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부제: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유람선과 세월호 및 성수대교 사고 등을 접하며 인간의 나약함과 공감능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 분량: 이북 기준 189페이지(폰트 22)
프롤로그
그날 저녁 나는 후배와 미사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바로 전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참사를 당해 생사조차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술을 마시는 내내 나의 공감능력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을 하고 있었다.
나의 평일은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그렇다고 휴일에 특별한 삶이 있는 것도 아니다. 5월의 마지막 목요일 아침, 기상과 동시에 샤워를 마치고 동네의 카페로 출근을 한다. 직장인과 비슷한 시간부터 카페에서 나만의 일을 한다. 그날도 이층에서 전자책을 읽고 있었다. 아직 창밖은 어둠이 내리지 않아서 해질 무렵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이 커피숍은 내 전용 사무실로 이용하는 공간이어서 집처럼 편하다. 아니 좁고 답답한 집보다 더 편하다. 목요일 저녁 7시 반쯤이었을 것이다. 그만 집으로 갈까, 아니면 조금만 더 읽고 갈까를 고민하던 차에 미사리에 있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20년 전 내가 만든 봉사활동 모임에서 만난 후배였다. 지금도 벧엘의 집에서 같이 활동하는 그 후배로부터 술 한 잔 하자는 전화였다.
석양 무렵, 걸려온 전화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몸은 즉각 반응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는 다음날 일정도 살펴보고 몸 상태도 체크한 후 연락을 주겠다는 식으로 즉답을 피해왔다. 하지만 그 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누군가가 불러주기를 고대하고 있었음을 들켜버린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후배와는 그런 걸 따질 사이가 아니었기에 숨길 것도 숨길만한 것도 없이 편하다.
노트북의 전원을 끄고 주섬주섬 짐들을 챙겨서 매일 책가방처럼 매고 다시는 검은색 Backpack에 넣었다. 커피숍을 나서자 택시들이 줄지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쪽 택시 승차장에는 더 많은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숍 바로 앞에도 택시 승차장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줄지어서 기다리는 맨 앞의 택시로 가서 뒷좌석에 타고 인사를 하였다.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님은 일단 출발한 후 한강의 어느 다리를 건널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나의 예상과는 달리 택시는 암사대교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은 땅거미가 남아 있어서 밝음 반 어둠반의 애매한 시각이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시간에 택시는 암사대교 위를 달리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였는지 막힘이 없었다. 문득 강동대교 옆에서 몇 달 전 추락한 소방헬기 생각이 뇌리를 빠르게 스쳐갔다. 그 시각 나는 자전거를 타고 그 옆 한강변을 지나고 있었다.
암사대교는 반쯤 비어있었다. 순간, 택시 안에서 나도 모르게 강 아래로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둠 직전의 검푸른 강물을 바라보며 하루 전날 들려온 헝가리 다뉴브 강의 비보를 생각하고 있었다. 순식간의 사고로 한국인이 탄 유람선이 전복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희생되었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가족들이어서 더 안타까웠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전원 한국인이었다. 단 두 명만 헝가리인 승무원이었다. 뉴스로 접한 다뉴브 강의 강물은 흙탕물을 머금은 채 잔뜩 성이 나 있었다. 반면, 한강물은 아무 말이 없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희생자가 죽어가면서 느꼈을 그 고통과 공포를 잠시라도 생각해 보지만 그 고통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서글퍼진다. 하필, 오늘 후배를 만나 술을 마시러 가는 나의 행위에 잠시 마음은 주춤거리지만 이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에 절망하고 만다. 기껏해야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라는 사실은 차라리 현실적이다. 잠시 생각에 젖어드는 사이, 택시는 벌써 다리를 건너 미사리의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통화 후, 생각보다 내가 너무 빨리 도착해서인지 후배는 한참 후에야 조금은 당황한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서로 한강을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라서 다리 하나만 건너니 바로 약속 장소다. 이렇게 지척인데,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술 한 잔 하자는 제의를 매몰차게 거절해온 게 미안해진다. 그렇게 후배와 저녁 겸 한잔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알코올은 20년 이상의 세월을 환기시키며 분위기를 잔뜩 고조시키고 있었다. 흘러간 세월 속에는 즐거운 추억들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슬프고 아픈 추억들이 더 많았다. 이상하게도 아픈 추억들과 즐거운 추억들의 중간쯤 되는 두리뭉실한 기억은 없었다. 