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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06. 2019

나만 외로운 걸까? #16 비 오는 런던 거리를..

후기 청년기의 우울과 외로움에 관한 연재




리젠트 스트리트

     

책을 쓰고 있는 하루 종일 춘천에도 비가 내리려나 보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제까지 갑자기 치솟던 온도계의 수은주는 잠깐 멈춤이다. 오늘은 제법 쌀쌀함마저 느끼게 하는 날씨다. 아마도 비의 위력 이리라! 그동안 한국에 와서 여러 차례 비가 내렸지만 비를 보고 영국 런던을 떠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에 대한 추억이나 그리움을 음미하며 식어버린 커피 잔을 만지작거려본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20여 년의 이민 생활과 외국에서의 결혼 생활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몇 년 전 겨울로 기억된다. 런던은 일요일 아침이었고 거리는 조용하였다. 기차는 의례적으로 연착이 반복되었다. 일요일은 배차 간격도 길지만 엔지니어링 작업으로 구간구간 버스로 환승하는 불편함이 따르기 일쑤다. 2백 년이 넘는 노후한 선로의 유지보수는 노인들의 몸 상태만큼이나 간단치 않아 보인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우산도 없이 워털루 역까지 가는 기차에 올랐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나가는 풍경들에 생각들을 맡겨본다. 기차의 유리창을 때리는 빗방울들은 쉼 없이 달려와서 부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의미조차 부여할 수 없는 빗방울의 행위처럼 나는 이유 없이 런던 시내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만 있을 뿐 구체적인 세부계획이 전혀 없었다. 텅 빈 집에서 혼자 일요일을 보내는 것이 싫어서 무작정 나왔다고 하기에는 이유가 석연치 않았다. 날씨가 심하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지 비만 오는 게 아니라 바람도 상당히 드셌다. 워털루역 까지 가는 30분 동안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차는 반쯤 비어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앉을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야 하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기차는 서서히 종점이자 시발점인 워털루 역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워털루 역은 한산하였다. 워털루 역에 도착하자 행선지를 정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갈만한 곳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럴 때 갑자기 전화해서 커피 한잔 마시자고 할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맛있는 점심 사줄 테니까 나오라고 할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선도 방향도 확인하지 않은 채 한산한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무 역이나 마음 내키는 역에서 내릴 심산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린 곳은 시내 중심의 피카딜리서커스라는 곳이었다. 왜 그곳에서 내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곳이 피카딜리서커스라는 것만 기억난다. 지하철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굵은 빗줄기가 바람에 반쯤 휘어진 채 꾸부정하게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우산이 없었다. 아니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은 사실은 이미 출발할 때부터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었다.

     

주춤거리다 일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방수재킷의 모자를 쓴 다음 지퍼를 목 앞까지 최대한 끌어올렸다. 그런 다음 나는 무작정 리젠트 스트리트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12월 초였는지 거리에는 요란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화려하게 달린 채 비를 맞고 있었다. 상점들은 저마다 세일 포스터로 도배질을 해놓았다. 브렉시트로 인한 영국의 경기 침체는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심각하였다. 물가는 계속 올라가고 환율은 떨어지면서 국민들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않고 있었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국민들조차 재투표를 요구할 정도로 영국은 경제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자존심은 그다음 문제였다. 파운드화의 약세 덕분에 관광객들은 많이 늘었다. 대신 영국인들의 발이 묶여버렸다. 파운드와 유로의 화폐가치가 거의 같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을 배척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로 인한 투표 결과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이민자가 아니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리젠트 스트리트는 아치형의 예쁜 거리가 일품이다.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함께 런던의 심장부로 불리는 거리다. 거리 양쪽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품 가계들과 백화점 등이 있고 한 블록 안쪽에는 유명 식당들이 몰려 있다. 나는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운동화와 바지는 이미 완전히 젖어 있었다. 방수 점퍼도 안쪽으로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얼마만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비를 흠뻑 맞고 런던 시내를 배회하고 싶었다. 90년대 초반 런던으로 처음 어학연수 왔을 때 자주 했던 방식이었다. 그때는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비를 실컷 맞았다.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혈기왕성할 때의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소위 말하는 똥 폼 좀 잡고 나면 직성이 좀 풀리기는 하였던 것 같다. 그 행위가 결코 멋있고 낭만적이어서는 절대 아니었다. 20여분을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느새 옥스퍼드 서커스 사거리에 와 있었다. 내 의사와는 달리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사거리에서 직진할지 좌회전할지 아니면 우회전할지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뜻밖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돌아서서 다시 리젠트 스트리트를 걷기 시작하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방금 전에 걸었던 리젠트 스트리트는 여전히 아름다운 아치 형태의 곡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나처럼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걷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었지만 그들과 어떤 동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중간쯤 와서 우측으로 버버리 본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는 직원이 일하는 곳이라 반가운 마음에 잠깐 얼굴이라도 보려고 생각하다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그 직원은 주말만 근무하기 때문에 오늘 틀림없이 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행색으로 매장 안에 들어가기에는 좀 그랬다. 그 친구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다. 그다지 친한 친구도 아닌데 이러한 남루한 모습으로 들어가서 인사하면 오히려 그 친구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다.

