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튼 가는 길은 베를린 가는 길과 닮아 있었다.
처음으로 나의 몸과 마음에 관심을 가진 것은 3년 전의 어느 일요일 새벽이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거나 아니면 일어날 뻔했는지 그날을 더듬어 보려 한다. 그 이유는 그날을 기점으로 나의 삶은 일대 전화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부정적으로, 일부는 긍정적으로의 변화였다. 육체가 보내는 메시지에 대한 묵묵부답은 이어졌고 마음은 어찌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나는 나 자신의 육체에 대한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더 참고 버티라는 경고였다.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 경고인지조차 모른 채 육체의 무너짐과 자아의 발견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살아야 했지만 죽고 싶었고 죽어야 했지만 살고 싶었다. 이 아이러니 앞에 무너진 것은 육체와 정신 모두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두 가지를 잃고 나서야 나라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갈 수 있었다. 결국은 내가 그날 새벽에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의문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당시에는 의문투성이의 풀리지 않을 거 같은 수수께끼였고 시시포스가 무거운 돌을 굴려 올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끝을 알 수 없는 형벌을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우발적이라 할 수도 있고 치밀하진 않지만 계획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아찔한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기상 상황도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공지영의 해리에서 동경하던 무진이 영국의 남도 마을들은 물론 고속도로위에도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대치 않았던 행운(?)이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 4시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왼쪽에 주차되어 있던 은색 애마의 엔진을 깨웠다. 자다가 얼떨결에 깨임을 당한 애마는 그날따라 유난히 큰 소리로 새벽의 정적을 사정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독일산 디젤차의 우수한 연비와 파워를 선택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에 집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했다. 영국의 집들은 유난히 따닥따닥 붙어 있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맬 시간도 없었다. 거사를 치를 사람의 속은 밴댕이 속 못지않게 좁았고 투명하였다. 차는 한인 타운의 라운드 어바웃을 돌아 A3로 막 진입하고 있었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싸인 등과 경고음이 끊임없이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나는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더듬거렸다. 찰칵하는 소리와 동시와 벨트는 채워졌고 칭얼거림도 사라졌다. 토요일 저녁에 마신 생맥주 몇 파인트는 새벽 4시쯤이면 깰 만도 한데 속은 쓰렸다. 영국의 생맥주는 한국의 생맥주와는 달리 상당히 진하고 자극적이다. 한국의 생맥주는 물탄 맥주처럼 맹숭맹숭하다. 그래도 병맥주보다는 시원한 맛에 즐기기는 하는데 어딘지 부족하다.
언제인가부터 우울증이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지만 나는 끄떡도 하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다. 일요일 새벽 M25와 M23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서 가시거리가 100미터를 넘지 못하였다. 조심성 있는 로리 운전자들은 안개등을 비롯하여 모든 등이란 등을 켜고 달리고 있었다. 물론 비상등을 깜빡이며 얌전하고 차분하게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의 은색 애마는 난폭한 한 마리의 야생마처럼 M25를 거쳐 M23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참고로 M25는 서울의 외곽순환고속도로와 거의 유사한 시스템이다. 런던의 외곽을 서울보다는 더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가장 중요한 고속도로 중 하나다. 반면 M23은 런던 남쪽의 거점도시 크로이든과 영국 최고의 휴양도시 중 하나인 브라이튼을 연결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고속도로다. 생각해 보니 중간에 런던 개트윅 공항이 있으니 중요한 것도 같다. 안개 낀 일요일 새벽의 M23 고속도로는 개트윅 공항을 지나자 텅 비어있었다. 안개도 많이 희미해져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 본연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영국의 고속도로는 제한 속도가 70마일이다.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평소에도 폭주족이다. 평소에도 100마일은 기본이다. 속도위반 딱지도 여러 번 받았다.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그날 나는 10년 전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기록했던 나의 최고 속도를 넘어서 달리고 있었다. 그 당시 아우토반은 속도제한이 없었다. 독일인다운 발상이었고 그로 인해 아우토반은 폭주족들의 천국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사고도 적었고 소통도 잘되었다. 하지만 점차 대형 사고가 늘면서 일부 속도제한이 생긴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당시 아우토반에서의 나의 기록은 150마일에 가까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를 추월하는 차도 있었다. 나의 우발적인 또는 계획적인 죽음의 질주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허상을 쫒아가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다양한 죽음 중에서 가장 확실한 죽음은 사고를 위장한 죽음이었다. 마침 상상 속의 무진 마을에서 동경하던 안개까지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아우토반은 광활한 미국처럼 일직선상의 도로가 많다. 성능 좋은 독일 차들의 각축장이 될 모든 조건을 갖춘 고속도로다. 나는 베를린까지 눈이 살짝 나리는 그 겨울에 인생의 속도를 찍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나도 참 배짱 하나는 두둑하였다. 밴댕이 속의 내가 가진 이중성이었다. 핸들의 각도가 살짝만 잘못 돌아가도 차는 순식간에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그 스릴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스릴이란 목숨을 걸 때 가장 짜릿한 법이다. 한때 러시안룰렛 게임이 왜 유행하였는지 이해가 간다. 눈발이 조금이라도 굵었더라면 그런 스릴에 도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10년 전 베를린까지의 아우토반에는 희미하고 매가리 없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도로는 젖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이랍시고 미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베를린에는 1주일 동안 눈이 내리고 낮에도 영하 15도를 넘나들었다. 밖에서는 10분 이상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카페와 쇼핑센터 그리고 맥도널드 안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베를린의 강추위 덕분이었다. 소방차들은 5층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들의 지붕에서 고드름과 눈덩이 재거 작업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강추위와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 베를린의 거리를 걷는 일만큼 위험천만한 일도 없었다. 5층이나 6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길이 1미터가 넘는 고드름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흉기였다. 