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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28. 2019

쇼핑 중독자들의 특징!

테오도라 #14. 너를 보내고 다시 100일을 맞이하며..


트럭에 가득했던 옷과 가방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곳은 전주의 조카 결혼식장에서였다. 그 순간부터 시신 수습을 하고 장례식장에 안치한 후 변변한 장례식도 없이 화장을 하고 추모공원에 안치를 할 때까지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사람처럼 모든 상황이 낯설게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 나조차 낯선 사람이었고 내가 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모든 것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례를 치러도 가족들밖에는 올 사람이 없었다. 그녀의 친구들조차 올 사람이 없었고 누가 친구인지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가족끼리 간단한 미사만으로 장례를 대신하고 부검이 끝나자마자 화장을 진행하고 추모공원에 안치되었던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녀의 장례절차가 마무리되자 집주인과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집주인은 모든 것의 원상복귀를 요구하고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요구라 청소업체를 불러 정리를 시작하였다.



그녀의 3개의 방에는 옷과 가방들로 가득하였다. 트럭 한 대 분량의 옷과 가방들을 모두 버렸다. 그것도 돈을 주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냄새가 배어 달리 처분할 길이 없었다. 트럭으로 한대 분량을 버리고 나서 청소업체를 불러 청소를 하였다. 약물 처리로 냄새 제거하는 청소는 3번이나 하였다. 그 정도로 집안 구석구석에 냄새가 배어 있었다. 심지어 월세 계약서에도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계약서와 노트북 그리고 휴대폰 2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버렸다. 달리 챙길 유품이 없었다. 모두 옷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포장 그대로인 옷들도 있었다. 그녀는 늘 돈이 쪼들리고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였다. 그녀가 간호사라는 직업도 있고 부양하는 부모나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힘들다고 할 때마다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심지어 형제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쪼들린 이유를 그녀가 떠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독한 쇼핑 중독자였다. 그녀의 옷과 가방들은 대부분 명품들이었다. 그녀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바로 쇼핑이었다. 그것도 점점 나이 들어가고 시들어가는 자신을 위한 투자는 성형과 쇼핑이었던 것이다. 니체가 말한 죽음에 대한 거부는 테오도라에게도 유사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자신의 꿈과 이상은 그대로인데 점점 나이는 들어가고 외모는 젊음의 탄력을 잃어가는 것을 거부해야만 하였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일상의 거부였고 그 거부에는 돈이 필요하였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돋보이는 옷이나 가방이라는 사들였다. 문제는 싸구려 옷이나 가방으로는 돋보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싼 옷이나 명품 가방들을 사들이 것이다.


그것이 테오도라의 죽음에 대한 거부였던 것이다. 살기 위해 그녀는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 그녀의 생각대로 세상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요즘 티셔츠나 청바지만 입어도 늘씬하고 예쁜 여자가 얼마나 많은가? 아무리 명품으로 치장을 해도 그녀는 이미 40이 넘은 나이였다. 그 한계는 노력으로 극복하기에는 말 그대로 한계가 너무 컸다. 버리고 또 버려도 끝이 없는 옷들과 가방들은 테오도라의 한계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나 처절하게 죽음이라는 것들에 대항에 매일매일 사투를 벌였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녀의 유품들을 정리한 후 세 번의 대청소가 이루어졌다. 모두 약품을 이용한 대청소였다. 100일 동안이나 집안 구석구석에 밴 냄새를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장판을 교체하고 도배까지 새로 해주었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보증금 한불을 요청하였지만 주인은 요지부동이었다. 내년 5월까지는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유는 계약기간이 2년으로 종료일이 5월이라는 것이다. 참!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죽어서 그 계약을 지속할 수 없는 불가항력 요건이 사유가 되어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였는데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변호사들의 의견도 서로 갈리었다. 하지만 계약서가 우선이라는 변호사들이 훨씬 많았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가 치밀었다.


