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2019년 3월 4일)
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분량: 이북 기준 192페이지(폰트 22)
@ 판매: 블로그 서점(https://blog.naver.com/jebyi)
"오늘 아침에 일어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나는 살아있고, 소중한 인생을 가졌으니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타인에게 나의 마음을 확장시켜 나가기 위해 모든 기운을 쏟을 것이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 타인을 이롭게 할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티베트의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한 말이다. 명언이라서 인용한 것이 아니라 그의 단순하고 명료한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다. 특히 오늘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구절에 큰 감명을 받았다. 사실 나는 유명인의 명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가 멋지고 훌륭한 말들이지만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 하기, 즉 모방을 통한 자기 계발의 한계를 나는 이미 수도 없이 느꼈다. 나처럼 이러한 한계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또는 가끔 만나면 무심코 던지는 인사가 있다. 안녕하세요? 같은 집에 살거나 이웃의 어른들에게는 안녕히 주무세요! 또는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를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행위는 매일 반복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나 혼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것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러한 행동이 바로 내가 그 순간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3월의 첫날이 시작되는 아침이다. 2월과 3월의 다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수많은 변화들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사실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어제와 같은 태양이 배달해주는 햇살이 미세하나마 약간 더 따스하고 좀 더 화사하게 느껴질 뿐이다. 햇살의 촘촘하고 세밀함은 나의 두텁고 무거운 겨울 외투를 민망하게 만들고 마는 정도의 변화가 느껴지게 하지만 이 또한 심리적인 면이 더 강할 수도 있다. 하루 만에 느끼는, 아니 약간은 강제로 느껴야 하는 봄이 왔음을 인정하는 변화인 것이다. 3월의 첫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절기상 입춘은 벌써 지났지만 나의 노출된 세포들은 눈치도 없이 오늘부터 봄이라고 느끼며 마냥 즐거워하고 있다. 이번 한국에서의 겨울의 추위를 20년 만에 느껴보았기 때문이리라! 다행히 이번 겨울은 지난겨울에 비해 큰 추위 없이 지나갔다고들 한다. 그래도 내가 몸으로 느낀 한국의 겨울은 영국에 비해 너무 추웠다. 기대했던 함박눈도 몇 번 오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길고 어둡기만 한 추운 겨울이었다. 마치 겨울잠을 자고 나온 개구리나 곰 같은 느낌이다. 오늘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투도 좀 가벼워졌다. 벌써 봄옷들을 꺼내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띈다. 한국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유독 민감하다. 나는 아직도 겨울 패딩점퍼 그대로이다.
이처럼 어느 날 무심코 찾아오는 봄은 나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위험한 계절이다.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대지에 세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봄은 찬란하다 못해 서글프다. 물론 내가 봄을 많이 타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봄을 많이 탄다. 어떤 계절을 탄다는 의미는 그 계절을 많이 좋아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봄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첫사랑을 느꼈을 때보다 심한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특히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의 가슴에는 집체만 한 파도들이 쉼 없이 몰려왔다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렇게 봄을 앓는 일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만도 한데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고도 이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찬란한 봄을 향유해야 하는 시기에 나는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너무 역설적이다.
아름답고 황홀한 봄이 찾아올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모순된 나의 행동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도 강도가 달라진 햇살을 봄이라고 피부가 먼저 단정하면서 처음 든 생각은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생로병사 과정의 하나일 뿐이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어떤 특정한 현상이다. 그 현상을 미리 걱정할 필요도 걱정해서도 안 되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다. 걱정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자연스럽게 맞이해야 할 마음가짐은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왜 하필 많은 계절을 제치고 봄만 되면 죽음이라는 화두를 꺼내놓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일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을 즐기지는 못할망정 굳이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서의 죽음은 막연한 그리고 일상적인 죽음일 수도 있다. 문제는 가끔은 현실적이고 극단적인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러한 극단적인 시도를 해본 적은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러한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수 없이 해보았다. 하지만 막상 시도는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 유혹들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지만 이겨낼 것이다.