실제로 고드름이 떨어지는 모습을 몇 차례 목격한 후로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는 일은 포기하였다. 매일 한 번씩은 베를린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관광지 투어를 복습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내가 가이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아우토반은 나를 시험에 빠트렸고 나는 그 시험에 빠졌다. 아슬아슬한 그 도박은 스릴만점이었고 중독성이 강하였다. 도박도 아닌 것이 도박 인양 중독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우토반의 도박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희미해져 가는 추억이 되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우토반의 질주로부터 7년이 지난 어느 일요일의 새벽에 내가 10년 전의 도박을 재현하며 스릴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니 다시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핸들의 각도를 어느 정도 돌려야 할지만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고속도로는 끝이 나고 말았다. M23은 브라이튼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크롤리를 조금 지나서인지 미쳐 못 가서인지 몰라도 거기서부터는 일반 국도다. 운이 좋게도 핸들을 돌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브라이튼에 도착해서 해변에 주차를 하고 대서양과 마주했다. 브라이튼 시내 쪽은 대부분 몽돌로 된 해수욕장이다. 가끔 자갈이나 모래도 보이기는 한다. 겨울에도 가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브라이튼 앞바다는 늘 바람이 많이 불어온다. 서핑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대서양과 마주하는 브라이튼 사람들의 바다 사랑은 남다르다. 여름에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누드 비치다. 완전한 누드비치는 아니고 Topless 정도다. 아이가 어렸을 때 샌드위치를 싸서 가족 피크닉을 브라이튼 해변으로 간 적이 있었다. 굉장히 도덕성이 강하고 정의로운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브라이튼 해변은 도덕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다. 엄마는 집에서 가져온 은박지 돗자리를 꺼내서 약간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아이는 샌들을 신었기 때문에 바로 바닷물에 들어가 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이 눈에 비친 상의를 탈의한 여성들의 모습은 뭔지는 모르지만 문제로 인식되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서둘러서 엄마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성스럽게 만든 샌드위치를 먹자고 졸라 된다. 얼떨결에 점심으로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먹게 되었다. 한입만 먹으려던 나의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너무 맛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엄마가 먹어야 할 샌드위치까지 먹어버렸다. 점심은 아이가 좋아하는 피시 앤 칩스를 먹을 요량으로 그랬다. 문제는 샌드위치를 다 먹은 이후였다. 어린아이는 피크닉을 그만 끝내고 집에 가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도 황당하여 아이를 어르고 달래기를 반복하였지만 아이의 고집을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은 1시간도 안 되는 피크닉을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후로도 나는 일 때문에 브라이튼을 1주일에 한두 번씩 오가게 되었고 여유가 있을 때마다 대서양의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한참을 서있다 돌아오곤 하였다. 그렇게 브라이튼은 나의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처럼 가슴 한편에 둥지를 틀기 시작하였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지 나의 질주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문을 연 카페나 가계는 없었다. 일요일이면 보통 10시는 되어야 문을 연다. 브라이튼은 유명 관광지여서 더 일찍 열기는 하지만 새벽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문을 연 곳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브라이튼에서 뭘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거리다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껏 생각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귀로였다. 영영 돌아가지 않을 선택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내면의 자아가 싸우고 있었다. 선악과를 먹으라는 뱀의 유혹처럼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뱀이 웅크리고 있었다. 뭐든 해야만 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결국은 집으로 가는 길을 택하였다. 다시 엔진에게 신호를 보냈고 엔진은 잔뜩 긴장한 듯 조용히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서 A23 국도에 들어섰다. 여전히 안개는 희미하였지만 제법 농밀하였다. 오후가 되어서야 거치는 무진의 안개에 비하면 안개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또다시 나를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충동과 계획 사이에서 나는 둘 중의 하나라는 아주 단순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러시안룰렛에 비하면 확률이 50%나 되는 게임이었다. M23에 들어서고 나서 핸들의 각도를 틀 지점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득히 먼 수평선 너머로는 검은 여운과 붉은 생기가 교차하고 있었다. 그렇게 날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계획된 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나는 뜻하지 않은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오토바이 동호회원들이 끝도 없이 무리를 지어서 브라이튼으로 향하고 있었다. 족히 천대는 넘어 보였다. 부지런하기도 하다. 이 시간에 저 인원이 모여서 행진을 하다니....., 오토바이는 모두 같은 할리 데이비슨 브랜드였지만 헬멧도 복장도 각양각색이었다. 청재킷을 입은 사람이 가죽재킷을 입은 사람보다 조금 많아 보였다. 파트너나 여자 친구로 보이는 여인들은 한결같이 검정 가죽으로 된 진을 입고 있었다. 헬멧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금발이 압도적이었다. 절반 이상은 염색한 금발처럼 보였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순수 금발인지 염색한 금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순수 금발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뒷자리에 무임승차하듯 자리를 잡은 여인들은 힘껏 남자를 껴안고 있었다. 어떤 그림은 고목나무에 매미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맞은편의 장관을 구경하느라 핸들을 돌려야 하는 지점을 이미 지나고 있었다. 마음도 시들해져 가속할 마음을 지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브라이튼 으로 뜬금없는 새벽의 질주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집에 도착하자 마을은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내가 다시 일요일 아침을 집에서 맞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둘째 아들인 검은 턱시도 고양이의 환영까지 받으며 찬란하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짧은 새벽의 질주 여행을 계기로 나의 자아는 분열되기 시작하였고 본격적인 우울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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