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년간의 영국 여행기
얼마 전 제주도 한 달 살기 열풍이 불었었다. 이제 제주도 한 달 살기 열풍은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 세계 곳곳에서 한 달 살기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가 그 진원지다. 그 한 달 살기의 원조는 누가 뭐래도 내가 아닐까 십다. 90년대 초반 군 전역 후 나는 필리핀에서 그 한 달 또는 두 달 살기를 시작하였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다. 이 정도면 누가 뭐래도 한 달 살기의 원조는 내가 아닐까?
학생 시절 나는 주로 필리핀 마닐라에서 상당히 호화로운(?) 방학을 보냈다. 호화로운 생활이란 상류층처럼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하숙집 생활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필리핀의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호화로운 생활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필리핀은 여전히 방학 때 한 달 살기로 도전해볼 만한 나라다. 치안이 문제이기는 하다. 치안 문제는 비즈니스와 연관된 경우가 많아서 돈 없는 학생들이 타깃이 되는 경우는 희박하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이제는 눈을 돌려 물가 차이가 많이 나는 나라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프리카나 중남미로 향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반드시 영어권일 필요는 없다. 영어권이 아니어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어차피 현지어가 아닌 영어일 수밖에는 없다.
새해 벽두부터 A형 독감에 걸려 자가 격리 치료를 받느라 힘들었다. 따뜻한 가족의 품이 그리워 수지의 K후배 부부 집에서 염치 불구하고 며칠 신세를 진적이 있었다. 마침 외고 입학 발표가 있었다. 막내딸이 외고에 떨어져서 한나절을 큰소리로 우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른이랍시고 아무런 위로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로부터 상담 문의가 왔다. 미국무성에서 주관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 1년 동안 보내고 싶은데 내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미 두 달 전에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큰아들의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 관련 내용들을 상담해준 경험이 있었다. 당시 그 아들은 도피성이 강했기 때문에 적극 반대하였고 모두를 설득할 수 있었다. 이번 딸의 경우에도 도피성이라면 반대지만 본인이 간절히 원한다면 한번 도전해 보라고 하였다. 1년 동안 낯선 문화에서 낯선 호스트의 집에서 낯선 학교에서 지낼 용기가 있다면 보내보라고 하였다. 홈스테이 비용은 무료인데 교환학생을 선발하고 홈스테이를 선정해서 연결해주는 에이전트 비용이 천오백만 원 정도라고 한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그 비용을 들여서 아이가 1년 동안 많은 성장을 한다면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 국무성 교환학생 프로그램처럼 유럽에도 유사한 프로그램이 생겼다. 갈 수 있는 나라는 영국을 비롯하여 스웨된,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가 있다. 이를 대행해 주는 회사는 Edcatius라는 글로벌 교육회사다. 영국의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AX 유학 프로그램으로 16세에서 18세의 고등학생이 대상이다.
입학자격은 영어 수학을 포함한 7개 과목의 평균 점수가 C 이상이고 IELTS 5.0 이상인 중학교 졸업생이다. 무엇보다 영어 시험인 IELTS 성적이 중요하다. 연간 학비와 홈스테이 비용은 이천만 원 정도이다. 사립이 아닌 영국 공립학교를 배정해 주며 학교 선택은 불가능하다. 학교는 주로 지방의 버밍햄, 맨체스터, 리버풀 등의 공립학교이다. 학생은 미국처럼 지정해 주는 홈스테이에서 지내면서 영국인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친한 친구 중 하나인 L이라는 친구 아들의 실제 사례이다. 이 친구의 아들은 중학생 때 영국에 혼자 와서 런던의 우리 집에서 1주일 정도 지내면서 여행을 할 정도로 독립심이 강한 아이였다. 내신과 수능성적도 좋았는데 한국의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바로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베를린의 모 공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기초 독일어부터 배워서 2년 후에 입학을 한다는 것이다. 친구 아들의 경우, 한국에서의 내신이나 수능 등의 성적이 현지 대학의 입학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독일어만 극복하면 되었다. 참고로 독일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대학 학비가 무료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친구가 런던으로 가족여행을 왔고 베를린에 있던 아들이 런던으로 와서 여행에 합류하였다.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독일어가 쉽지 않아 힘들지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독일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은 그리 만만한 독일어 능력시험이 아니다. 영어의 IELTS와 유사하거나 오히려 더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독일어의 어학시험은 독해는 기본이고 듣기, 말하기에 주어진 특정주제로 토론까지 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이민은 어렵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의 살다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이민도 이사처럼 느껴진다. 이사도 처음에는 어렵지만 자주 다니다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사례도 친구 L의 딸의 실제 사례다. 친구 딸은 서울 모 여대에 다니다가 영국의 Surrey 대학에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었다. 교환학생은 정식 학생비자가 아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은행 계좌를 오픈할 수 없다. 따라서 생활비나 기숙사비 등의 돈을 내 계좌로 받아서 한 달에 한번 만나 전해 주었다. 본인 명의의 계좌가 없기 때문에 휴대폰도 내 명의로 개설해 주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우리 집에 와야 생활비를 받을 수 있어서 1년 동안 매달 만나면서 변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왜 열심히 영어 공부에 정진해야 하는지 강력하게 동기부여를 해달라는 친구의 주문도 있었다. 매달 한 번은 한국 식당에서 맛있는 한국 음식도 사주면서 힘들더라도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해주곤 하였다.