추억은 흑 아니면 백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다른 원색들은 왜 추억에서 사라져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인간 뇌구조의 역학관계상 그렇게만 기억될 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자극적이거나 선명하지 않은 추억들은 세월의 길이만큼 점점 무디어져 가서 희석되거나 증류되고 말았을 것이다. 다음날이 금요일이어서 우리는 2차에서 간단하게 생맥주 한잔씩을 더하고 일어섰다. 아주 약한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 비라고 불리기에는 애매한 빗방울들이었다. 어제 다뉴브 강에서 사고를 당해 죽어간 자들의 눈물처럼 느껴져서인지 나는 그 눈물방울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을 길에서 서성이다가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한강을 내려다보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약간 취기가 오른 술기운에도 나는 한강을 마치 범죄자처럼 강렬하게 째려보고 있었다. 택시의 뒷좌석은 포근하고 안락하였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동안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 졌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이번 다뉴브 강 사건에도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인간이란 존재의 나약함과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에 신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어이없는 사고를 접할 때마다 운명이란 것이 예정된 것인지도 혼란스러워진다.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사고는 운이라는 것이 없어서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여행 계획은 몇 번 변경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였다. 동유럽 저가 여행을 판매하는 여행사는 20명 이상이 되어야 패키지여행을 출발시키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원래 일정과는 다른 일정을 강요받다시피 하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 그날이 비극적인 마지막 날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한 채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여행사 관계자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강요를 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저가라는 달콤함에 그 바뀐 일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항상 운이 좋아서 내일을 맞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지에 강한 의문이 들지만 그 또한 증명할 길이 없다. 패키지여행이 돈이 없는 사람들만의 여행 방식은 아니다. 돈만은 사람들도 패키지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와중에도 술을 마시고 내 할 일을 하는 나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도 한강 다리를 두 번이나 통과하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일까?
한강에게 물어보지만 강물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자기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이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 시점도 잠실대교의 1100번 버스 안에서였다. 삶과 죽음보다는 그것들과 연관된 운이나 운명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요즘 유튜브를 통해 사주팔자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것이 정말 있기나 한지 궁금해진다. 사주팔자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각에 죽을 운명이라는 것이 되고 만다. 세월호 사고 때 죽어간 단원고 학생들이 모두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도 너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계층과 계급이라는 안타까움이 숨겨져 있다. 내가 더욱 가슴 아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학교, 취업, 결혼은 물론 죽음까지도 양극화의 패러다임 안에서 피해를 보는 자와 혜택을 보는 자로 나뉜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이른 아침에 무인도 체험을 위해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돌고 있다. 사고 당일 날도 그 할아버지는 배가 출항하는 현장인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 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만난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을 유독 잊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날 이른 아침 배를 기다리는 단원고 학생들 중 한 명과 내가 만난 할아버지 사이의 대화는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 학생은 용돈을 3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물가가 비싼 제주도에서 3만 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날 아침을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마치 내가 사고 현장의 다뉴브 강의 다리를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듯이 말이다.
