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화장

에세이

by 나무향기

동네에 조그맣다면 조그맣고 크다면 큰 호수가 있다. 둘레가 4km이고, 보통 걸음으로 40분이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다. 나이가 마흔이 되고서 건강에 대한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이 호수를 걷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매일,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호수를 걷는다. 호수를 걸으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게 있다면 그건 건강이 아니라 여유이다. 360도로 펼쳐지는 호수의 풍경과 하늘의 모습은 내 정신을 맑게 해 주고, 내 삶에 여유를 준다.


호수를 걸으며 즐기는 여유 중 가장 큰 기쁨은 지는 노을을 감상하는 것이다. 일부러 노을을 보려고 해질녘에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호수를 자주 걷다 보면 매일매일이 명화 감상 시간이 된다. 호수라는 갤러리를 걸으며 매일 새로운 명화를 감상한다. 하늘이 만들어 낸 색채는 어느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다채로운 걸작이다.




젊은 20대 시절에는 매일 다른 색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하늘을 보며 하늘이 곱게도 화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화단에 심긴 분꽃의 색들이 하늘에 펼쳐지면 화장을 곱게 한 신부를 쳐다보는 것 같아 내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화장에서도 그라데이션이 중요한데, 노을에서 보이는 그라데이션은 인간이 손으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색과 색의 경계 없이 다른 색으로 변해가는 노을의 색감은 하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바라보는 노을은 달랐다. 화장(化粧)을 하고 있기보다 화장(火葬)을 하는 것 같았다. 저 위 먼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루 사이 벌어진 모든 슬픔과 고통을 화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의 맑던 하늘 모습을 다시 찾기 위해 모든 고단함과, 슬픔과 힘듦을 화장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노을을 바라보며 나도 하루의 슬픔과 고단함을 화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볼 때면 하늘을 안아주고 싶었다. 타오르는 불길로 자신을 화장하는 모습이 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안아주고 싶었다. 양손 벌려 하늘을 안아주고 싶지만 아무리 벌려도 모자란 내 손 대신 두 눈으로나마, 아름답게 화장하고 있는 하늘을 어루만져 주리라 생각했다. 하루의 슬픔을 정리하는 나를 껴안듯 하루의 고단함을 정리하는 하늘을 눈으로 어루만져 주며 하염없이 노을을 바라보았다.


화장을 끝낸 하늘은 어둠에 잠기고 곧이어 별들을 쏟아낸다. 모든 불순물을 깨끗이 태워버리고 다시 반짝이는 존재로 돌아온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 하늘은 고요히 빛나는 존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새벽이 차오르고 해가 떠오르면 다시 맑은 파란 하늘의 모습으로 일어날 것이었다.


나이가 드니 나도 하늘처럼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동안 내게 앉은 먼지와 마음의 때를 태워버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을만큼 아름답게 화장할 자신은 없지만, 나 자신을 정리하는 모습조차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밤하늘처럼 고요히 빛나는 꿈을 꾸다가 아침이면 새롭게 태어난 나를 만나고 싶다. 겉모습은 늙어가고 있지만, 하늘처럼 나도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

맑은 정신과 영혼을 가진 파란 하늘 같은 사람으로...

<사진: 골드코스트 어느 호수, 출처: 나무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