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시간이 지난 아침 10시경 합정역에서 삼성역을 가기 위해 지하철 2호선에 올랐다. 지난 주말 김포 한강신도시로의 이사 후 첫 출근(?)이었다. 나의 이사하는 날에 맞추어서 김포시장님은 친절하게도 도시철도를 개통해 주셨다. 아침에 상당한 고민이 있었지만 일단 도시철도 구경은 금요일로 미루기로 하였다. 광역버스는 합정동까지 가는 버스가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쉽게도 강남역까지 가는 버스는 45분 후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전광판은 알려주고 있었다. 버스는 합정역까지 무정차로 한 번에 갔다. 홍대 쪽에서의 모임이나 약속 시에는 이 버스가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버스는 절반도 자리를 채우지 못한 채 한강변을 왼쪽에 끼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을 지나자 쉽게 합정역에 도착하였다. 아침에 한강변을 내려오던 버스가 이제는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날씨 탓인지 한강과 거대한 도시는 무표정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9시 반에 출발한 버스는 30분 후 합정역에서 손님의 대부분을 내려주고 홍대 쪽으로 급하게 떠났다.
오랜만에 타보는 지하철 2호선이다. 한강은 여전히 아름답고 장대하였다. 한강을 한참 건너며 염세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물건을 파는 잡상인(?) 아저씨가 등장하였다. 아저씨는 인사로 예의를 갖추고 본업(?)에 충실하기 시작하였다. 판매하는 물건은 2천 원짜리 문어발이었다. 휴대폰을 밀착시켜 360도 돌려 사용할 수 있는 놀라운(?) 제품이었다. 며칠 전 다이소에서 구매한 5천 원 짜리 고급(?) 휴대폰 거치대보다 몇 배는 효율적이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사실, 다이소는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아저씨는 지하철 창문부터 벽 그리고 바닥까지 아무 데나 문어발을 부치며 놀라운 성능을 과시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많은 제품이 팔려나갔다. 한 개에 2천 원이지만 3개를 사면 5천 원으로 할인 이벤트까지 하며 장사 수완을 발휘하고 있었다. 분당선이나 기타 신설 노선들은 잡상인들이 지하철 내에서 물건을 판매하면 바로 방송을 해서 하차하라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지만 2호선은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눈치를 보고 망설이던 나는 어느새 선반에 올려 둔 가방을 내려 지갑을 꺼내고 천 원짜리 두장을 오른손에 불끈 쥐고 아저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 앞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아줌마들처럼 달려가서 직접 살 적극적인 구매 행동을 하기에는 왠지 쑥스러웠다. 그래서 2천 원을 오른손에 쥐고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유 있게 아저씨는 임시 점포인 박스에서 판매를 마치고 친절(?) 하게도 승객들 앞으로 돌아다니며 방문판매를 시작하였다. 나는 꼭 사고 싶었다. 그 와중에도 혹시 내 앞에 안 오면 어쩌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의 이러한 소심함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나는 천 원짜리 두 장이 눈에 띄도록 약간 오른손을 들었고 매의 눈을 가진 아저씨가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운(?) 좋게도 나는 꼭 필요했던 2천 원짜리 물건을 사서 얼른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짝 한번 둘러보았다. 경범죄를 지은 건 아저씨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그 2천 원짜리 문어발을 산 모든 시민들이었다. 어느새 아저씨는 판매를 마치고 다른 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만 몇십 개를 판매하였다. 혹시 TV 프로그램 중에 장사의 신이란 프로그램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무도 그 잡상인 아저씨를 신고하는 시민들은 없었다. 지하철 내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엄연히 금지되어 있다. 이를 방치한다면 지하철은 승객보다 잡상인이 많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 개인의 생존권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시민의식이 먼저여야 한다. 물론 나부터 그 기본 정신을 훼손하였다. 이유를 불문하고 잘못된 행위다. 설사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딱한 아저씨 같은데 그런 사소한 것까지 따지고 든다고 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하철 내의 질서다. 방치하기 시작하면 그 불편과 짜증은 고스란히 시민들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김포에서 강남 쪽으로 나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매주 3회 정도는 출근(?) 해야 한다. 김포와 강화도는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화 내의 모든 돼지는 이미 살 처분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돼지 한두 마리가 폐사한 건데 멀쩡한 돼지까지 생매장당하는 아수라장이 이사 간 동네 인근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돼지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다가 접한 뉴스는 더 이상 수저를 찌개로 가져갈 용기를 앗아갔다. 덕분에 남은 반찬으로 식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살 처분이라니. 그것도 섬에 있는 모든 돼지를 말이다. 인간의 탐욕과 만행 앞에 분노하기 전에 그동안의 나의 행태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가축은 애완동물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식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기른다. 논밭이나 과수원에서 곡물과 야채 및 과일들을 생산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의 권리를 위해 자발적 채식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다. 유독 서양에는 채식주의자들이 많다. 계란이나 우유도 먹지 않는 비건이라는 채식주의자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영국 런던의 집 근처에서 자주 마주치는 산책하는 돼지, 돼지는 상당히 똑똑했다.
이들이 자발적이든 아니든 채식주의자라는 데 문제를 항의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모두 이상한 사람 취급하려는 채식주의자들이다. 이들의 눈에 고기를 먹는 일반인들은 미개인이고 야만인이며 동물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몰인정하고 몰지각한 사람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문제야 어떻든 최근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보면서 나도 돼지고기에 손이 가지 않는다.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비난했던 그 채식주의자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얼마 전가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개를 애완이나 반려동물로 키운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집에서 키우던 개도 잡아먹었다. 서양사람들이 개고기 먹는 것에 항의하고 조롱할 때 우리는 남의 식문화까지 참견한다고 거칠게 항의하며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뻔 한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다. 특히 프랑스와의 설전은 길고 지난하였다. 나는 불행하게도 그 야만적인 삶의 현장을 보며 자랐다. 여름 방학이 다가올 무렵, 학교에 갔다 오면 아무리 불러도 누렁이는 보이지 않았다. 느낌이 이상해서 대추나무를 보면 거기엔 여지없이 핏자국이 선명하였다. 개를 잡을 때는 너무도 잔인하게 잡았다. 묘사할 수는 있지만 생략하겠다. 도축이란 과정 자체가 잔인하고 차마 사람으로서 행하기 힘든 일이다. 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신경이 무디어지기까지의 과정은 또 어떠했겠는가! 오죽하면 조선시대 때는 백정이란 직업을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은 그 백정이 도축한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서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지금이야 위생적이고 첨단 시설에서 도촉한다고 한다. 하지만 도축 과정을 직접 보면 채식주의자가 될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한다. 물론 나도 도축장에는 가보지 못하였다.
오늘 지하철에서 나의 행위는 이유를 막론하고 잘못된 짓이었다. 그깟 2천 원짜리 물건 하나 산 걸 가지고 결벽이나 강박증 환자처럼 군다고 할 수 도 있다. 이처럼 사소한 일들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져들고 만다. 그 결과가 지금의 시국 사태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정의와 도덕성으로 무장하여 매의 눈으로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나갈 수 있을 때 지금의 진영논리는 해결될 수 있다. 시민들이 기본 질서와 도덕으로 무장하면 기득권층은 시민들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민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양심마저 팔아먹으며 자신의 작은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한다면 정의도 대의민주주의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지하철 안에서의 나의 행위를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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