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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18. 2019

나만 외로운 걸까? #17 외로움과 싸우는 사람들!

후기 청년기의 우울과 외로움에 관한 연재

                                                        


사람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외롭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단호하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인도나 사막 또는 구치소에 격리되어 있다고 반드시 그리고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사람만이 사람을 가장 외롭게 만들 수 있는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신도 사람을 외롭게 할 수는 없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도, 사람이 없는 곳에 살아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반세기를 살아왔지만 아직도 외로움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나의 경우,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인 상태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사랑받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거나 덜 느낄 것이다. 인정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사람이 가장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이 힘든 건 참고 견딜 수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면 버티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어디 직장뿐이겠는가! 가정도 마찬가지다. 부부간의 사랑이 식거나 신뢰가 깨져버리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된다. 차라리 아무 관계도 아닌 타인에게는 사기를 당해도 그 정도의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그만큼 사람이란 관계는 어떤 관계이냐에 따라 주고받는 상처의 폭과 깊이가 다르다.    

  

친구관계도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사랑은 이성이나 부부간의 사랑과는 다른 것이다. 친구 사이가 잘못되어도 죽을 만큼 외롭거나 힘들지는 않다. 설령 그 친구가 지구 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한 사람이어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식이나 형제자매간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문제들도 제각각 천차만별이다. 외롭다는 것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거나 잊어버렸다는 의미이다. 무인도나 사막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닮은 듯 보이지만 많이 다르다.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부부관계가 원만하여도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학 동문들의 축구 모임에 나오는 선배들도 다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비록 속내를 털어놓기는 쉽지 않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공을 차고 운동을 해서 체력을 단련시키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운동장에서 만나는 선후배들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축구를 통해서 볼 다루는 기술을 향상하고 체력을 끌어올리려고 운동장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 냄새가 좋고 땀 냄새가 좋아서일 뿐이다. 쉬는 시간에 잠깐 나누는 몇 마디 대화도 좋다. 특히, 운동 후에 우르르 몰려가서 같이 식사하며 나누는 대화가 주는 희열은 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물론 막걸리 한잔도 빠질 수 없다. 막걸리 한잔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대화에는 학창 시절을 공유한 추억이 있고 지금까지 삶을 살아낸 진한 인생사가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운동 후에 항상 뒤풀이에 참가한다. 같이 밥을 먹는 행위에는 우리는 식구라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동질감이 녹아있다. 가끔 막걸리가 과해지면 80년대 군부독재 이야기부터 민주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선배들의 민주화 무용담이 나오면 후배들은 긴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리기사 부를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한다. 낮술을 마시며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땐 그랬었지 라며 말하는 사람보다는 막걸리 마시는 사람들끼리의 잔잔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금 새 혀 꼬부라지는 소리가 난다. 술자리를 파해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점심시간에 식당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도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옆집의 커피숍으로 옮기면 선배 중 한 사람이 나서서 전체 커피를 산다. 돌아가면서 하는 선배 노릇이다. 선배노릇도 돈이 있어야 한다. 나처럼 까마득한 후배들에게는 막걸리나 커피 한잔 살 차례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학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라고 강조한다. 좋은 전통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후배들을 만나면 똑같이 당하기 때문에 피장파장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품앗이 비슷한 전통이다.      


집들이 멀어서 저녁에 따로 만나서 술을 마시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선배들끼리는 수시로 만나서 술을 마시는 눈치다. 남자들이 만나면 술을 빼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밤새도록 커피 한잔 놓고 수다를 떠는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은 과연 무슨 재미로 살까라는 의문이 드는 이유다. 그들은 2차도 3차도 커피를 마셔야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문화는 먹고 마시기에는 세계 최강임에 틀림이 없다.      


