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남양주의 다산 신도시에서 강화도 초입의 김포 신도시로 이사를 하였다. 이사한 이유는 계약기간 만료였다. 보통 2년 계약인데 1년간의 안식년을 위해서는 정확하게 1년짜리 계약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 1년만 계약하였다. 일반인들은 이사나 이민 같은 것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반면 나는 고 관여 상품이나 의사결정 시에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쇼핑하듯이 처리해 버린다. 쇼핑 트롤리에 우유나 식빵 또는 야채들을 집어던지듯 결정한다.
오래된 영화인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니콜라스 케이지가 위스키를 쇼핑하는 것처럼 말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는 어느 날 해고를 당하며 자살을 선택한다. 그 방법은 흥미롭게도 알코올 중독자로서 삶을 마감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직업여성과의 사랑도 빠트리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인 벤은 대형 슈퍼에서 쇼핑카트에 술만 가득 담는다. 왜 유독 그 장면만이 뇌리에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사 갈 집을 고르면서 왜 그 영화가 떠올랐는지도 알 수 없다. 아마도 그의 쇼핑 방식과 나의 결정방식이 닮아 있어서일 수도 있다.
추석을 몇 주 남기지 않았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정확하게는 이사를 위해 노티스를 줘야 하는 한 달 전쯤의 토요일이었다.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귀찮고 비용도 들어가는 데 1년 정도 더 살아볼까를 고민 중이었다. 그날도 무릎 부상으로 축구모임에는 나가지 않고 아침부터 구리 중심인 돌다리 사거리의 단골 카페로 향하였다. 책도 읽고 글도 쓰기 위해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카페였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나른한 토요일 오후였다. 지인과 카톡을 하다가 이사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한강 신도시에 오피스텔이 많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주소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바로 짐을 정리하여 주차장의 차로 가서 그곳으로 즉시 출발하였다. 지인에게 출발하였고 1시간쯤 후에 도착한다고 알려 주었다.
지인은 친절하게도 주차하기 편한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바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근처의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부동산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나누고 바로 용건을 말하였다. “오피스텔 하나 주세요?” 직원은 두 명이었는데 두 사람 다 난감한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의 행색으로 보아서 사려고 온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빠르게 알아차렸다. 한눈에 보아도 임대인이나 건물주가 될 사주도 행색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분들에게는 사람만 보면 금방 돈 냄새를 맡는 후각이 발달해 있는 듯하였다. 나는 굳이 월세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세 군데 정도 보여주기로 하였고 우리는 그중 안내에 나선 여사장님을 따랐다. 첫 번째 오피스텔은 입주시기가 맞지 않아 아예 보지도 않았다. 그곳은 비어있었고 당장 입주를 원하였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이사 일자를 비롯하여 거의 조건들이 맞아떨어졌다. 내부 빌트인 시설들도 훌륭하였다. 층수도 채광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걸로 주세요!”라고 하고 계약서 쓰러 가자고 하였다. 부동산 사장님은 “한 군데 정도는 더 보셔야죠?” 라며 다른 곳을 가려고 현 입주자와 통화하고 계셨다. 나는 더 이상 보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냥 이걸로 결정했다고 하였다. 지인도 나의 쇼핑하듯 계약하자는 태도에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어떻게 한 군데만 보고 결정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우리는 다시 부동산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인근에 사시는 임대인도 오셨다. 그렇게 계약서에 순식간에 서명을 마치고 나는 다시 돌다리 사거리의 커피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퇴근할 무렵에는 원룸 건물주와 부동산에 9월 마지막 주말에 이사 나간다고 노티스를 주었다. 그동안 감사하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추석 연휴와 남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벌써 이사할 날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삿짐을 미리 싸 둘까도 생각했지만 미리 싸 둘 짐이 없었다. 그래도 자전거 때문에 이사는 내 승용차로 두 번을 하였다. 토요일 오후의 외곽순환고속도로는 심한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음에도 짐은 많이 늘어나 있었다.
