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잔디엔 벌금이 없긴 하죠.
호주 가정에서 일요일이면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는 가드닝이다. 잔디 깎는 소리가 새벽부터 요란하게 들린다. 일요일 아침을 잔디 깎기 기계 소리와 시작하는 일도 이젠 익숙해졌다. 요즘에 비가 자주 내린 탓인지 돌아서면 잔디가 쑥쑥 자라 있어, 매주 부지런히 잔디를 깎아야 한다. 사람으로 치면 이발과 비슷한 개념인데, 집을 좀 깔끔하게 보이려면 잔디를 잘 깎아줘야 한다. 잔디를 깎는 것뿐만 아니라 모서리 부분과 잔디 경계선 부분은 트리머로 세심하게 다듬어 주어야 한다. 온 식구가 달려들어 정원에 잡초를 뽑고, 가지치기를 하고, 잔디도 깎는다.
호주에선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가정이 대부분 잔디가 있어서 그 집의 잔디 상태로 집주인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판단하기도 한다. 잔디가 너무 자란 집을 보면 그 집주인은 게으른 사람이리라 생각한다. 나처럼 조그만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들의 압력도 받게 된다. 잔디를 제때 안 깎으면 옆 집에서 노크를 해서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너네 잔디 깎을 때 된 것 같아."
좀 더 살벌한 곳에서는 잔디 깎지 않는 이웃을 신고하기도 한다고 한다. 잔디를 제때 안 깎으면 벌금을 내기 때문이다. 호주 사람들은 좀 오지랖이 넓고, 준법정신들이 워낙 투철해서 딱히 그 사람에 대한 특별한 감정 없이도 법에 저촉되면 그냥 신고해 버리는 수가 많다. 그 '꼴'을 잘 못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심심치 않게 잔디를 제때 안 깎아 엄청난 벌금 테러를 당했다는 기사를 보곤 한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벌금인데, 잔디를 제때 안 깎아서 벌금 550만 원을 받은 아저씨 기사를 보았다. 사진에 보이는 아저씨는 잔디에 주저앉아 어이를 상실해서 넋 나간 웃음까지 흘리고 있다. 호주가 이토록 잔디에 목숨을 거는 건, 그 사람의 게으름을 괘씸하게 여겨서만이 아니다. 본인의 집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꾸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불성실함에 대한 질책이다. 그에 더해 마을의 외관을 훼손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아름다운 동네 풍경을 즐길 수 있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에 대해 벌금을 물리는 것이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누릴 아름다움에 대한 권리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벌금을 물리는 것이다.
덕분에 동네를 걸을 때면 늘 기분이 상쾌하다. 어느 집이고 할 것 없이 다들 깨끗하게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노력과 수고로 자신의 집뿐만 아니라 집 앞 동네 길을 걸을 이웃들도에게도 그 아름다운 정원을 즐길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정말 골프장 잔디처럼 잔디를 잘 가꾼 집 앞을 지나면, 눈도 즐겁지만 정신도 맑아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우리의 인생의 잔디는 어떨까?
좋은 음식을 가려 먹으려고 애를 쓰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운동을 하고, 영양제도 꼭꼭 챙겨 먹으면서 혹시 내 마음 잔디를 돌보는 일은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외모를 가꾸고, 건강을 챙기는 데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도, 내 마음을 가꾸고, 내 마음을 챙기는 일에는 얼마만큼의 투자를 하고 있는지...
아름다운 외모와 건강한 몸도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외면적인 것들은 나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오래도록 감동시킬 수 있을까?
인생의 잔디를 돌보는 일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바르지 못한 성향은 잡초 뽑듯 뽑아 버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성정은 잘 정돈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 모습을 비춰보고 돌아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지, 삐죽삐죽 모난 구석은 없는지, 너무 방치해 버려 잘라내고 깎아내야 할 부분은 없는지 수시로 살펴야 한다. 한 번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아름다운 자신을 결국 만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을 잘 가꾸고, 돌보는 것은 자신에게도 유익이지만 그의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신에게도 친절한 일이지만, 그를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도 친절한 일인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지만 '타인'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물론 인생의 잔디에 벌금은 없다. 자신의 마음을 잘 가꾸지 못한다고 벌금을 물릴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을 잘 가꾸지 못했을 때 나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준다. 나 자신도 아프고 힘들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할 수 있다. 벌금을 내진 않지만 대가는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 반면에 자신을 잘 가꾸는 사람은 자신도 그 아름다움을 즐길 것이고, 그의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아름다움을 맛보게 된다.
잔디를 다 깎고 나니 풀냄새가 진동을 한다. 풀이 깎이며 나는 냄새에 마음까지 상쾌해진다. 깎인 풀을 쓰레기통 가득 버리고 나니 내 마음이 청소되는 느낌이다. 인생의 잔디도 비워지고, 다듬어지고, 때론 깎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움만은 우리에게 남는다. 어쩌면 더한 아름다움으로 인생의 새로운 잔디가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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