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2019년 3월 11일)
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분량: 이북 기준 177페이지(폰트 22)
@ 판매: 블로그 서점(https://blog.naver.com/jebyi)
지난해 겨울과 봄의 중간쯤으로 기억된다. 나는 런던에서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살아있는 매일매일이 고통이었다. 그래도 2층의 빈방들을 직원들에게 숙소로 제공하며 같이 살면서 나름 잘 견뎌내었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면서부터 우리 집은 텅 비었다. 나와 고양이 단오만 남았다. 힘든 나날이 시작되었다. 그들과 외식도 하고 그들을 위해 저녁을 만들기도 하고 일과 후 펍으로 생맥주를 마시러 다닐 때는 행복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행복하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지난해 여름이 시작되면서 3년간 떨어져 살았던 가족이 한국에서 돌아왔다. 고대하던 가족과 함께하는 삶은 예상과는 달리 어긋나기 시작하였다. 이미 아내는 아내의 삶의 방식이 생겼다. 3년간의 별거 아닌 별거가 주는 간극과 깊이는 히말라야의 곳곳에 숨어있는 크레바스보다 깊어 보였다. 내가 걸리적거리고 귀찮은 존재처럼 인식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크레바스에 빠지기 직전에 무언가 미끄러운 얼음덩어리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나 또한 나의 삶의 방식에 3년간 익숙해져 있었다. 이를 극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물론 라이프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식은 지 오래였고 신뢰 또한 무너져갔다. 무엇보다도 무너져가는 자존감의 끝이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하는 수 없이 이 어색한 동거에서 벗어날 궁리를 시작하였다. 크레바스에 빠진다는 것은 죽음 이상의 고통이었다. 차라리 죽음 자체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나의 무너져 내린 자존감이 말라비틀어져 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나는 탈출구가 필요하였다. 대안으로 아들과 여행을 시작하였다. 지난해 6월 말이었다. 아들이 한국에서 돌아온 지 2주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아들과 자동차를 렌트하여 프랑스와 이태리 자동차 여행을 하였다. 모른 루트와 일정은 아들에게 위임하였다. 내가 한 일은 나의 신용카드를 아들에게 잠시 넘겨준 것뿐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가이드를 받으며 안락하고 편안한 휴식 같은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 공항에서 렌트한 메르세데스는 마일리지가 70킬로미터인 최신형이었다. 우리가 처음 렌트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들은 기뻐했다. 물론 아들이 예약한 차였기 때문이다.
니스 남부 해안을 따라 모나코를 거쳐 이태리와 프랑스 알프스를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도중에 피카소도 만나고 고흐와 고갱도 만났다. 숙소는 그동안의 패턴과 달리 호텔이 아닌 저렴한 에어 비엔비를 이용하였다. 이 또한 아들의 아이디어였다. 여행다운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나의 마음은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겐 가이드북 따위는 필요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생각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자동차 여행의 매력이었다.
프랑스 남부 아를의 작열하는 해바라기 밭에서도, 니스나 모나코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해변에서도, 아름답고 고즈넉한 알프스 마을들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보면서도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외로움이었다. 제법 의젓한 아들이 항상 보디가드처럼 옆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은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전혀 외로울 수도 그리고 외롭지도 않은 날인데도 나는 외로움을 생각하였다. 생각이란 표현보다는 가슴이 느꼈다는 말이 좀 더 사실에 가깝다.
아들과 웨일스를 여행할 때는 같은 영국이어서 나의 자동차를 이용하였다. 첫날 카디프에서 근사하고 독특한 레스토랑에서 둘이 저녁 식사를 하였다. 촛불이 켜져 있고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레스토랑의 내부는 환상 그 자체였다. 그날 호텔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그 편지는 차마 전해줄 수 없었다. 편지의 대부분은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었고 그 외로움은 아내가 채워줄 수 없는 근원적이고 원시적인 외로움이었기 때문이었다. 1주일간의 웨일스 여행에서도 매일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하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외로움은 나를 괴롭혔다. 단순히 아내의 부재나 아내와의 갈등 때문 많은 아니었다.
웨일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있었다. 더 이상의 여행은 무리였다. 장시간의 운전으로 인한 허리디스크는 더욱 심각해져 갔다. 통증으로 인한 고통은 우울지수만 올려가고 있었다. 매일 치료를 하려 다녔지만 효과가 없었다. 영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만 한탄하고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였다. 아내와의 몇 차례 밤샘 토론을 하였고 아내는 나에게 1년간의 휴식을 제안하였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 와서 꿈에 그리던 1년간의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치료를 시작하였다. 물론 저녁에는 매일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다. 아! 바로 이게 자유고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3개월이 지나갔다. 그렇게 아름다운 한국의 가을도 정신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아니 찰나였는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연말연시가 되자 모두들 바빴다. 아무도 더 이상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다들 송년회나 망년회로 바빴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고 거기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받았다. A형 독감이라는 정교하게 포장된 난생처음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1주일간의 자가 격리치료라는 처방은 차라리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자존감의 끝자락을 부여잡게 하는 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줄 데가 없는 나 자신의 쓸쓸함은 비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하였다.