1년 동안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많은 여행도 다녔다. 그 1년의 과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문제는 친구 딸이 영국에 계속 체류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석사과정의 유학을 오거나 아니면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이처럼 해외에서의 경험들은 단순한 공부를 떠나서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동기부여와 함께 사고의 폭을 넓게 한다. 물론 비용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학교 간의 협정이 맺어져 있고 여건이 된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어학연수를 갈 당시에는 어학연수란 용어 자체가 생소할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스펙을 쌓기 위한 필수 과정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다. 공부보다는 문화와 세상 체험에 방점을 두는 것도 현명하다.
보통 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영어가 급격하게 느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언어를 주관하는 좌 뇌는 이미 성인이 된 대학생에게는 성장 판이 닫힌 것과 유사한 상태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학연수란 경험은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도 남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 가치는 바로 낯선 문화와 환경을 접하면서 외국에서 생활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한 가치를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좌절감만을 않고 돌아가게 된다. 여건이 된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단지 스펙을 쌓는 것을 넘어서는 어떤 특별함을 체험할 수도 있다. 굳이 하나의 스펙을 쌓기 위해 떠난다 해도 말린 생각은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서 우물 밖의 개구리가 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이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주로 호주에 가서 농장이나 식당에서 단순한 노동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행도 하고 영어도 배울 수 있다는 꿈을 않고 가지만 대부분은 힘든 단순노동에 지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농장에서 하루 종일 토마토나 과일 따며 고생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워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서 워홀도 알고 떠나야 한다.
영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 YMS 워킹홀리데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호주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와서 일하는 사람보다는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학연수로 오는 경우 재정 보증 및 인터뷰 등이 필요해 비자 발급받기가 어렵고 학생비자를 받아도 일을 할 수 없는 비자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공부도, 일도 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은 비자다. 그것도 2년짜리 비자다. 신청할 때 30세의 연령제한 이외에는 별다른 제약도 없다. 단 신청자가 많을 경우 성적순이 아닌 추첨을 통해 선발한다. 경쟁률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운이 없으면 고시만큼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 가계에서 일하는 학생들도 대부분 워킹홀리데이 비자였다. 런던의 경우, 직원 채용 시 대부분의 업체들이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유자를 선호한다.
경제도 어려운데 유학을 부추길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녀를 외국에서 어려서부터 공부시키고 싶은 부모들이 많다. 보통 그러한 경우, 어린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조기 유학을 보내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가디언을 선정해서 그 가디언이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조기 유학을 온 아이들 중 잘 적응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는 아이들도 많다. 자아와 가치관도 형성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부모의 욕심으로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것은 경험상 반대하는 입장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자라야 한다. 특히 엄마의 중요성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따라서 아이를 외국에서 어려서부터 유학시키려면 엄마나 아빠가 직접 유학을 가면 된다. 부모가 유학생 신분이면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무료로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많은 부모일수록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해당 공무원들이나 주재원들은 이 혜택을 잘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를 들어보겠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번역가로 유명한 아내 후배가 석사과정 유학을 영국으로 왔다. 본인의 공부도 필요했지만 더 중요한 건 아이의 영어공부였다. 항상 자식이 먼저인 부모의 마음은 누구나 같다. 마침 지역이 런던이어서 같이 온 초등학생 딸과 함께 우리 집에서 1년 반을 지낸 적이 있었다.
영어라면 한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전문 번역가도 런던에서 영문학 석사 과정을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어의 벽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면 언어를 배우는 능력이 아이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한 현상을 너무나 많이 보고 경험하였기 때문에 나는 영국에서 20년째 살고 있어도 완벽한 영어 구사능력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번역가 후배 딸아이는 처음 3개월 정도는 수업을 알아듣지 못해 힘들어하였다. 학교 다니는 것도 재미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이가 6개월이 지나자 어느 정도 듣고 말하기가 되면서 학교생활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마다 학교 가는 것이 설레고 즐겁다고 하였다. 1년이 지나자 상당히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의 언어 습득 능력에 감탄하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유학 온 아이들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영어 때문에 좌절하고 학업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보았다.
