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Oct 05. 2019

50대가 전국체전에 축구선수로 뛰다

 질병과의 사투도 나의 축구사랑은 말릴 수 없었다.

100회 전국체전 개막식 모습과 영국선수단



베트남 대표팀과의 경기 직후 2-0 승리를 거둔 영국 대표 선수 기념사진(앞줄 좌측 두 번째 50대 아저씨(?)가 저자)


10월 들어 처음 맞이하는 토요일이다. 축구화와 관련 용품을 챙긴 채 급히 지하 1층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사 온 지 1주일 만에 나를 기다려온 애마와의 반가운 상봉이었다. 아침부터 날씨도 오락가락하고 도로들도 막힌다. 하루키의 IQ84에서 나오는 고속도로만큼이나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가을 행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자유로의 성산대교 부근에서의 마라톤이 주범이었다. 김포에서 서울의 노원구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멀었다. 전국체전 축구경기가 열리는 곳이 노원구에 있었다. 축구장으로 가는 길에서 생각을 멈추려고 FM을 켰지만 효과가 없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생각들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일부는 차창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선수단 신분확인 절차(선수등록증과 여권 대조작업)


오늘 하루는 내 축구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주로 축구에서 익히고 단련시켜왔다. 몸과 마음의 근육뿐만 아니라 정신의 근육까지도 내겐 필요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토록 축구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른다. 3개 월 전에는 왼쪽 무릎을 덮고 있던 연골이 파열되면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었다. 허리디스크는 좋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몸은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영국 대표의 20대 주축 선수들로 이들이 초등생일 때부터 저자와 같이 축구를 했는데 이젠 이들도 30을 바라본다.



치료 및 휴양 차 한국에 온지도 1년이 지났다. 하지만 나의 질병들과의 사투는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허리와 무릎의 통증은 기본이고 심지어 멀쩡하던 치아들까지 아프면서 몇 개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한다. 충치가 전혀 없는데도 잇몸 뼈가 녹아내려서 이가 흔들리는 것이다. 그것도 중요한 어금니들이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온몸에 감각이 없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번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환승하기 위해 통로를 찾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번 달에는 고대 안암병원과 삼성서울병원, 12월 초에는 서울대병원에서의 정밀검사가 예약되어 있다. 하지만 워낙 희귀병이라 의사들조차 정확한 병명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유사한 병의 치료약은 아직 개발 중에 있다고 한다. 치료는 고사하고 정확한  병명이라도 알고 싶은 소망을 품고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경기 종료 후 주심, 선심과 양 팀 선수들이 인사하는 모습



니체는 삶은 힘을 향한 의지라고 하였다. 질병은 두렵고 무서운 존재라기보다는 감사한 존재라는 것이다. 질병은 건강이라는 것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평생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질병을 이겨내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좌절과 절망과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질병은 평생 친구처럼 아옹다옹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내가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삶의 목표가 뚜렷해지고 질병과 손을 잡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거창한 것을 생각하는 일은 오히려 사치였다. 오늘 주어진 하루를 마치 한 달처럼 살려고 무던히도 욕심을 부리고 있다. 안식년이라고 부르기엔 무색할 정도로 일하던 때보다 훨씬 더 치열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볼보이와 볼걸은 물론 경찰이 코너마다 배치되어 있었다.


입구의 자원 봉사자들과 대기 중인 의료진들 모습



최악의 몸 상태를 가진 내가 이번 100회 서울 전국체전에 축구선수로 참가하였다. 영국 대표로 말이다. 아마도 최고령 선수가 아닐까 유추해본다. 상대팀은 베트남 대표였다. 체력에서 우리 영국 팀을 압도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2-0으로 영국 팀이 승리하였다. 장소는 월계동 인덕대학 뒤편의 초안산 구장이었다. 내가 1년 동안 경험한 한국의 인조 잔디구장으로는 최고의 상태였다. 상당히 많은 관중과 응원 단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일은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대회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대한체육회와 한국축구협회에 선수 등록 절차를 하고 경기 전에는 이미 발급된 선수등록증과 여권을 대조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부정선수를 막기 위함이었지만 전국대회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생경한 장면들이었다. 각 코너에는 Ball girls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입구 쪽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의료진과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경찰도 10여 명이 넘어 보였다.   

  

 

선수단의 대기보습과 응원차 한국까지 날아온 극성 열혈 영국응원단들



영국에서 제법 많은 응원단들도 와서 응원을 하고 있었다. 경기가 없는 선수단들과 임원진들도 응원을 왔다. 당황스러웠다. 대부분은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인회 등의 모임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교민 사회에서 험담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오늘 너무도 많은 교민들을 만나면서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스크나 썬 글라스를 끼고 축구를 할 수는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분들의 얼굴들과 그분들의 삶이 나의 뇌에서 분주하게 연산되고 있었다.     


같이 오랫동안 영국에서 축구를 했던 목사님이 이번 경기의 감독님으로 오셨다. 전반 후 하프타임 때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중


영국이 아닌 한국에서 처음으로 대면하는 한인들에 대한 느낌은 미묘하고 복잡하였다. 워낙 한인사회의 규모가 작다 보니 시골의 마을처럼 서로의 사정들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비즈니스나 기타 관계의 연결망이 아닌 스포츠를 통한 조우여서 그나마 덜 부담스럽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힘으로 느껴졌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그분들의 응원 열기는 붉은 악마 못지않았다.      



축구 경기 종료후 쌈밥집에서 점심식사하는 선수단과 응원단 모습



경기가 끝나고 엄청난 박수갈채에 우리 선수들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마치 내가 한국의 국가대표팀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축구가 주는 힘이었고 에너지였다. 나의 왼쪽 무릎은 다시 뚱뚱해져서 돼지 족발처럼 완만한 곡선에서 둥그런 원으로 변해 있었다. 이틀 후에 열리는 두 번째 경기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몸이 아프다고 운동에서 멀어지면 정신까지 상하는 법이다. 몸이 아플수록 몸을 아껴두면 찾아오는 것은 근육들의 쇄약과 우울 뿐이라는 것을 지난 1년 동안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50이 넘은 나이에 20대 선수들과 같이 뛴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만큼 오랫동안 축구를 해온 결과였고 그래서 20대 못지않게 뛸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취미 하나쯤은 가져볼 만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취미에 빠져서 일상의 고단함을 녹여내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글쓰기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그 어떤 취미보다 강력하게 정신 근육을 단련시켜 주고 있다. 정신 근육이 단련되지 않으면 몸의 근육도 마음의 근육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의 소용돌이에서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세 개의 근육을 조화롭게 키워서 불균형한 삶에 자양분을 공급할 수 있기를 매일 소망한다. 그래서 삶이 점점 자라고 뿌리를 깊이 내리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경기장에 들어가서 뛰어놀고 싶어 하지만 경기장은 마치 이종 격투기장이나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빈틈이 없었다.


아이들과 아빠의 실랑이 모습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