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랑 열 살 차이 나는 늦둥이를 낳기 전에 우린 삼 형제였다. 내가 맏이, 둘째 여동생, 셋째 남동생 이렇게 셋이었다. 아주 어릴 때 치고받고 싸우던 시절의 기억엔 우리 삼 형제뿐이다. 막내는 너무 예쁘고 귀한 동생이라 감히 싸운 적도 없이 고이고이 보기만 해서, 치사하고 더러운 쟁탈전에 가담했던 형제는 늘 우리 셋이었다.
우리 셋은 고만고만한 두 살 터울 씩이라 말로만 언니고 누나지 친구나 같은 급이었다. 아홉 살 때 남동생에게 내 배를 발로 가격 당한 후 난 남동생은 제껴 놓았다. 녀석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늘 만만한 건 두 살 아래의 여동생이었다. 동생은 성격이 급하고, 행동이 앞서는 성격이라 차분한 나의 브레인 회전에 늘 말리곤 했다.
같이 저지른 잘못도 난 얍삽하게 동생에게 잘도 뒤집어 씌웠고, 동생은 억울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그 잘못을 다 뒤집어썼다. 좋은 물건이 생기면 공평하게 분배하는 대신 나는 나에게 유리한 게임을 제안해서 좋은 건 늘 내가 차지하곤 했다. 어릴 적 날 돌아보면 정말 얍삽하고, 얍삽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미안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하나 있는데, 신호등 사탕 이야기이다. 지금은 종류도 셀 수 없이 많은 사탕이 진열된 진열대를 보면 먹기도 전에 사탕에 질려 버려 먹고 싶은 생각도 싹 가신다. 하지만 모든 게 귀했던 내 어린 시절, 50원짜리 신호등 사탕을 손에 넣고 느낀, 그 달달함이 주는 흥분과 설렘은 지금도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신호등 사탕엔 사탕이 3개다. 빨강색, 노랑색, 청록색의 세 가지 맛 사탕이었다. 우리도 세 명, 사탕도 세 개이니 하나씩 나눠 가지면 되는데, 어떤 색깔 사탕을 차지하느냐가 늘 문제였다. 빨강 사탕과 노랑 사탕은 그 시절에도 흔한 사탕 색깔이었지만, 포도맛이 나는 에메랄드빛 청록색 사탕은 당시만 해도 진귀한 색깔의 사탕이었다. 그래서 우린 늘 청록색을 두고 쟁탈전을 펼쳤다.
남동생은 일찌감치 자긴 그냥 노랑색 먹겠다고 뒤로 물러서 노랑색 사탕을 입에 넣고 다람쥐 볼이 되어 두 누나들이 사탕을 두고 싸우는 작태를 구경했다. 브레인을 앞세운 나는 논리로 승부하려고 내가 엄마 심부름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에서부터 동생들과 놀아주기 위해 언니로서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를 내세우며 청록색 사탕을 가져야만 하는 당위성을 어필하려고 했지만, 논리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둘째에게 그런 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 작전으로 청록색 사탕을 내게 주면 앞으로 어떤 보상들이 있을지 감언이설로 둘째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둘째가 제시하는 대안은 늘 가위바위보. 어쩔 수 없다. 논리가 먹히지 않는 녀석에겐 가위바위보 만한 게 없지. 그렇게 3판 2승, 5판 3승 해가며 가위바위보를 했다. 내가 이겼을 땐 문제없지만, 내가 지면 난 승복을 못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정신줄을 부여잡고 연기에 돌입했다. 울음 연기로 서러운 맏이의 일생을 연기한다던가, 갑자기 어디가 아프다고 하며 그 청록색 사탕 하나만 먹으면 다 나을 것 같다는 둥 얼토당토않은 연기를 했고, 동정심 많은 동생은 늘 내 연기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리고 청록색 사탕은 늘 내 차지였다.
그래서 둘째의 기억 속엔 청록색 사탕은 없다. 동생은 가끔 남동생의 노랑색 사탕을 무력으로 빼앗아 먹기도 했지만 청록색 사탕은 결국 맛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왜 그리도 악착같이 청록색 사탕을 빼앗아 먹었는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얄밉다. 하지만 둘째는 그때 이야기를 꺼내면 원망 대신 두뇌를 풀가동한 언니였던 그 어린 꼬마가 귀엽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둘째는 남에게 나눠 주는 걸 어렸을 적부터도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한 번이라도 내가 양보했으면 동생에게 이렇게까지 미안한 마음은 안들 텐데, 동생에게 많이 미안하다.
이젠 모두가 40줄에 접어든 어른이 되었고, 모두 세계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아 무엇을 두고 쟁탈전을 벌일 일도 없다. 머리 맞대고 싸우던 그때가 그립다. 그 어린 꼬마 셋이 아련하다.
<사진출처: 꿀정보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