성될지는 모르나, 결국 몸은 지쳐갈 것이다. 쉼 없이 달리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쉼을 대신해 줄 인생의 커피는 없다. 쉬지 않고 달리는 인생은 결국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된다.


요즘 사람들이 ‘쉼’, ‘휴식’, ‘힐링’이 주제인 책들에 열광하는 것만 보아도 현대인들의 삶에 얼마나 과부하가 걸렸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단어들이 비타민제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찾고 있다.

왜일까?

모자라니까 그런 것이다. 우리 삶에 쉼과 휴식, 힐링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바쁘게,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에만 정신을 쏟은 나머지 나를 위한 쉼과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이 잠을 인간에게 준 이유, 낮잠을 준 이유는 우리인생에도 낮잠과 같은 쉼과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였으리라 생각한다. 너무 내달리지 말고, 때론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는 것을, 쉬면서 자연을 돌아보고 내가 사는 우주를 돌아보며, 그 속에서 배우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낮잠을 자 본 사람이라면 낮잠의 유익을 몸소 느낄 것이다. 자연 속에서 휴식을 가져 본 사람은 그 휴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몸소 느낄 수 있다. 자연과 함께하는 휴식은 몸을 이완시키고, 긴장을 낮추고, 스트레스를 쫓아준다. 정신도 더 또렷해지고, 자연을 통해 영감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런 낮잠 같은 시간들이 우리 인생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신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반 고흐는 “The Siesta”라는 작품에 낮잠을 자고 있는 부부의 모습을 담았다. 신발까지 벗어두고서 건초더미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인다.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꿀 같은 휴식을 취하는 잠든 부부의 모습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여유는 물질적인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반 고흐의 그림에서처럼 하루하루 고된 일하며 살아가는 농사꾼도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내 삶이 여유롭지 못함을 탓하지 말고, 내가 여유를 가질 여유가 없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유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낮잠을 내가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낮에 잠깐 즐긴 낮잠은 나머지 하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내 인생에 잠깐씩 즐기는 낮잠과 같은 여유는 내 남은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스페인에서만 시에스타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인생에서도 시에스타를 즐길 수 있다.


<그림: 반 고흐의 “The Sie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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