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같은 반 남자아이를 만났다.

by 나무향기

어릴 적 목욕탕은 가스실 같았다. 희뿌연 수증기 연기가 가득한 목욕탕은 들어서면서부터 숨이 막혔다. 벽에 붙은 환풍기는 그 연기 속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돌아가는 환풍기를 보면 나도 같이 돌아버릴 것 같았다. 살에 닿는 후끈한 공기와 연기 같은 수증기는 내 숨을 턱턱 막아 놓았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가스실에서 집단 살해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은 나에게 끔찍한 고통이었다. 숨은 쉬고 있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 뜨거운 온탕에 빠지면 죽을 것만 같은 느낌. 엄마가 똑바로 앉으라며 등을 찰싹찰싹 때리곤 껍질 벗기듯 때를 밀 때 몰려오는 공포. 이 모든 것이 혼합되어 난 목욕탕에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아무리 목욕탕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고, 숨이 안 쉬어진다고 엄마에게 호소해 보았지만 엄마는 무심히 나와 동생을 목욕탕에 밀어 넣었다. 껍질 벗기듯 때를 벗기고 빨갛다 못해 반들반들 닳아진 몸을 하고 목욕탕 밖을 나오면 마치 가스실을 탈출한 유대인이 된 것 같았다. 물론 목욕탕을 갔다 온 날은 커다란 보상이 주어졌다. 통닭을 뜯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은 바로 목욕탕 갔다 온 날이었다. 그래서 공포스러웠던 목욕탕 가는 길은 통닭을 머릿속에 그리며 참아내었고, 목욕탕에서 안 쉬어지던 숨도 통닭을 생각하면 다시 쉬어지곤 했다.


이렇게나 목욕탕 가는 건 끔찍스러운 일이었는데, 어느 날 더 끔찍한 일이 목욕탕에서 일어났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뿌연 수증기 연기를 헤치며 들어간 목욕탕 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낯익은 남자아이가 나를 놀란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같은 반 남자아이였다. 나도 놀라고, 그 아이도 놀라고..

그 남자 아인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왜 때문에 여탕에 들어온 것인가 말이다. 바가지와 대야로 중요 부위들을 급하게 가리고 저쪽 구석으로 황급히 종종걸음을 쳤다. 엄마가 이리 오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가 난다.

"으앙~~~~~."

그 남자아이였다. 걔네 엄마가 등짝을 내리치고 있었다.

"때도 덜 밀었는데 왜 나간다는 거야?"

벌겋게 손자국이 난 등은 희뿌연 수증기 속에서도 다 보일만큼 선명했다. 결국 그 아인 엄마 손에 잡혀 나가지도 못하고 때를 밀고 있었다.


이제 다신 저 쪽을 보지 않을 테다. 결심했지만 자꾸 그쪽을 보게 되었다. 갔나 안 갔나. 아직 있나, 없나. 그러는 동안 엄마는 내가 있는 구석으로 오셔서 사정없이 등을 밀고 가셨다. 등이 아팠지만,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꾹 참으며 숨죽이고 있었다. 하... 이 목욕탕은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순간 그 아이가 엄마랑 목욕탕 문을 열고 나간다. 다행이다. 그런데 정말 다행인 걸까? 내일 그 아이를 어떻게 보나? 한 걱정을 하다 보니 벌써 나는 엄마 손에 쥐어져 목욕탕 문을 나서고 있었다.

목욕탕을 갔다 와서 통닭을 뜯는데도, 통닭이 통닭 맛이 아니다. 비닐을 뜯는 것 같다.


다음날, 교실에 들어서자 그 남자아이가 먼저 와 있었다. 그냥 서로 모른 척하면 그만인데 그 바보 같은 아이가 쭐래쭐래 나한테 온다. 왜 오는 거야...!

"나 전학가."

어쩌라고, 목욕탕에서 봤다고 부끄러워 전학 가냐?

어찌 됐건 그날 이후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전학 가기 전날 때 빼고 광 내러 왔다 나를 마주쳤겠지... 설마 나 때문에 전학 간 건 아니겠지... 애써 나 자신을 위안하며 서로에게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옛날엔 왜 엄마들이 아들을 여탕에 데려온 건가? 아빠랑 남탕에 보내면 될 것을 왜 굳이 여탕에 데리고 온 건가? 다 아빠들 때문이다. 자식들을 챙기는 몫은 어디서고 엄마의 몫이니, 엄마들이 아들들을 여탕으로 데려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남동생도 엄마가 여탕에 데려왔었다. 우리 남편도 엄마 따라 여탕엘 갔다고 한다. 그 당시 아빠들은 애를 보는 일을 엄마들의 일로만 생각했던 것인가 보다.


여탕을 다녀간 아들들이여, 그것은 다 그대들의 아빠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을 데리고 간 엄마를 원망 말고, 당신을 데리고 가지 않은 아빠들을 원망하시길...


<사진 출처: 잉여부부 시골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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