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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22. 2019

15원이 가르쳐준 행복!

나를 발견하고 돌아보게 하는 봉사활동 이야기 

9월 셋째 주 봉사활동 이야기




태풍 전야인 어제가 바로 셋째 주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오전에는 동문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날인데 부상으로 장기 결장하고 있다. 토요일 아침이면 근질근질한 발이 성화다. 그 상실감을 달래주려고 산책이라도 하였다. 산책길에 만나는 친구들이 제법 늘었다. 연골이 파열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였는데 3개월쯤 지나자 이제는 조깅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빠른 걸음으로 매일 아침 재활훈련을 한다. 그렇게라도 두 발과, 특히 오른발에게 미안함을 전해줄 수 있다. 물론 3개월째 방콕하고 있는 축구화에게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주로 고양이나 새들이다. 가끔은 나비나 매미 그리고 수많은 풀벌레들과 교감을 한다. 산책길에 만나는 풍경은 항상 고요하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가끔은 까치가 참새를 사냥하기도 하고 그 사냥한 까치를 숨어서 지켜보던 고양이가 까치와 참새를 동시에 노린다. 까치들이 늘 두리번거리면서 신호를 보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길고양이들이 도처에 은신해 있기 때문이다. 그 긴박감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못지않다.


지난해 초여름에 아들과 유럽 자동차 여행 때 들렀던 프랑스 남부 아를에 있는 반 고흐 카페 사진


산책 후 샤워를 마치고 카페로 향한다. 토요일 오전에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는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생활 패턴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토요일 아침에 쓰는 글은 다른 맛을 낼 수 있어 좋다. 백수에게 요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나는 정확히 1년 하고도 5일을 한국에서 휴양차 쉬고 있다. 하지만 쉬는 것도 아무렇게나 쉬지 않는다. 직장인보다 더 타이트한 스케줄에 시달(?) 린다. 나만의 철저한 시간관리는 생맥주 한잔도 쉽지 않을 만큼 할 일이 많다. 그 일이란 것의 정체가 문제이기는 하다. 돈과 연결되지 않는 것을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이유다. 하지만 나만의 확신으로 봉사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쓴다. 올 2월부터는 매주 한 권씩 책을 쓰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서 책을 한 권 써낸다. 나는 하루 만에 책 쓰기의 전도사다. 무신론자인 내가 복음이나 믿음을 전도하려는 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것을 나만 알고 있기에는 그분께 죄를 짓게 만드는 일이 전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도 또한 마케팅의 일부이고 그 원조는 바로 예수님이셨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잡문 몇 개를 쓰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요즘은 통증과 무감각의 오묘한 조화에 치통까지 겹쳐서 통 입맛이 없다. 특히 매운 것은 입에도 못 댄다. 그래서 끼니때마다 고민을 해야 한다. 산해 진미가 널려 있지만 내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깨달은 진리 아닌 진리다. 대식가에서 미식가로 그리고 이제는 소식가로 겨우 살기 위해서 먹는다. 먹는 일의 즐거움을 빼앗기고 나니 세상의 절반은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먹고 자는 일이 마음대로 안 되는 고통은 가끔은 생의 의욕을 박탈당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더 무언가에 몰입하려고 몸부림을 치는지도 모른다. 휴가도 추석 연휴를 끼어 남도의 소록도와 월출산을 다녀왔다. 백수도 휴가는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출산에서 천황사 맛집 식당을 운영 중인 여동생이 요리해준 죽순 백숙과 죽의 맛은 한마디로 죽이다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고민에 빠진다. 커피숍 맞은편에 구리 전통시장이 있다. 거기에는 온갖 먹거리들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구리의 유흥가도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얼마 전 먹은 들깨 수제비 집으로 향하는 나를 보고 나 자신이 깜짝 놀란다. 간판은 중국집인데 수제비를 파는 집이었다. 음식 맛은 혀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머리는 물론 다리도 기억하고 있었다. 5분 정도 골목을 헤매다 그 집을 발견하였다. 그 복잡한 골목에서 그 집을 기억하다니 정말 놀라운 기억력이었다. 여전히 중국집 간판이었다. 들어가서 앉기가 무섭게 사장님이 알아보시고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나는 메뉴판을 보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짜장면을 비롯하여 모두 중국집 음식들로 바뀌어 있었다. 들깨 수제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장님은 어제부터 찬바람이 불어 본래 팔던 메뉴로 복귀하였다며 미안해하신다. 하는 수 없이 볶음밥을 먹었다. 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나로서는 볶음밥은 그저 볶음밥이었을 뿐이다. 사장님 체면을 생각해서 최대한 열심히 먹었지만 반 정도를 남기고 말았다. 그리고 저녁 약속이 일찍 있어서 다 먹을 수 없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그 집을 나서 일산 밷엘의집으로 향하였다.


톨게이트는 이제 거의 하이패스로 대체되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없애가고 있다. 내가 하이패스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다.


