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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07. 2019

능소화처럼 일찍 졌다고 슬퍼하지 마!

테오도라 # 17 너를 보내고 다시 100일을 맞이하며..



네가 살던 집에 갔다 왔어

     

현관문은 비밀번호 없이 누구나 출입이 자유로웠다. 감시 카메라도 없었다. 열려있는 현관문을 보는 순간 이런 집에 여자 혼자 살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과 3층은 방이 2개씩 있었고 4층만 방이 하나였다. 전형적인 옛날식 구조였다. 맨 꼭대기 층은 넓게 해서 주인 가족이 사는 형태였다. 나도 이런 집에서 몇 차례 월세로 살아본 기억이 있다.

     

우리는 4층의 401호에서 머뭇거리다가 옥상 문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고 옥상부터 올라갔다. 옥상은 깨끗하였고 텅 비어있었다.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작은 장독대 3개가 있었다. 아마도 301호의 것처럼 보였다. 301호는 신혼부부가 사는 듯 보였다. 아기가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전망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였다. 지대가 워낙 높다 보니 전망이 좋았다. 웬만한 곳은 다 내려다 보였고 뒤쪽은 야트막한 산이 보여서 더욱 좋았다. 야트막한 산은 아닌데 테오도라의 집 옥상에서 보니 야트막한 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잠시 전망을 감상하다가 이제 그녀의 방에 들어가 볼 시간이다. 상당히 긴장이 되었다. 비밀번호 4자리를 누르는 손 끝에 힘이 들어갔다. 마침내 현관문이 열렸고 그녀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거실과 거실에 딸린 발코니가 눈에 들어왔다. 현관에서 바라본 거실 정면에는 부엌이 있었다. 부엌의 구조는 단순하였고 가구들은 오래되어서인지 상당히 낡아 보였다. 그리고 세 개의 방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안방처럼 보이는 방에는 화장실이 별도로 있었다. 장판과 도배는 막 교체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도배지 두통이 벽에 기대어진 채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엊그제 도배를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배와 장판 이야기는 테오도라의 언니와 오빠를 통해 이미 들었던 터라 신경 써서 확인하였다. 집주인이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해주었다는 것이다. 집안 곳곳의 창문들은 모두 개방되어 있어서 이제 냄새는 다 빠진 것 같았다. 그렇게 10여분밖에 안 되는 짧은 방문이었지만 그곳에 테오도라가 100일이나 누워있었다는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렇게 큰 집에서 혼자 살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구에게 월세를 주어 같이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친구나 직장 동료와 같이 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혼자 사는 1인 가족의 특징 중 하나는 외로움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외로움을 즐길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고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대부분 외로움으로 남기 마련이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 까지는 좋지만 혼자서 대화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개나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웠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방문을 마치고 다시 오 대표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사업 하나가 마음속으로 정해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외로움 컨설팅 사업이 그것이다. 그래서 내주 책을 쓰면서 벌써 여러 권의 외로움에 관한 책을 썼다. 이제는 전 국민이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암이나 다른 질병들이 아니다. 바로 외로움이다. 영국의 경우에는 이미 정부 내에 외로움 부서를 만들었고 외로움부 장관까지 임명하였다고 한다. 선진국다운 발상이고 여유다. 이제 우리나라도 여성부를 외로움부로 바꿀 필요가 있다. 여성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선진국다운 발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위한다는 부처의 존재가 오히려 역성 차별일 수도 있다.

     




텅 빈 공간의 무거운 공기

     

네가 누워있던 영안실과 납골함으로 안치된 추모공원 그리고 네가 살던 집들의 공통점은 모두 텅 비어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일이 이처럼 허무하고 세상을 텅 비게 한다는 사실은 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빠 노릇을 조금만이라도 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항상 네가 머물던 곳의 공기를 무겁게 억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의 문제가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죽음을 이미 규정해 두고 묘비명까지 준비해둔 나지만, 이번 너의 죽음을 대하며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단다. 모든 사람의 죽음이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죽음일 수 있어도 그 개개인의 죽음의 의미가 주는 깊이와 넓이는 천차만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왜 진시황이 그토록 죽지 않으려 노력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벌써 진시황의 나이를 넘어섰단다. 그가 단순히 권력과 부를 놓고 가기에는 너무 억울해서 죽음을 피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나 일반 민초의 죽음이나 같은 죽음일 뿐이다. 다만 그 죽음이 미치는 의미나 파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죽으면 과연 몇 사람이나 애통해하고 가슴 아파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그 숫자가 죽은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어보면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테오도라 너의 죽음에 애통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오빠 한 사람은 확실하니까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음 주에는 벽제 추모 공원에 너를 만나러 가려한다. 그 텅 빈 공간의 무게를 이제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보고 싶어도 미안한 마음에 선뜻 들를 수가 없었다. 입구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그 무거운 공기를 감당할 자신이 지금도 없지만 너를 보면 힘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텅 비어있던 네 주변에는 그새 많은 이웃들이 들어왔겠지? 100일이라는 시간이 어떤 죽음들을 불러들였는지 그리고 너와의 어떤 인연을 만들어 주었는지 궁금해진다. 이처럼 살아있는 자들은 별걸 다 궁금해한단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오빠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너를 말로만 사랑하는 못된 인간이란다. 다음 주에 만나도 눈 흘기지 말고 화도 안 냈으면 좋겠다.

     




능소 화와 이별하며

     

지난주 금요일 날 네가 살던 집을 둘러보고 나오던 길에 마주친 꽃이 하나 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꽃인데 처음에는 웬 나팔꽃이 저렇게 빨간색이 있을까? 하고 의아해하였단다. 그런데 독일에서 잠깐 아이들과 한국에 놀러 온 브런치 지인이 능소화 꽃을 올린 거야! 나는 이름만 알고 있던 능소화가 그 꽃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단다. 사실 시골집 근처에서 많이 보았던 꽃인데 나는 그 꽃도 나팔꽃의 일종인 줄 알았는데 나팔꽃이 아니고 어엿한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 능소화! 금낭화라고도 하여 옛날부터 양반들만 심을 수 있었던 꽃이어서 양반 꽃 이라고도 한데. 그런데 그 꽃이 네가 살던 동네의 초입에 잔뜩 피어있었단다. 그것도 양반집처럼 보이는 집의 축대에 피어있어서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단다. 그 꽃의 맞은편에는 세종대왕의 형님 집과 작은 절이 있어서 깜짝 놀랐단다.

     

그날따라 너무 덥고 습해서 이미 만개한 꽃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한 송이는 벌써 바닥에 떨어져 있었단다. 나머지 꽃들도 시들시들해서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었단다. 신호대기 동안 사진을 찍고 있다가 신호가 떨어져 출발하는데 자꾸 뒤를 돌아보았단다. 그 떨어진 꽃을 자꾸 보게 되었지. 그게 나는 너로 보였단다. “좀 일찍 떨어졌지만 슬퍼할 필요 없어. 다른 꽃들도 며칠 지나면 다 떨어질 테니까!”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차는 오던 길과는 다른 현충원 앞을 지나 이수 교차로를 거쳐 바로 강남 쪽으로 진입하였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 내가 과연 그 집에 들어가 살 수 있을까? 꼭 들어가 살아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내년 5월까지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살고 있는 원룸도 조만간 계약이 만료된다.  

     

이 집을 어떻게 활용해 볼 수 없을까 해서 오 대표와 같이 같던 것이다. 에어비엔비로 활용하려 해도 초기 투자비용이 상당히 든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들어가 사는 것인데 아직까지는 매일 그곳에서 동생을 만날 자신이 없다. 이기적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실감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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