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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07. 2019

오빠, 난 말이야! 부잣집 아들 아니면 쳐다도 안 봐

테오도라 #18(최종회) 너를 보내고 다시 100일을 맞이하며..



삶을 이어가는 이유

     

내가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니체가 정의하기 이전부터 나만의 철학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니체의 생각과 어느 정도 중첩이 되었다. 신을 보는 각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니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니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의 꿈은 니체를 좀 더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나이 든 철학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학위 없는 철학자가 되고 싶다. 저서로 말하는 그런 철학자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죽지 않기 위해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죽는 것은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의지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 의지를 사용할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못해낼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불행한 것도 비교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일 뿐이다. 행복하려고 살지도 불행하려고 살지도 않는다. 살다 보면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오늘 하루를 얼마나 뜻깊게 보내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내일 또는 내년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내일이나 내년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할 가능성도 있다. 하루를 살아도 뜻깊게 살다 가고 싶다. 자존감을 지키려고 나를 옥죌 필요도 없다. 나답게 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다 가고 싶다. 가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제는 대략 짐작을 할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하루가 더욱 소중해졌다. 사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다만 죽는 날이 모두 비밀로 되어있을 뿐이다. 잠깐의 인생에서 죽는 날을 굳이 까발리고 군에서 제대하듯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비밀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공공연한 비밀이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우리는 죽음을 애써 외면하려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노력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좀 더 단순하다.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태어난 이유나 목적은 알 수 없다. 아니, 알 필요조차도 없는지 모른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갖고 살지는 않는다. 그냥 태어나서 살아갈 뿐이다. 길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은 그 강한 생명력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새끼들이 태어나면 길고양이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출산을 한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을 키우는 모성애를 보면 놀랍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대여섯 마리를 키워내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제대로 먹지로 치료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길고양이처럼 살고 싶다. 그들은 나처럼 또는 나의 둘째 아들 검은 고양이 단오처럼 이기적이지 않다. 자연에 그리고 본능에 순응하며 산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새끼를 낳아 기른다. 삶은 그처럼 이유가 있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고 이왕 사는 것이라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다 가고 싶다.

     


너를 추억하며

     

이제 네가 떠 난지 100일이 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벌써 200일이다. 100일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있던 너를 깨워준 것은 5월 초의 더운 날씨였는데 벌써 여름의 절정을 넘기고 가을로 접어들고 있단다. 네가 어렸을 때 너무 귀여워서 유달리 너를 예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한동안 너를 만날 수가 없었지. 아마 성인이 되어 서울에 있으면서 다시 너와 연락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너는 그때 간호사가 되었고 나는 직장인이 되었지. 오빠 장가보내준다고 아가씨도 소개해 주었던 기억이 나는구나! 그때는 결혼에 관심은 있었는데 내가 봉사 활동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한번 만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너는 여러 번 소개해주려고 했고 나는 다음에 라는 말로 자꾸 사양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구나! 누군가를 위해 배우자감을 소개해 준다는 의미는 그 사람을 완전히 믿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함부로 사람을 소개해 줄 수 있겠니. 그것도 같은 직장의 친한 친구나 언니를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너는 참 착하고 좋은 아이였어. 그런데 자꾸 돈에 구속이 되면서 너의 생활이 꼬이기 시작하지 않아나 싶어. 나는 가끔 네가 했던 말들이 농담인 줄 알았어. 부잣집 아들 아니면 쳐다 도 안 본다고 했던 그 말들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부잣집 아들들이 그렇게 단순하지도 착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너는 왜 몰랐을까? 그렇게 첫 단추부터 잘못되면서 너의 인생은 꼬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 이야기는 그저 동화일 뿐이야.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화가 되고 소설이 되는 거야!

     

이제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휴식을 취하기 바란다. 욕심을 부린다고 내 마음대로 그리고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없는 것 같구나. 오빠도 순리대로 살려고 노력해. 내 주제를 알고 분수껏 살고 싶어. 하루를 살아도 스트레스 없는 삶이 진정한 삶이고 행복이 아닐까? 물론 항상 그럴 수는 없는 게 삶이고 인생이지만 그래도 하루살이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에필로그


     

테오도라라는 이름은 천주교에서 여자의 세례명으로 쓰이는 이름이다. 나는 동생이 죽기 전까지 세례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인 줄 몰랐다. 단  한 번도 종교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오도라라는 이름이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동생이 화장되어 재로 나오고서야 나는 테오도라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였다. 납골함에 동생의 이름과 함께 세례명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지 100일 만에 발견되어 빈소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부검과 동시에 화장되어 서울 외곽의 추모공원에 동생은 지금 안치되어 있다. 얼마 전에 49제를 치렀고 며칠 후면 다시 100일이 되어간다. 시간은 그렇게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다. 엊그제 다녀온 테오도라의 집에서 그녀의 자취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정리되고 버려졌다. 청소도 몇 차례 전문 업체에서 깔끔하게 하였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무인도에서 100일간이나 누워있어야 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고 고통이었다. 이제는 1인 가구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1인 가구가 곧 1인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옆집에서 누가 죽어도 알 수 없는 1인 가구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독거노인들 위주의 정책이 펼쳐지는 한 제2의 테오도라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제는 모든 1인 가구에 확대되어야 할 우리의 과제가 되어 버렸다. 이들의 삶을 감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시스템을 정부 차원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외로움을 정부차원에서 관리하고 우울증처럼 질병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기로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1인 가구와 외로움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길 바란다. 개인과 가정 문제를 더 이상 그들만으로 문제로 방치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개인과 가정문제가 곧 사회문제이고, 사회문제 속으로 들어가 보면 개인과 가정문제라는 고리와 연결되어 있다. (총 18편의 연재 글들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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