한국에 와서 1년을 생활하면서 양말 하나 티셔츠 하나 사지 않았다. 정말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살았던 것이다. 신혼 초기에는 그릇까지도 욕심을 내던 남자가 변해도 너무 변해 버린 것이다. 축구복만 20벌은 넘을 것이다. 축구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물론 아내가 먼저 시작한 삶이었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거의 무소유 개념으로 살고 있었다. 하나를 사면 반드시 하나를 버렸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버려야 할 쓰레기 더미 중 하나였다.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생각들은 생산적이지도 그렇다고 훌륭한 아이디어도 아니었다. 이 역시 버려야 할 쓰레기 더미일 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무튼 한국에 와서도 쇼핑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전혀 없다. 원룸의 작고 아담한 텅 빈 냉장고 속만큼이나 나의 생활공간들은 비움으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생각만큼은 비워내기가 쉽지 않았다. 비우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더 채워져만 갔다. 할 수 없이 보이는 것에 더 집착하기 시작하였다. 보이는 것이라도 자꾸 비우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주말 이사를 하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1년 동안 아무것도 사지 않고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짐은 처음 가방 2개를 가지고 입국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동생이 장만해준 주방 살림들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가장 기본적인 이불과 그새 책들이 50여 권 이상이었다. 읽은 책들은 여기저기 기증하고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은 여전하였다. 결국은 승용차로 두 번 이사하면서 몸살이 나고 말았다.
영국에서 가져온 옷 중 절반 이상은 사계절을 보냈지만 입어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올해도 내년에도 입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영국에서 가져온 이민 가방에 다시 욱여넣었다. 이처럼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간다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1년 동안 양말 한 켤레 사지 않았음에도 아무 생각 없이 사들인 옷들은 십 년 이상을 입어도 못다 입을 양이었다. 그것도 일부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영국의 집에 남아있다.
지난해 여동생의 아파트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처음 마련한 거처는 원룸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거 형태였다. 말 그대로 방 하나에 주방과 욕실이 다 들어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욕실에 샤워실이 없었다. 세면기 위에 샤워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방을 보러 갔을 때에는 침대와 온갖 짐들로 앉을 공간조차 없었다. 이전 거주자는 침대를 나에게 싸고 팔고 새로 살 생각이었다. 그래서 부동산을 통해 거래를 시도하였다. 아니라면 처음부터 주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침대를 1/2 가격으로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내가 필요 없다고 하자 1/3 가격으로 주겠다고 하였다. 공짜로 주어도 싫다고 하자 그제 서야 그러면 그냥 쓰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정말 필요 없으니 가져가지 않을 거라면 버려달라고 부탁까지 하였다. 가져갔는지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용달차를 불러 가져 갔을 확률이 높다. 버리는 데도 돈이 들기 때문이다.
침대를 치우자 비로소 숨 쉴 코딱지만 한 공간이 확보되었다. 그 공간에는 1년 동안 아무것도 들이지 않았다.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이었다. 주변에 초, 중, 고등학교가 몰려 있어서 유흥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강이 코앞이어서 좋았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거나 걸어서 산책을 하기 위해서 한강으로 나갔다. 해가 들지 않는 정확하고 확실한 북향이어서 커튼도 필요하지 않았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고 곰팡이가 끼었지만 2층이어서 그래도 살만하였다. 반 지하보다는 훌륭한 주거 형태였다. 여름의 정점을 찍을 무렵 몇 주는 북향임에도 햇빛이 몇 분 정도 미안하다는 듯이 방문을 해 주었다. 오히려 여름에는 직사광선이 들지 않아서 덜 더웠다. 창문보다는 에어컨으로 더위를 조절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추워서 창문 열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래도 겨울에 창문을 통해 햇볕이 들어오면 우울감은 많이 사라질 수 있다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었다. 낮에는 어차피 집에 없기 때문에 햇빛이 창틀을 통과해 들어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문제 되지 않았다. 영국에 비해 한국의 겨울은 혹독하였지만 그래도 겨울에 쨍하고 나타나는 햇살은 놀라운 축복이었다. 