나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정도의 시기에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한 적이 있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화두로 삼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지금은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거나 초월하였을 정도로 태연하다는 말은 아니다. 어렸을 때 서너 번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어떤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의 절정기였고 찬란한 봄이었다. 내가 사라진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하며 살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죽음은 강박관념으로 다가왔다. 나의 삶 자체가 나 자신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 시절 죽을 뻔한 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갈 뻔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1년 내내 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항상 봄이었다. 봄이 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죽음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은 나이가 제법 들어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는 누구나 봄을 맞이하고 봄을 즐긴다. 그 이유는 겨울이 주었던 단순한 추위를 견디고 이겨내서가 아니다. 겨울은 어떤 보이지 않는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가 숨을 죽이고 단지 견디어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느끼기에 따라서는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겨울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인생을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봄을 기다리고 갈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여기에서의 봄은 사랑일 수도 성공일 수도 행복일 수도 있다. 각자가 추구하는 막연한 봄은 어떤 특정 단어로 한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각자의 인생에는 생로병사나 희로애락과 같은 자연의 사계절이 모두 들어있다. 거기에는 내가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려 하는 남아있는 봄의 횟수도 있다. 물론 숫자로 샐 수 있고 없고는 우리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는 할 수는 있지만 신에게 맡겨야 하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러한 비현실적인 슬픔을 현실에서 느껴야만 한다. 이번 봄에도 방황을 하고 그 방황 속에서 집체만 한 파도에 휩쓸리며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봄에는 슬프지만 찬란한 봄을 온몸으로 느끼고 또 즐기고 싶다. 더 이상 내년의 봄이 올지 오지 않을지를 걱정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현실 속으로 돌아오고 싶다. 그것이 나를 찾는 과정이고 나답게 사는 평범한 일상이자 행복한 삶의 방식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다. 이번 봄에는 약간의 욕심도 부리고 싶다. 슬프지 않은 찬란한 봄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평범한 사실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이번 봄부터는 만발하는 꽃들 속에서도 슬프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멀리서 격려해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사냥하는 고양이 둘째 아들 단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프롤로그
1장, 오지 않는 봄은 없다
1) 20년 만의 봄
2) 봄의 역설
3) 목이 부러진 목련과 동백
4) 오지 않는 봄은 없다
2장, 인생은 찰나의 봄
1) 봄을 앓다
2) 봄은 인생이다
3) 어느 노인들이 봄맞이
4) 찬란함 뒤의 쓸쓸함들
3장, 나는 우울증 환자
1) 부끄러워 숨겼던 우울증
2) 매일 죽음을 꿈꾸다
3) 템즈강변을 서성이던 나날들
4) 자살하지 못한 이유
4장, 나의 장례식
1) 어머니와 장인어른의 죽음
2) 미리 치를 나의 장례식
3) 나의 장례식 절차
4) 파티 같은 장례식
5장, 종교는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1) 영생의 모순
2) 죽음은 끝이 아니다
3) 죽음을 바로 보는 자세
4) 죽음은 인간이 누리는 최고의 축복
6장, 나답게 산다는 것
1) 인정할 건 인정하자
2) 유한해서 더욱 아름다운 삶
3) 오늘 하루에도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4) 무엇을 남기로 갈 것인가?
에필로그
어려서부터 시작된 봄에 대한 집착은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성장시켜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뚝뚝 떨어지는 목련과 동백꽃에서 목이 잘리는 죽음을 생각하고 그 죽음이 어떤 공포나 두려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간 것이다. 죽음이란 슬픔이 아니라 단지 헤어지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면하는 것이다. 즉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벌써 50번 이상의 봄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봄이 주는 슬픔은 결코 아픔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냥 아름다운 일상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며칠 후면 남쪽에서부터 꽃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올해는 섬진강에 가서 재첩국을 먹으며 봄을 맞이하고 싶다. 악양 들판에서 각종 꽃으로 찬란한 지리산도 바라보고 싶다. 경주 보문단지의 벚꽃 구경도 실컷 해보고 싶다. 봄은 그냥 봄일 뿐이다. 그 안에 내재된 깊은 슬픔을 캐어내 같이 아파할 겨를이 없을 만큼 봄을 만끽하고 싶다. 마치 이번 봄이 나의 마지막 봄이 된다고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최대한 즐기고 싶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숙소도 민박이나 모텔이 아닌 전망 좋은 근사한 호텔에서 묵고 싶다. 20년 만에 맞이하는 고국의 봄을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샅샅이 즐기고 만끽하고 싶다. 친구나 말동무도 필요 없다. 혼자로도 벅차다. 그 많은 꽃나무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려면 나는 많은 언어를 준비해야만 한다. 단지 안녕!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부족하다. 꽃들만의 언어들로 소통하고 대화해서 그동안 머나먼 타향에서 그리워하고 흠모하던 봄의 속살까지 만져보고 싶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번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러한 삶을 매 계절마다 살고 싶다. 어느 계절에서 내 삶이 중단되어도 상관없다. 나는 매 계절마다 봄을 맞이하고 즐기는 것처럼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때로는 속세에 찌들어도 때로는 속세를 떠나도 그런 삶의 방식조차 나의 삶인 것이다. 나의 삶의 방식은 어떤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게 하고 싶다. 많은 것들을 이루고 싶은 욕심보다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싶다. 매일매일을 살아나가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문제대로 해결이 될 것이다. 이제는 나의 가장 큰 삶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어깨가 가벼워졌다. 50년을 짊어지고 살았던 죽음이라는 짐은 이제 나의 친구가 되었고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더 이상 죽음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참 오랜 시간을 돌아서 왔고 나름대로 잘 버티고 견뎌온 보람이 있다. 나는 항상 나를 믿는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짐을 내려놓으면서 내가 최근에 직접 고민하여 만든 나의 새로운 좌우명이다. 나는 항상 당당하고 자신 있게 인생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죽음까지도 내려놓았는데 내가 세상에서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항상 겸손하게 살려던 나의 삶은 50을 기점으로 좀 더 공격적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에서 이 찬란한 봄이 나에게 몇 번이나 더 올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