28년 전 대학생 시절 나는 그 다리 위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지에서는 도나우 강이라고 불린다. 그렇게 공간 속에 시간이 함몰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시간 속에 공간이 함몰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삶과 죽음에도 계층 간 불평등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조차도 사주팔자에 나와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모든 것은 “운명”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전직 대통령의 사례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오늘도 1100번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만약 이 다리가 붕괴되어 버스가 한강으로 추락한다면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답을 나는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강은 오늘도 입을 다문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나약한 인간인 너 같은 존재가 감히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일종의 경고성 침묵이었다. 한강은 입을 다물었지만 나는 침묵할 수 없다. 살아있는 자로서, 살아남은 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안타까워하는 공감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오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는 잠실대교 위를 거북이처럼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다소 시사적이거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어서 망설이기도 하였지만 살아남은 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출간을 결심하였다. 끝으로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준 아내와 아들 그리고 사냥하는 고양이 둘째 아들 단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목 차 -
프롤로그
1부. 아름답고 내성적인 한강
1화. 1100번 버스 안에서
2화. 잠실대교 북단
3화. 성수대교와 세월호
4화. 나의 짝사랑
5화. 사람답게 산다는 것
2부. 아름답지만 성난 다뉴브 강
6화. 안타까운 사고소식
7화. 길고 긴 기다림
8화. 이태리 제노바 여행
9화. 28년 전의 다뉴브 강
10화. 바젤에서 마주한 라인 강
3부. 아름답고 외로운 템스 강
11화. 템스강가에서 내가 살 줄이야
12화. 템스 강과의 인연
13화. 센 강의 추억
14화. 런던과 템스 강
15화. 가끔 템스 강이 운다.
에필로그
에필로그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일상용어처럼 사용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미묘하고 복잡해진다. 과연 100세까지 살려면 천운을 타고나야만 하는 것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건사고로 죽어가는 시대에 우리가 언제까지 내일을 맞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면 환자들이 넘쳐난다. 여러 가지 노화와 질병들을 감당하기도 벅찬 세상이다. 언제 어떤 암에 걸릴지도 알 수 없다.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고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집 밖을 나서면 매일 수많은 위험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과연 운명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일까? 팔자가 세거나 사나운 사람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세월호 사고 때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모두 같은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점점 궁금해진다. 아니면 운명이나 사주팔자에도 예외조항이 있는 것일까? 이번 부다페스트 유람선 사고를 접하면서 인간의 나약함과 무기력함에 또다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금방 우주 여러 곳을 정복하고 우주에서도 우리 인간들이 살 수 있을 것처럼 떠들어 대지만 당장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그마한 사고들에도 우리 인간은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들을 대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도하는 마음 정도다. 나약한 인간이 큰 사고들을 대하며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을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아직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좀 더 진화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한 사고들을 접하면서도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알량한 동정심뿐이다. 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본에 의해 죽음이 결정되거나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포도 아니고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간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를 들이대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만 한다. 세월호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더라면 이라는 헛된 혼자만의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훨씬 수학여행 일정을 제주도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나는 실무자가 아니기 때문에 배를 타고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비효율적인 수학여행을 가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인천에서 제주도까지 배를 타고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하다. 비행기를 타는 비용 때문이었다고 하면 제주도가 아닌 가까운 데로 가는 방법을 택했어야 할 것이라는 어설픈 대안을 제시해본다.
아무튼 역사에는 가정이 없고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이나 선택이, 아니면 단순히 자본 때문에 아까운 목숨들이 희생되는 일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돈이 없는 것도 서럽고 힘든데 그 아끼고 쪼개어 모은 돈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돈이 없는 것도 힘들고 서러운데, 이제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목숨마저도 점차 위태로워지는 일이 늘어난다면 분명 잘못된 사회일 것이다. 내가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다리가 무너지는 상상을 하는 것은 단지 불안증 환자여서만은 아니다. 나처럼 강남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매일 강남으로 출근하려면 최소 하루에 2회 이상은 한강을 건너야 한다. 언제 다시 제2의 성수대교 참사가 벌어질지 누가 장담한단 말인가? 이제는 죽음도 불평등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작은 것부터 개선하고 개혁해야 하는 임무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모두가 평등할 수는 없지만 최소 돈 몇 푼 때문에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까지도 달라져야 한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사회이고 잘못된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밀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간의 나약함만을 탓하면서 오늘도 한강에게 질문을 던져보지만 한강은 말없이 흐를 뿐이다.
2019년 6월 3일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