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차를 즐긴다. 차는 시간이 필요한 음료이다. 인스턴트가 어울리지 않는다. 과정과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커피를 한창 즐길 나이인 대학생 때도 커피숍 대신 찻집을 즐겨 갔다. 그때 즐겨 찾던 찻집 이름이 '다향만당(茶香滿堂)’이었다. 그곳에선 나의 젊음을 무르익게 하는 차향이 가득했었다. 차를 우리며 기다리는 시간조차 소중해지는, 차향이 가득한 곳에서, 차와 닮은 사람들과 차향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다. 그땐 그곳이 나의 힐링 장소였다. 아직도 그 찻집이 그 자리에 있는지 궁금하다.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차를 마시지 않아도 차향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자연 속에 있을 때 어디선가 맡아본 차향이 내 코끝을 스친다. 풀잎 사이를 걸을 때도, 나무 사이를 걸을 때도, 계곡 옆에 있을 때도 차향이 느껴진다. 그러면 그곳이 바로 다향만당이 된다. 다행이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그 옛날 그 찻집을 다시 가지 않아도 그때 느꼈던 차향이 가득했던 그곳의 분위기를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어 다행이다.
차는 아무나 마실 수 없다. 그래서 커피도(coffee道)는 없어도 다도(茶道)는 있다. 차를 마시는 데는 예법이 필요하다. 김명배의 <茶道學>에서는 다도를 차를 마시며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라고 말했다. 찻잎을 준비하고 차를 우려 마시는 모든 과정이 덕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자연을 즐기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없다. 자연을 대하는 데도 예법이 필요하다. 자연을 눈으로만 스치는 풍경이라 생각하면 자연이 하는 말을 오롯이 즐길 수 없다. 안타깝게도 자연을 즐기러 나선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자연을 담기도 전에 사진으로 담기에만 급급하다. 자연은 눈으로 담기에도 부족하고, 마음으로 담아야 하는 것인데 사진으로 담기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자연을 즐기는 모든 과정은 마치 차를 마시는 것처럼 덕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찻잎을 준비하고, 적절한 온도의 깨끗한 물을 준비하듯, 자연을 대하기 전에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내 마음의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고, 온전히 맑고 투명한 눈과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자연이 하는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달력의 그림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준비된 마음으로 자연을 보고 즐겼다면, 이젠 깊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차를 우려내듯,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을 투자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우려진 차를 즐기듯 자연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차향이 가득한 곳에 서 있듯,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향에 취하게 된다.
요즘 사람들은 제대로 우려내지 않은 차를 마시듯, 자연을 서둘러 찍고 가기만 바쁜 것 같다. 다도를 배우듯, 자연을 즐기는 법도 배울 필요가 있다. 자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니 쉽게 주어진 만큼 쉽게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선 안된다. 자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건 그만큼 우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차를 우려내듯,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나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차를 우려내듯 자연을 마주하면 내가 서 있는 그곳이 다향만당이 된다. 내가 자연 속에서 있을 때, 그곳이 그만의 향으로 가득 찰 때까지 여유롭게 즐기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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