아이의 일취월장하는 모습에 놀란 번역가 엄마는 아이를 위해 6개월을 더 영국에 체류하였다. 1년 반이 지나자 아이의 영어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여 영국에서 태어난 내 아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엄마가 영어 전문가였기 때문에 그 6개월의 차이와 가치를 인식하고 투자하였던 것이다.
자녀 교육은 어느 부모에게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조기유학, 어학연수 및 유학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민이다. 이는 단지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아이들이 몇 개 국어를 동시에 하는 이유에 주목해볼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혹자는 이민 갈 돈이 어디 있느냐고 질책할 수도 있다. 참고로 나는 천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이민을 갔다. 처음부터 되고 안되고를 단정할 필요는 없다.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일반 유학의 경우는 주로 대학생이나 대학원 과정의 성인들이 온다. 영국의 대학은 한국과는 달리 3년 과정이고 대학원은 1년 3학기 과정이다. 따라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은 놀러 다니거나 다른 공부할 틈이 없다. 외국의 대학들은 입학하기는 쉽지만 졸업하기는 아주 어렵다. 대학원생의 경우 비자 발급 시 졸업 후 영국에서 취업할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추가로 주기도 한다. 현지 취업이 쉽지 않지만 일단 취업이 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한국의 많은 유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제가 바로 “에세이” 작성이다. 에세이라는 과제는 3천 자나 5천 자 등의 형태로 주어진다. 현지에서 태어나지 않은 즉, 원어민이 아닌 유학생이 에세이를 쓰는 일은 너무나 힘들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래서 런던에는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써주는 사람이나 회사가 생겨나고 있고 실제로 성업 중이다. 이제 학비는 물론이고 과제까지도 돈으로 해결하는 한국의 유학생들을 탓하기에는 우리 교육시스템과 문화를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런 부모 마음을 탓할 생각은 없다. 세상의 모든 부모 마음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철저한 구분이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고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학비는 물론 결혼비용 심지어 결혼 후 생활비까지 제공해주는 한국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공부할 의사가 있다면 부모의 지원 없이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학비를 융자해주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 제도는 학생들의 용돈과 생활비까지도 융자해 준다. 한국도 어느 정도 도입이 되어 시행 중인 것으로 들었다.
과거에는 런던에도 한국 기업들에서 파견된 주재원들이 많았다. 주재원들 덕분에 한국 식당들도 호황을 누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기업들의 경영방식의 변화로 주재원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교민사회가 위축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주재원의 감소다. 과거에는 런던 한인 타운에 거주하는 이민자들 중 주재원 비자로 왔다가 영주권을 받고 정착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주재원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민을 생각하는 경우, 기업체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주재원 제도와 비자에 관심을 가지고 기회가 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이민 갈 때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주재원으로 해외에 나올 경우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주재원으로 나오기를 꺼 릴 수도 있다. 본사로 돌아갔을 때 자신의 위치가 불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 비자를 통해 이민의 꿈을 이룰 수도 있다. 선교 비자는 지역과 국가에 따라 다르다. 종교인이라면 선교 비자 제도를 국가별로 면밀하게 검토해서 잘 활용하면 쉽게 이민을 가고 선교도 할 수 있다. 참고로 영국의 경우, 과거에는 선교 비자를 이용해 이민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비자 제도가 까다로워지면서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해외 취업이 쉽지 않아서 주로 국제기구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동남아의 신흥국가에 도전하여 취업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추세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가 취업 무대다. 해외취업 시 언어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현지 언어나 영어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도전하길 바란다.
현재 해외취업으로 많이 가는 나라가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이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해외취업은 쉽게 현지에 정착해 이민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다. 여기에서 해외 취업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한국의 박항서 감독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키 작고 머리도 벗어진 아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박항서 감독이 이루어낸 업적은 기적이었다. 베트남과 관련된 한국의 모든 기업과 외교관들이 이루어낼 수 없는 대단한 성과다. 베트남전으로 남아있던 앙금을 해결한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경제효과를 창출하였다. 거기에 양국 국민에게 희망까지 선물하였다. 박항서 감독의 경우를 해외 취업으로 넣은 이유는 그가 잘 나가는 감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눈을 돌린 도전정신 때문이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돈 없이도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 세계 일주까지는 아니어도 유럽 배낭여행 정도는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가끔 TV를 통해 소개되기도 한다. 나도 학생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하였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도전하다 보면 방법이 나온다. 이러한 경험들도 이민을 갈 경우에는 커다란 자산이 될 수 있다.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길이 열려있다. 비록 처음에는 가시밭길일지라도 그런 길을 끝까지 걷다 보면 반드시 꽃길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