어차피 기다렸던 봄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역시 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창문을 반쯤은 열어둘 시기인 청명하고 깨끗한 가을이 다가오자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커튼 없이도 1년을 살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시계도 사지 않았다. 휴대폰의 시계면 충분하였다. 원룸에서의 1년은 생각보다 끔찍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편하게 눕고 씻을 수 있는 곳으로 원룸이 최적이었다. 물론 처음 한 달은 구치소에 있는 수감자들을 생각할 정도로 답답하였다. 그래서 더욱 카페로 나섰는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어차피 잠자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습성도 원룸이 가져다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였다. 이 사실에 나는 지금도 감사함을 느낀다. 인간은 환경에 가장 빨리 적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영장류이자 포유동물이다. 다행히 나는 이 구치소 같은 환경에 빨리 적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들었던 원룸을 떠나기로 하였다. 살고 있는 지역도 서울의 동쪽에서 서쪽의 정반대로 이사했다. 일상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하다 보면 생각 자체도 안락함에 익숙해지고 안주하려는 습관 때문이라도 이사를 결정하였다. 이사 후에는 그동안 정들었던 주변 길고양이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또 하나는 강남으로 향하는 추억의 1100번 버스다. 그러나 둘 다를 그리워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사 후 1주일도 안되어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새로 이사한 곳은 원룸이 아니라 오피스텔이었다. 침실이 하나 따로 있는 레지던스형 호텔식 구조였다. 욕실도 화장실과 샤워실로 분리되어 있었고 유리 커튼까지 되어 있었다. 주방도 기본적이 신혼부부들이 살림을 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아직 1주일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제철음식으로 집밥을 해 먹고 싶은 꿈까지 접은 것은 아니다. 벽의 대부분은 빌트인 수납공간들이었다. 그 수납공간을 혼자 사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1/3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 하나 딸린 신혼부부들이 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구조였다. 실용성과 구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차장도 지하 3층까지 있었다. 세대도 일반 아파트를 능가하는 대규모 주상복합형 오피스텔이었다. 미래의 주택들은 아파트에서 레지던스형 호텔식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존과 같은 보증금에 월세는 무려 10만 원이나 더 쌌다. 내가 짝사랑하는 한강도 이전의 원룸보다 코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이러한 레지던스형 오피스텔 구조를 1.5룸이라고 하였다. 최근 건설된 신형 오피스텔 구조라고 한다. 기존에도 존재하였지만 한층 개량된 설계라고 하였다. 복층 구조는 답답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았다. 차라리 복층을 없애고 2층 침대를 놓는 것이 높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복층 구조의 오피스텔이었다. 이사 후 매일 늦은 시간에 집에 오면 마치 호텔로 들어오는 기분을 느낀다.
0.5룸의 차이가 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행복이었다. 소크라테스도, 마르크스도 0.5룸의 차이를 체험했더라면 행복론도 자본론도 조금은 방향성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주어도 나처럼 1인 가구 세대주에게는 의미가 없다. 누구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처럼 게으른 은둔 형 인간에게는 청소하기만 힘들어지고 관리비와 공과금만 올라갈 뿐이다. 또한 층간 소음에 시달리며 전망이 좋다는 이유로 20층이나 30층쯤의 허공에 떠있고 싶진 않다. 허공에 떠 있는 것은 마음 하나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0.5룸이 주는 안락함이나 행복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나에게 집이란 잠만 자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13개월째 주말이나 일요일에도 카페로 출근하는 백수다. 토요일에도 오전에는 축구를 하고 오흐에는 카페로 어김없이 출근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요일 오후는 허비되는 킬링타임이 되어버린다. 나에게 쉰다는 것은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 그래서 10시간 이상 카페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직장인보다 훨씬 치열하고 촘촘한 생활 속에 생맥주 한잔 마실 시간이 없다. 오늘도 일요일이지만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14시간을 카페에서 읽고 쓴다. 어느 카페 직원들이나 손님들도 내가 이렇게 오래 앉아있는지 알지 못한다. 관심조차도 없다. 카페 직원들은 8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알바이기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짧게 근무한다. 그래서 더욱 엉덩이가 대단히 무거운 나라는 귀신의 존재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