선배들 대신 나는 동기와 가끔 집 근처에서 만나 술을 마신다. 주로 막걸리 아니면 생맥주다. 내가 몸이 아프다 보니 한 달에 한번 마시기도 쉽지 않다. 술을 마시고 나면 다음날 통증 때문에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한 달에 한번 정도의 즐거움마저 희생하면서 친구와의 즐거운 술자리를 피할 까닭은 없다. 술자리에서 주로 나누는 대화는 여자들 못지않은 수다이다. 남자들의 수다는 술 한 잔 들어가면 그 위력은 여자들의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가만 듣다 보면 주로 어렸을 때의 동심의 세계나 대학생 때로 돌아가곤 한다. 술을 마시는지 추억을 마시는지 모를 만큼 남자들의 수다는 과거 지향적이다. 과거 지향적이라는 이야기는 발전성이 제로이거나 마이너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도 재미있다. 늘 비슷한 스토리텔링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는 걸 보면 말이 느리거나 이야기가 재미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마 둘 다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일을 흔히들 작게는 일상 크게는 인생이라고 한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인생이 되지만 영원히 쌓이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중단될 것이다. 중단되는 그날까지 상대방을 조금만이라도 덜 외롭게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빠부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일은 참으로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그 대상이 친구든, 이성이든 아니면 연예인이든 상관없다. 오빠부대라는 말은 우리 어렸을 때도 있었던 용어이다. 그 당시에도 지금 못 지 않은 인기의 대스타들이 즐비하였다.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의미는 대리만족의 기쁨을 발산하는 일이다. 오빠부대는 보통 어린 여학생들이 잘생긴 남자 연예인 팬클럽을 조성하여 그 연예인과 일거수일투족을 같이하는 집단을 말한다. 그들의 관심사가 특정 스타에게 쏠리는 이유는 물론 마음에 들어서이다. 하지만 자신의 외로움을 발산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취급해야 한다.      


얼마 전 월출산에서 젊은 트로트 가수를 따라다니는 오빠부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이 가수는 젊은 남자였고 오빠부대는 중년의 여성들이었다. 참으로 진귀한 장면이었다. 월출산 유채축제 첫날 저녁 공연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전부터 모여서 응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령층은 50대 이상으로 보였다. 모두가 여자였다. 여동생이 운영하는 식당에 단체로 식사 예약을 해서 알게 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오빠부대는 노란색으로 복장도 통일하고 대형 현수막과 풍선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막상 행사가 진행되는 밤에는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행사장으로 나가서 비옷을 걸치고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 열정과 정성이 대단하였다. 나는 신기한 마음으로 계속 관찰을 하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 앞에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그 오빠부대의 주인공은 장구의 신이라 불리는 박서진이라는 트로트 가수였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가수였다.      


한국의 방탄소년단이나 아이돌 가수들을 보기 위해 동남아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일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특정 연예인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마음껏 발산해냄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신성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른다. 하지만 신이나 이성을 향한 사랑 못지않은 사랑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 외로움을 발산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오빠부대는 그중의 하나일 뿐이다. 누구나 오빠부대와 같은 경험을 한 두 번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기에 외롭고 사람이기에 쓸쓸한 것이다.                                         



동호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활동한다는 일은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운 일이다. 그렇다면 굳이 왜 모여서 활동을 하는 것일까? 모이면 회비도 납부해야 하고 규율도 있고 귀찮은 일들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특히 자전거 동호회의 경우에는 혼자서도 충분히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단체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축구 같은 구기종목이야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파트너나 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동호회를 조직하여 같이 활동한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등산이다. 등산도 혼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유니폼까지 맞춰 입고 등산을 한다. 나처럼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전거나 등산도 혼자 즐긴다. 물론 여행도 마찬가지다. 축구야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모임에 가입하였지만 굳이 자전거를 모임에 가입해 타지는 않는다.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모여서 같이 활동한다. 그 이유는 혼자는 외롭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자전거만 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모여서 교류도 하고 친구가 되는 것이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혼자서가 아니라 단체로 산에 오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산도 산이지만 회원 간에 친목을 다지고 서로 화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롭다는 것은 결국은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 다른 사람이 나와 뜻을 같이하고 이해해 줄 수 있으면 더욱 좋은 것이다.      


혼자여서 외롭다고 생각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혼자가 오히려 편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여행도 쉽지 않다. 서로 생각하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과 여행을 자주 하였다. 재미보다는 불편하고 포기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동호회에 가입해서 선뜻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특정 모임의 규율에 맞추고 서로 맞추어가는 작업 자체가 별로 끌리지 않는다. 연말연시에는 온라인상의 많은 동호회를 검색하기도 하고 실제로 가입도 하였다. 하지만 하나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아니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온라인상의 동호회를 기웃거렸던 이유는 외로웠기 때문이다.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에 여러 동호회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는 용기도 없었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교 동문들이 운영하는 축구동호회는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나의 외로움이 경감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외로움 자체는 전적으로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외로울 수 있고 한 사람도 만나지 않고도 외롭지 않거나 외로움을 견뎌낼 수도 있다. 외로움은 단순한 듯하면서 복잡하고, 복잡한 듯하면서 단순한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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