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꽃들을 위하여

by 나무향기


수요일이면 늘 남편과 함께 찾는 코스가 있다. 우리 동네 탬보린 산(Tamborine Mountain)이다. 찰찰찰 탬보린이 아니고 여기 원주민 말로 ‘야생 라임 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탬보린 산에는 라임트리가 드문드문 많았다. 이름만 들으면 흥에 겨워 춤이라도 출 것 같은 산이지만, 실제로 가보면 수줍은 듯 아기자기하고, 숨은 구석이 예쁜 산이다.

남편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Picnic”이라는 카페이다. 카페 옆에는 도자기 샵과 그림 샵이 나란히 있는데, 도자기며 그림들이 아주 내 취향이다. 소박하면서도 깊은 정을 담고 있는 듯한 조그만 도자기들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투박하면서도 신비한 색으로 담아낸 그림들이 난 좋다. 그림과 도자기의 낭만적인 정취가 어우러져 있고,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이 머리를 맑게 하는, 자연 속에 살며시 얹힌 카페 같다.

우리가 찾는 수요일 오후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 책도 읽고, 한가로운 오후 공기를 실컷 마시기 아주 좋다. 이렇게 여유를 즐기고 에너지가 충전되면 카페 바로 옆으로 난 짧은 트래킹 코스를 걷는다. 드문드문 사람 사는 집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우거진 나무 숲이다.

이 길을 걷게 되면 이름 모를 꽃들을 많이 만난다. ‘이름 모를 꽃이 많기도 하네...’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름 모를 꽃’이란 말에 왠지 꽃들에게 미안해진다.

분명 이름이 있을 텐데, 나의 무지함으로 ‘이름 모를 꽃’이라고 불려지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우리는 쉽게도 이름 가진 꽃들을 그저 ‘이름 모를 꽃들’이라고 부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마치 내 인생의 배경 저 멀리 쯤을 장식하는 형체도 뚜렷이 보이지 않는 꽃들인 양 말이다.

김춘수의 <꽃>에 나오는 꽃처럼 아마 그 꽃들은 누가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 달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었을 텐데, 이름을 못 불러 준 것이 못내 미안하다.

이름을 불러 주지 못해 미안한 게 꽃만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니 내 인생에 만났던 수많은 이름 모를 꽃과 같은 사람도 정말 많았구나 싶었다. 나의 기억 속 한켠에 묻어 두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사이판 살던 시절 매일 싱글벙글한 웃음으로 물 배달을 해 주었던 어느 필리핀 아저씨, 나도 모르게 눈이 마주쳐 서로를 한참 응시했던 한 중학생 소년, 국민학교 시절 펜팔 했던, 글씨체가 무척이나 예뻤던 어느 소녀, 어릴 적 동네에서 만난 서울에서 놀러 온 꼬마, 너무 어려 어쩌면 유모차에서 바라보았을지도 모를 손길 따뜻한 어느 할머니...

갑자기 이 모든 사람들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름도 알 수 없고,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 한 구석에서 따스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그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모르고 있구나. 분명 모두가 이름이 있는데,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구나. 얼굴은 내 기억에 있는데, 나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먹먹하다. 얼굴은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 떠오르는데, 이름을 몰라 부를 수가 없다 생각하니 슬퍼진다.

그래도, 내 기억의 서랍 속에 잊혀지지 않고 숨어 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름도 모르지만, 내 인생을 따뜻하게 데펴 주던 그들이 고맙다. 이름 모를 꽃들 덕분에 잠자고 있던 내 소중한 그들이 다시 깨어난 것 같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 주지 않으면 뭐 어떤가? 내 기억 속에 이리도 선명히 남아 있는데... 내가 누군가의 이름 모를 꽃들 중 하나가 된다 하더라도 내가 그들의 기억 한 구석을 장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것 같다.

이름 모를 꽃들을 사진에 담아 와 이름을 찾아본다.

이름 모를 꽃들의 이름을 새겨 불러 본다.

내 인생의 이름 모를 꽃들을 위하여...


<사진출처: wallpapera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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