쪽방촌의 노인이 고독사 해서 백골로 발견되는 그런 느낌이 지속되었다. 이제는 외로움은 차라리 낭만적이고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이러다가는 부여잡고 있는 얼음덩이마저 놓쳐서 크레바스에 영원히 빠질 것만 같았다. 그건 외로움도 죽음도 아닌 또 다른 미지의 나를 만나는 비현실적인 실존이고 현실적인 몽상이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인간이라면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다. 외로움을 정신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거나 의학적인 질병으로 규정하느냐 마느냐의 논쟁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그럴 지식도 능력도 없다. 다만 인간이니까 느껴야 하는 외로움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피력하고 싶다.
어느 날 돌아보니 중년이 되었고 아들은 성긴 수염이 제법 까뭇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내 또한 갱년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중년이 되어가는 성장 통은 중2병보다 더욱 심각하고 무서웠다. 가족을 위해 젊음과 청춘을 헌신한 가장들의 몰락은 남의 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일이 되었고 나에게 그렇게 닥쳐왔다. 내가 겪고 경험한 이 몰락과 외로움은 또 다른 인생의 도약을 위한 중2병이라 생각하고 진실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연습을 시작하고 싶어 졌다. 껍데기를 벗고 번데기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나비가 되어 화려한 비상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 새로운 걸음마 같은 연습을 나는 감히 여행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 여행은 지난하고 끝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긴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그 길이는 49cm에 불과하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이다. 부디 이 여행이 자신을 발견하고 제2의 중2병을 해결할 수 있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중년은 그렇게 찾아왔다. 이미 중년이 된 수많은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큰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부질없는 희망조차 나의 욕심인 줄 알지만 그 욕심이 이 글을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음 고백한다. 끝으로 부끄러운 자전적인 글들이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멀리서 격려해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사냥하는 고양이 둘째 아들 단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프롤로그
1장, 난 매주 월요일 춘천에 가서 외로움을 내려놓고 온다.
1) 매주 월요일에 춘천에 간다
2) 춘천의 추억
3) 춘천에 살고 싶다
2장, 한국의 무너지는 가장들
1) 가장이라는 책임의 무게
2) 퇴로가 막혀버린 중년의 가장들
3) 슬픈 자화상
3장, 나의 외로움과의 싸움: 영국 편
1) 이민 초기의 외로움
2) 친구의 방문
3) 동네북이 되다
4) 순조로운 사업
5) 별거 아닌 별거
6) 매일 산책하는 고양이
4장, 나의 외로움과의 싸움: 한국 편
1) 결단
2) 꿈에 그리던 귀국
3) 동창회의 추억
4) 크리스마스 선물
5) 쪽방 촌 노인과 고독사
5장, 내가 보고 느낀 영국인의 외로움
1) 영국 노인들의 아침 일과
2) 영국 노인들의 하루
3) 영국인들의 일상생활
6장, 어느 행복 전도사의 자살
1) 행복이란?
2) 행복과 외로움의 관계
7장, 성직자나 신은 외롭지 않은 걸까?
8장, 나의 외로움 극복 처방전
1) 글쓰기
2) 콘텐츠 개발
3) 봉사활동
에필로그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 사람만 외로울까? 동물들 심지어 식물들도 외로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인은 바람이나 돌도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였다. 외로움을 학문적인 접근을 통해 분석하는 글이나 논문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서두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나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내가 느낀 외로움의 정체를 파헤치고 싶었다. 외로움도 과연 원죄(sin)처럼 근원적인 것이고 우리가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였다.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을 돌고 돌아와서 이제야 나의 외로움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만약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정체를 밝히기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외로움과의 싸움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차 전통적인 가족은 해체되고 1인 가족은 늘어나고 있다. 애완동물 열풍이 부는 것은 그 좋은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영국처럼 외로움 부서를 만들고 장관까지 임명하는 나라도 있다. 이처럼 외로움을 허투루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외로움이 얼마만큼 건강에 나쁜지에 대한 논문들도 계속 발표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과의 한판 승부보다는 외로움과의 싸움이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갖지 못하는 감정을 선점하고 통제하는 세상이 바로 5차 산업혁명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결국 외로움이란 나의 열망을 억제하는 그 무엇에 한한 것이었다. 그 통로를 조금 열어주었을 뿐인데 나는 홀가분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개운함을 느낀다. 느끼한 음식을 먹고 난 뒤 차가운 콜라나 맥주 한잔을 들이켜 그 느끼함을 씻어낸 기분이다. 그 차가운 콜라와 시원한 맥주 한잔의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초등학교 때 써본 일기가 다였을 정도로 글쓰기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더구나 책을 쓰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고 결코 나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글쓰기가 내 몸에서 썩어 냄새가 나는 나의 응어리들을 치유해 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단지 글을 쓰고 책을 집필해 나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놀라운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억눌리고 갈 곳을 잃은 나의 자아가 비로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자아실현이라는 경험을 하는 중이다. 속단하기 이르지만 그동안의 나의 우울과 외로움은 마땅히 분출될 틈이 없어서 생긴 결과였다. 이것 또한 나의 발견이다. 내가 나 자신을 계발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얼핏 보면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확연하게 다른 의미다. 이미 내 몸속에 내재되어 있던 응어리들이 몸 밖으로 뛰쳐나왔을 뿐이다.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렇게 밖으로 나온 또 다른 나의 분신들과 세포들은 그렇게 숨을 쉬고 새 생명을 얻어가고 있다. 나의 세포분열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세포분열이 가속화될수록 나는 발전할 것이고 계속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 나갈 것이다.
2019년 3월 11일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