법치 국가에서 법이 우선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불가항력 요건으로 그 계약을 지속할 수 없는 경우에도 그 계약서라는 종이 쪼가리가 우선이라는데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다른 입주자를 들였다가 입주자가 입주 후 사고 소식을 알게 되었을 경우, 그 배상책임을 집주인은 질 수 없다고 먼저 선포하였다. 쉽사리 부동산에 내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괜히 잘못 입주자를 받았다가 입주자가 사고 소식을 듣고 나가겠다고 하면 그냥 나갈리는 만무하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이사 비용은 물론이고 부동산 비용, 심지어 정신적으로 받은 총격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요구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진퇴양난인 상황이다. 집주인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들어가 사는 것은 어떤지 물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테오도라 친오빠는 나에게 그런 제의를 한 것이었다. 텅 비어있는 그녀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고 방도 많았다. 비워두기 아까운 집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장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텅 빈 휴대폰과 노트북

     

그녀의 유품들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은 휴대폰 2대와 노트북 한 권 그리고 계약서가 전부였다. 그나마 노트북에는 아무런 글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블로그도 하지 않았다. 거의 절망 속에서 세상과 담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트북은 단지 유튜브나 TV 등의 영상이나 영화를 보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SNS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면 죽음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글들이 분명 다수 발견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흔적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이 왜 두 개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휴대폰 내용에도 특별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은 카톡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카톡은 비밀번호를 알아야 열 수 있었지만 비밀번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카카오 측에 문의해도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경찰은 관심도 없어 보였다. 이미 사인이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조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 사인불명이라는 것으로 모든 사건은 일단락되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트북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가져가라고 하여 패기 처분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빈 노트북을 유품이라고 남겨둘 수는 없었다. 노트북에서도 냄새가 아직까지 나고 있었다. 100일간의 냄새는 모든 것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왜 그녀는 아무런 취미나 사회 활동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그녀의 사생활이어서 그것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내가 자주 만나서 생맥주라도 한잔씩 하고 대화의 끈을 이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패기 되는 노트북을 보면서 들었다. 노트북을 패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여동생을 패기 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 때는 단순히 외롭고 고독해서가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할 때이다. 그 누군가가 단 한 명 이상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정받으려 해도 인정해줄 누군가가 없을 경우에는 더 이상 살아갈 동력을 잃고 만다. 설사 그 누군가가 단 한 명 남아있었는데 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럴 경우에는 달려드는 죽음과의 사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죽음들을 뿌리쳐야만 삶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라고 니체가 강조했던 이유도 삶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자칫 위험에 빠질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테오도라는 그 위험에 빠졌고 사투를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텅 빈 노트북이 이미 그녀의 패배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녀의 노력이 트럭 한 대 분량의 옷과 가방으로 설명된다고 하지만 그 노력은 단기간이 아니고 오랫동안 유지해온 것이다. 삶이 무너지고 죽음에 패배하는 일은 한순간이다. 모든 승패는 순간에 결정된다. 그녀의 명품 백중에는 내가 보내준 버버리 토트백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청소하기 전에는 테오도라 집을 가보지 않아서 모든 상황은 오빠와 언니로부터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녀의 친오빠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겼다. 심지어 그녀의 시신의 상태까지도 다 사진으로 남겼다. 혹시라도 나중에 재수사할 생황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확률은 아주 희박하지만 혹시라도 타살의 정황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여자이고 만나는 남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는데 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최신 통화 내역들만으로는 그것까지 수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야 할 CC TV가 현관이나 집 입구에 없었다. 아파트였다면 그런 상황은 쉽게 파악이 될 수 있다. 현관이나 주차장 입구에 반드시 CC TV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녀의 텅 빈 노트북과 별다른 통화 내역이 기록되지 않은 휴대폰들에서 그녀의 삶을 추정만 해볼 뿐이다. 타살이어도, 자살이어도 혹은 병사여도 달라질 것은 없다. 그녀는 이미 죽었고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어도 그녀의 흔적은 남아있고 그녀가 남기고 간 빈집의 처리도 그렇고 우리에게는 아직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 그 일들이 다 처리되는 시점은 아마도 내년 6월이나 7월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보증금은 상당히 액수가 큰 금액이고 상속인은 어머니이다. 주인이 쉽게 돌려주지 못하는 이유도 세입자가 들어와야 그 돈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냥 주인만 탓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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