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fit of the doubt

그 사람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by 나무향기


아침이면 늘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준다. 호주는 한국과 달리 지하철도 없고, 버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걸어가면 50분 정도 거리에 학교가 있는데, 가는 길이 아이 혼자 걷기에는 위험해서 아침엔 학교에 데려다준다. 길이 항상 막히는 건 아니지만, 어쩔 땐 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30-40분에 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교통체증 때문에 즐거운 아침 등굣길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교통체증 짜증에 짜증을 한 숟갈 더 얹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길게 늘어서 있는 차들을 제치고 자전거 길로 운전해 와서는 신호등 앞에서 깜빡이를 켜고 끼어드는 차들이 있다. 그런 차들을 보면 얌체도 저런 얌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데, 얍삽하게 자전거 길로 와서는 제일 앞에 서서 끼어들다니 괘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혹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겨서 어쩔 수가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응급상황이라도 생겨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 사람을 얌체니, 괘씸하다느니 생각했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기분 좋은 아침 등교 길을 괜한 오해 때문에 짜증 나는 등굣길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상황은 선택할 수 없지만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오해로 짜증 나는 기분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얌체같이(?) 끼어들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정말 얌체라서 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를 놓고서,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쁜 쪽으로 생각해 봐야 내 기분만 나빠진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니, 알 수 없는 그 사람의 응급 상황이 잘 해결되길 바라며 축복의 기도라도 얹어주고 싶다.

이런 상황은 살면서 비일비재하다. 의심스러운 상황이지만, 정확한 근거를 밝혀낼 수 없을 때,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있다. 영어 표현으로 이런 걸 “benefit of the doubt”라고 한다. 첨에 이 말을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주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어.”라고 말하고 싶을 때 영어로 “I’m going to give someone the benefit of the doubt.”라고 말한다.

정말 재미난 표현이지 않은가? ‘의심의 유익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이 표현이 재미있다. 이 유익(benefit)은 누구를 위한 유익일까? 모두를 위한 유익이다. 의심받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두 사람 모두를 위한 유익이다.

정확한 근거도 없는데 정황상의 의심을 받는 사람은 억울할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가 충분히 할 수도 있는 의심을 걷어내 주고, 좋은 쪽으로 나를 믿어 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우리가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그 사람의 인생에 행복을 얹어줄 수 있다.

혹여나 그 사람이 정말로 나쁜 짓을 했는데 정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쁜 짓에 대한 결과는 그 사람이 어떻게든 떠안을 것이다. 그건 그 사람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근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의심을 하지 않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한다면 내가 받을 상처는 지워질 것이다. 미움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테니 나에게 유익한 것이다.

사실 난 지금까지 의심의 유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이건 너무 뻔히 보이는 거 아니야?”

“세상에 별 사람 다 있구나.”

하며 내 기분을 망처 버리고,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의심에 희생한 적이 너무나 많다.

설령 증거가 명명백백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속 동기는 우리가 알 수 없다. 행동이 동기를 나타낸다고 섣불리 말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그 사람의 동기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말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했더라면 내가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린 신이 아니기에 마음을 알 수 없다. 내 마음도 잘 모르는데, 어찌 감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 있을까?

“Benefit of the doubt”라는 표현을 배우고 나서, 내 인생의 여러 상황들에서 난 ‘benefit’을 얻기로 했다. 그게 나를 위한 유익이기도 하고, 타인을 위한 유익이기도 하니 더 그 유익이 좋아졌다.

의심은 모두의 마음을 상하고 병들게 하지만, 좋은 쪽으로 누군가를 믿어주는 믿음은 모두를 일으켜주고, 세워준다. 모든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의심하지 않고 믿으니 내 마음이 편해진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누군가를 향한 미움 때문에 괴롭지 않다.

Give the benefit of the dou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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