길을 잘못 들어 구리 요금소를 지나서 다리를 건너 유턴해서 다시 왔다. 800원을 두 번이나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약간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영수증이 있으면 통과시켜 준다고 영수증을 보여 달랜다. 카드로 단말기에 찍었기 때문에 영수증을 받을 수 없다고 하자 그럼 다시 800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화가 났지만 그분이 오히려 미안해하고 계셨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경우는 영수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죄송합니다. 를 반복했다. 사실 나는 그 편리한 하이패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다 하이패스를 사용한다면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톨게이트 위에서 태풍에 맞서며 고공농성을 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톨게이트를 나서며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고 했다. 그깟 800원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실랑이를 벌인 나의 좀생이 기질에 나 자신에게 화를 내며 벧엘의 집에 도착하였다.      



이미 그곳에도 상당히 많은 회원들이 도착해서 일부는 2층의 주방에서 나머지는 3층의 강당에서 일들 하고 있었다. 나는 또 지각하였다. 회원들이 말은 없지만 또 늦었다고 질책하는 듯 느껴졌다. 나는 한 달에 한 번밖에 지각하지 않는데 왜 그러냐고 답하고 있었다. 물론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벧엘의 집은 한 달에 한번 간다. 그렇다면 매번 지각하는 것이 되고 만다. 나는 지각쟁이였던 것이다.

  


주방 팀은 제니를 비롯하여 현역 오너 셰프인 상상 고양이와 계란말이의 달인 덕수궁 그리고 언제나 말없이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는 40이 넘어선 막내(?) 토시가 샐러드용 야채를 자르고 있었다. 부천에 사는 후배까지 데려와서 깜짝 놀랐다. 너무 예쁘고 참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애가 둘인 엄마였다. 물론 취미가 뭐세요?라는 단골 멘트를 날려 처음 오신 분을 당황하게 하였다.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늘의 메뉴는 누룽지 탕수와 샐러드 그리고 군만두였다. 전직 셰프인 나는 주방에서 밀려 난지 오래다. 유실이라는 내공 9단이 셰프의 코를 납작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유실은 처음으로 이번 모임에 빠졌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날을 잡아도 너무 잘 잡은 태풍 여행이었다.      


주방에서 밀려난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볼펜 심 끼우는 작업을 도왔다. 거기에는 유실을 통해 나오게 된 하정 씨와 20년 전부터 활동한 엠보싱과 안성에서 온 카리스마와 미모를 겸비한 해인 사장님 그리고 부천에서 오신 예쁜 아이 엄마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잘생긴 청년 하나가 물리치료사 책을 펴놓고 공부하면서 그 단순작업을 같이 하고 있었다. 나와 소연이가 합류해서 본격적인 단순노동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볼펜 작업의 의의와 가치를 설명해 주셨다. 하나를 완제품으로 조립하면 15월을 받는다고 한다. 그 15원짜리가 시중에서는 2천 원에 팔린다고 한다. 물론 유통비와 생산비 등 여러 비용이 들어가서 나온 가격일 것이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15원은 너무하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최소 50원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볼펜심 끼우는 작업은 손이 제법 많이 간다. 총 11개의 공정을 거쳐야 3색 볼펜이 완성된다. 그 11번의 손길에 제공되는 노동 단가는 15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작업을 하다 보면 상당히 큰돈이 된다고 한다. 갑자기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마침 강당에서 무료 의료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혈압과 맥박 체크였다.


우리는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오로지 정신을 그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량을 낼 확률이 높아진다. 다행히도 그 단순 노동은 10여 분만 지나도 금방 익숙해진다. 박사과정에 있는 엠보싱만 빼고는 다들 잘한다. 가방끈 긴 사람은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단순노동이다. 작업 기간 동안 손은 일하고 입은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번뇌는 눈 녹듯 스멀스멀 사라진다. 3천 배를 하고 싶었는데 나의 저질 체력과 질병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3천 배는 고사하고 108배도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그런데 이 삼색 볼펜심 끼우는 작업은 3천 배는 아니지만 천배 정도의 효과를 나타내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만이 아니었다. 소연이는 더욱 아쉬워했다. 15원이 주는 가치는 바로 행복이었다. 아파트 가격이 하루아침에 1억이 올라도, 꿈에 그리던 영주권을 받을 때보다 더욱 큰 기쁨과 마음의 평화를 맛보았다.    


  

한 끼의 소중함을 느끼며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시중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천상의 맛 그 자체였다.  주방팀 땡큐!!!!!!!!!!


“지식보다 무지가 더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라고 찰스 다윈은 말했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일 뿐이다.”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게 남은 자본은 육체뿐이다. 나는 노동을 하며 현장에서 땀과 애환이 살아 숨 쉬는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당장 지게차 운전부터 배워볼 생각이다. 




아쉽지만, 뒤풀이는 근처의 단골 카페에서 차나 한잔 마시고 해어져야 했다. 모두들 멀리서 와서 대리 운전을 부를 만한 거리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카페는 너무 예쁘고 우리의 심신에 평온을 선물하고 있었다. 물론 오랜 친구들 사이의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카페 사장님은 좋은 일 한다고 칭찬까지 하시며 국화를 몇 개씩 선물해 주셨다. 나는 회원들에게 복권을 선물했다. 당첨되면 반땅 하기로 굳게 약속하고서....., 어제 토요일 복권인데 아직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다. 다음 달부터 안 나오면 그 사람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사장님께 받아온 화분 3개를 스티로폼 박스에 넣었더니 훌륭한 화분이 되었다. 곧 꽃이 피고 향을 내뿜을 것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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