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맨발로 걸어보긴 처음이다. 바닷가에서 모래밭은 맨발로 많이 걸어 봤지만, 흙길을 맨발로 걷는 것은 처음이다. 매번 걸었던 산길을 신을 벗어 들고 걸었다. 말기암 환자가 맨발로 흙길을 걷고 두 달만에 완치되었다는 기사의 링크를 친구가 보내주었다. 남편도 같은 기사를 보고 와서 맨발 걷기를 해보자고 나를 꼬드겼다.
“그럼 부시맨은 병에 걸릴 일이 없겠네?”
라는 내 말에 남편은 일단 걸어 보자며 날 이끈다.
흙이 묻으면 무슨 큰 오물이라도 묻은 듯 호들갑을 떨던 내가 자진해서 신을 벗고 흙을 발에 묻히고 걸어본다.
신을 신고 느끼던 흙길을 맨발로 느껴보니 모든 것이 새로웠다. 흙 위로 솟아난 나무뿌리, 이름 모를 흙 위에 떨어진 자잘한 나무 열매들, 낡아 헤진 나뭇잎, 솟아오른 바위. 모든 것이 발로 감지되는 새로운 촉감이다. 처음 흙길에 발을 내디딜 때는 어그적 어그적 걸을 수밖에 없었다. 발바닥을 찌르는 작은 돌멩이들에 '아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좀 더 걸어가니 산길의 돌멩이들은 줄어들고 보드라운 흙길이 나온다. 진흙이 굳어진 듯한 붉은 적토 길이다. 단단한 길이지만 내디딜 때마다 흙의 쿠션감이 느껴진다.
신발을 벗어던진 하얀 발이 흙 위를 걸어 나갈 때마다 머쓱하다. 흙을 오물처럼 대했던 내가 하얀 발에 시꺼먼 흙을 묻히고 있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정말 접지(earthing)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플라세보 효과 때문인지,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진다. 산은 고요하고 새소리만 가득하다. 새소리에 머리를 적시고, 발에 흙의 숨결을 적신다. 신발을 들고 걷는 우릴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환히 웃어준다. 두꺼운 등산화를 신고 걷는 이들이 단출하게 신발 두 짝을 들고 걷는 우릴 보며 부러워하는 눈빛이다.
발바닥은 처음 느끼는 다양한 형체의 다양한 자극에 어리둥절한지 얼얼해 온다. 한 시간 가량을 그렇게 지구와 접지하고 나서 발바닥을 보았다. 흙이 떡이 되어 들러붙은 곳도 있고, 발바닥은 불 피우다 검댕이를 잔뜩 묻힌 시골 아이 얼굴 같다. 웃음이 난다. 이렇게 발바닥이 더러워진 것을 본 적이 없다.
발바닥이 너무 더러워져 발을 씻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남편은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으니 대충 털어내고 집에 가서 씻자고 한다. 너무 더러워 물티슈로라도 닦아 내야 할 것 같다고 하니 남편은,
"흙이 뭐가 더러워. 흙은 아마 우리 발이 더 더럽다고 할 걸? 그 더러운 발로 자기네 깨끗한 몸을 밟았다고 흙이 더 속상해할 걸?"
하며 웃는다.
그런가? 내 발이 어쩜 더 더러운 건가? 양말과 신발에 갇혀 꼬리꼬리 한 내 발이 어쩜 비와 공기로 정화된 흙보다 더 더러울 수 있겠단 생각이 그제야 든다. 색이 검정에 가깝다고 더러운 게 아닌데, 내 발이 더 희다고 깨끗한 게 아닌데, 흙은 본연의 자기 모습에 가장 충실하게 깨끗한 상태이고, 내 발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인위적인 것들에 파묻혀 세균이 득실거리는 더러운 상태일지도 모른다.
호주에선 신발 없이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희한한 게 호주 사람들 중엔 집 안에선 신발을 신고, 밖에선 신을 벗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처음엔 별 일이다 싶었다. 밖에선 신을 신고, 집에선 신을 벗고 들어가는 게 당연한 한국 사람에겐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하지만 이젠 왠지 알 것 같다. 자연 속에선 맨발로, 인간이 지은 건물 안에선 신발을 신는 게 어쩌면 맞는 일이라 생각된다. 자연 속에선 발이 맞닿아야 하고, 인간의 집은 어쩜 발이 맞닿아서는 안 될 바닥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더럽다고 생각하던 것이 실은 깨끗한 것이었고, 내가 깨끗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더러운 것들인지도 모른다. 함부로 흙을 더럽다 했던 나 자신이, 함부로 신을 신고 집 안을 다닌 호주 사람들을 이상하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흙을 아무리 털어내도 흙은 내 발바닥이 좋은지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 좋으면 한 동안 붙어 있으라고 씻지 않았다. 흙 묻은 발이 낯설지만 정겹다. 흙길을 맨발로 걸으면 몸만 접지 되는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을 흐르던 전류들도 고요히 접지가 된다. 땅과 맞닿은 발바닥만큼 내 마음도 지구 저 밑의 그 무언가와 연결되어 맘 속 불순물이 소멸되는 느낌이다.
흙은 내 마음도 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