     

피카딜리 서커스에 거의 다 와 가는데도 비는 여전히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피카딜리 서커스는 중심부에 오줌 싸는 소년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거리이기 때문에 옵션이 하나 더 생겼다. 어느 길로 들어설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길을 선택하였다. 당연히 그 길은 우회전이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우측 코너에 하이드 파크가 보였다. 한참을 망설여야만 했다. 계속 비를 맞고 걸을 것인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씻고 옷을 갈아입을 것인지를 두고 10여분 이상을 고민하였다.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결국은 하이드 파크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빗줄기는 조금 약해졌다. 호수가의 벤치에 앉아 잠깐 쉬려니 몸에서 김이 올라왔다. 이러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다시 공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운 좋게 택시를 잡아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는 다시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의미 없는 일요일 오전이 그렇게 맥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시내를 거닐어도, 비를 맞아도 외로움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도 마찬가지였다. 실체도 없는 외로움과 그렇게 한나절을 꼬박 씨름을 하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택시는 집 앞에서 내렸고 나는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외로움보다 더 급한 것은 당장의 한 끼였다


일상

     

누구에게나 잔잔한 일상이 있다. 그 일상은 소소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는 지겹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중하다. 나의 일상에는 항상 축구가 끼어 있었다. 그 축구는 내 삶의 구심점이자 원동력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런던에서의 이민 생활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단조로워져 가기 시작하였다. 한가한 시간에는 가끔 10년 치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특별한 일을 찾아보지만 눈에 띄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나는 점점 무언가를 찾아 나서기 시작하였다. 물론 주말마다 축구도 열심히 하였지만 축구마저도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축구에 흥미를 잃어간다는 이야기는 삶의 의미를 잃어간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는 특별한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모든 일에 싫증이 나고 의욕도 없어져 갔다.

     

그렇게 잔잔한 일상은 나를 아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한 권 읽어도 그다음 날 생각해보면 그 내용이 전혀 떠오르질 않았다. 나는 아주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 조금씩 함몰되어 가고 있었다. 주말이면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 보기도 하고 헤어스타일을 색다르게 바꿔보기도 하였다. 마치 어떤 늪에 빠진 사람처럼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늪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나는 점점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런던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많다.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든 거부해 보려고 카메라를 둘러매고 공원으로 달려가곤 하였다. 하지만 내 카메라 앵글에는 내가 그동안 보았던 평범한 일상들만 들어올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특별하고 멋진 한 컷이었지만 단 한 번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세상을 평범하다고 정의하고 단정해 버리는 순간 세상은 평범해지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나는 평범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평범한 일상과 싸우다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이었다. 내가 왜 평범함과 싸워야 하는지 곰곰이 사색에 잠겨 있던 순간이었다. 우리 집 고양이 단오가 갑자기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빙빙 도는 행위를 하였다. 개들이나 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고양이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내가 볼 때 고양이는 그 꼬리를 잡아도, 잡지 못하여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떠 오른 생각은 내가 고양이와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원히 잡히지 않는 꼬리를 잡으러 발버둥 치고 있는 나였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잡으려고 나는 빙빙 세상만 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잡히는 법이 없었다. 그냥 평범한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가면 될 텐데 라는 생각에 이르자 드디어 자유로움을 느끼며 해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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