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의 불편한 경고
무선청소기가 갑자기 작동하질 않는다. 배터리가 곧 임종을 알리고 있다. 하루 종일 충전했는데 겨우 10초 돌아가고 멈추어 서버린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나에게 도전이 되는 상황이다. 이제 무선청소기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 편하려고 또다시 새로운 무선청소기를 들일 것인가? 고뇌에 빠진다.
이제껏 숱한 무선청소기와 자그마치 20년을 같이 지냈다. 망가지면 새로 사고, 새로 사고... 무선청소기 없이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유선청소기가 있긴 하지만, 유선청소기는 너무 거창하다. 간단히 머리카락이나 부스러기를 치울 때는 선을 빼내고, 콘센트에 꽂아 육중하신 몸을 옮겨 청소기를 돌리는 일이 너무 번거로웠다. 그래서 제대로 된 청소를 할 땐 유선청소기를, 가볍게 보이는 부스러기들을 치울 땐 무선청소기를 사용해 왔다. 세월은 흘러 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이젠 더 이상 아무런 고민 없이 새로운 무선청소기를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무선청소기는 나에게 꼭 필요했던 존재였을까? 고민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그냥 편하게 살면 되지 무슨 고민이냐고 하겠지만, 이젠 나의 그냥 편하게 살자가 내가 사는 이 지구에겐 불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며 지구를 편하게 할 것인가, 조금 편하자고 지구를 불편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선청소기를 사지 않기로 했다. 유선청소기 하나로 만족하며 살기로 했다. 나보다 더한 남편은 유선청소기마저 팔아버리고 그냥 빗자루질하며 살자고 하지만, 아직 난 그 정도로까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유선청소기가 사망신고를 하면 그땐 좀 고민해 볼 여지가 있지만, 멀쩡한 유선청소기를 팔아가며까지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정도는 아닌 난 아직 그저 중수 단계이다. 고수가 되려면 좀 시간이 걸릴 듯.
우린 불편을 감수하기를 불편해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편함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불편을 거부하는 이 세상은 그래서 불편해졌다. 불편함을 불편해할수록 우리가 사는 환경은 더 불편으로 치닫고 있다. 편리함만 쫒던 세상은 우리가 살기에 부적절한 불편한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알 수 없는 싱크홀, 물 부족 국가였던 이 호주라는 나라에선 연일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고, 세계 곳곳에선 지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구는 몸을 꿈틀대며 계속 불편을 외치고 있지만 안일한 인간은 안일한 편리를 추구하고자 지구의 불편을 묵인하고 있다.
쉽게 말하는 ‘그냥 편히 살자'는 심각하게 '불편한 세상'을 만들고 말았다.
무선청소기 없이 한 달이 흘렀다. 자질구레하게 떨어진 머리카락과 부스러기를 치우자고 5 미터나 되는 전깃줄을 뽑아 콘센트에 꼽고 무거운 청소기를 휘두르는 일이 편하진 않다. 하지만 처음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가 '10'이었다면 이젠 불편함이 '3'정도로 줄어들었다. 불편도 경험치가 쌓이니 익숙해져 불편함을 못 느끼게 된다. 몇 달이 더 흐르면 내가 언제 무선청소기를 썼던가 할 정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내가 새로운 무선청소기를 사지 않은 것이 어쩌면 버터플라이 효과를 일으키게 될지 어찌 알겠는가? 한 번 더 일어날 지진을 멈출지도 모르고, 한 번 더 있을 싱크홀을 막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 하나로는 부족하다. 나처럼 조금의 불편을 감수할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면 지구는 우리가 살기에 더 편한 세상을 제공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불편함을 감수하기가 불편한가?
그 불편은 당신에게 우리가 더는 살 수 없는 불편한 세상을 가져오게 할지도 모른다.
<사진: 호주 target 무선청소기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