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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12. 2019

나는 하루살이처럼 살기로 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서 나와 마주하다.


올해 코엑스 서예관에 전시되었던 중국 치바이스 선생이 90이 넘은 나이에 그린 작품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왜 사는가? 는 나의 평생 화두였다. 그 답을 찾아가는 여행이 곧 삶이었고 그 삶이 커다란 소용돌이를 칠 때마다 여행은 중단되었지만 결코 삶을 멈출 수는 없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요즘처럼 나를 압박했던 적은 없었다. 난관은 하나씩 줄 서서 인자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마치 차압 딱지를 부치려고 달려드는 집달리 같았다. 쓰나미나 태풍처럼 일시에 그리고 무자비하게 찾아왔다. 죽거나 또는 생존하거나의 문제에 직면하도록 강요하며 현관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선다. 이를 막거나 타일러서 돌려보낼 만큼의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심신은 무너져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1년간의 안식년은 삶과 죽음의 차이와 경계를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많은 질병들이 나를 공격해대기 시작하였다. 그 와중에 잠깐 시간을 내어 이혼도 해야 했다. 모든 것이 더 이상 나쁘거나 잔인할 수는 없었다. 죽음은 언제든지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아침마다 집을 나설 때 지갑과 휴대폰을 챙기듯이 집과의 인사를 한다. 내가 저녁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저녁에 현관문을 열면 습관처럼 나의 집이라는 작고 초라한 공간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헤밍웨이의 소설은 어느 날부터 더 이상 그만의 소설이 아니었다.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비관적인 태도로 삶과 마주할 필요는 없었다. 죽음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지자 삶 또한 단순해지고 명료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유의 과정 또한 나를 찾아가는 성스러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치 성지 순례자처럼 하루를 살아내는 이유다.      


그의 소설에서 성당의 종지기가 종을 울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아!! 또 누가 죽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종이 울릴 때마다 너무나도 막연하게 그리고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언젠가는, 아니 내일이라도 저 종이 나를 위해 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너무 막연하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다. 막상 눈앞에 닥친 죽음만이 현실이고 죽음일 뿐이다. 어렸을 때, 마을에 초상이 나면 신이 난 건 아니었지만 속으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3일 동안 잔치 같은 장례식이 치러지면서 먹을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상여 앞에서 두툼하고 기다란 대나무에 걸린 만장을 들고 가면 돈을 주었다. 그렇게 꽃상여는 집에서 산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출발하였다. 꽃상여에 실린 관이 산으로 운구되어 땡땡 얼어붙은 땅에 묻히는 걸 직접 보면서 죽음이 두렵다는 걸 처음 인지했다. 꽁꽁 언 땅속에 혼자 묻혀서 영원토록 잠을 자야 한다는 죽음은 어린아이에게는 충격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죽음이 무섭고 슬픈 일이라는 걸 체험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화장이 아닌 매장 문화였다. 그래서 죽으면 납골당이 아닌 산으로 가서 묻혔고 묻힌 자는 장례를 치르고 귀가하는 사람들처럼 다시 마을로 내려  수 없었다. 그것이 죽음의 모습이었고 실체였다.


죽음, 즉 어떤 소멸이 두려웠던 건 아니었고 그 꽁꽁 언 땅속에 묻혀야 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나 끔찍했다. 성장하면서도 죽음은 항상 두려운 존재였고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치부하면서 항상 남의 일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성인이 되었고 가정을 이루고 사업체를 이루고 바쁘게 살고 있었다. 누구나 겪는 힘들고 어려운 이민 초기의 역경을 이기고 안정된 생활이 시작되면서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가진 것이 많아서도 걱정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이제야 경우 한숨 돌릴 수 있다는 여유 그 자체가 주는 행복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너무도 짧고 허무했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가물거리며 시골마당의 평상 곁에 피워둔 모깃불처럼 밤하늘에 무덤덤한 흰색을 덧칠할 뿐이었다. 생숙과 생솔가지를 섞은 모깃불은 독하고 강한 냄새를 발산하며 모기의 입을 통해 기도를 막아버렸다. 그렇게 나의 기도도 서서히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두려웠던 죽음을 나 스스로가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뭔가를 훔쳐 먹다 엄마한테 걸려서 화들짝 놀라는 아이처럼 진저리가 쳐졌다. 몇 년 전 우울증이 심하였던 시기에는 하루 종일 죽는 생각만 하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덜 고통스럽고 효율적으로 죽을 수 있을까?를 수도 없이 생각하였다. 이 일은 오랫동안 악몽처럼 이어졌다. 밤낮이 따로 없었다. 밤에는 꿈에서 낮에는 일상에서 효율적으로 죽기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연구원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매일 그 과정을 노트에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우울증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나같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결코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줄 알았다. 정신이 나약한 사람에게나 걸리는 것으로 치부하였다. 세상에 항상 당당하게 맞서고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나의 모습과는 상반된 이미지였다. 내가 우울하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치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아내나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최근에 안식년을 가지면서 정기적인 치료도 받고 많이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의사보다 더 훌륭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대세가 되고 지금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하루살이들의 생은 어떨까?라는 질문을 혼자 자주 한다. 물론 하루살이가 딱 하루만 살지는 않는다. 며칠 더 살거나 몇 주까지 살기도 한다. 하루살이가 오래 살 수 없는 것은 퇴화되어 입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먹을 수 없이 며칠을 견딘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루살이들은 하루를 1년처럼 살면서 짝짓기를 통해 종족 번식까지 맞춰야 하는 슬픈 운명을 타고 난다. 그래도 그 하루에 최선을 다해서 맹렬하게 살다 짧지만 굵은 생을 마감한다. 하루짜리 삶이 있다는 생각은 하루라는 물리적 개념을 재정립하게 하였다. 하루에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서 하루 만에 책 쓰기에 대한 확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하루살이들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유한한 인생을 무한한 것처럼 낭비하면서 사는 자신이 한심해지기 시작하였다. 돈은 기를 쓰고 모으고 절약하면서 시간에게는 너무 관대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그 시간을 가불해 쓰려고 몸부림을 치며 연구까지 하고 있었다. 어차피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목숨인데 그 시간을 당기지 못해서 안달하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루살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야 할 부분이었다. 나에게도 오늘 딱 하루만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무슨 일이 가장 의미가 있고 소중할까? 누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할까? 갑자기 혼란스러워지고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주어진 마지막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은 분 단위로 생각하고 행동해도 부족할 것 같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많이 들어보고 참 멋진 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한가롭게 사과나무를 심고 있을 겨를이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말이지만 아주 다급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절망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인생은 하루살이 인생이다. 내일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즉, 내일 나를 위해 성당의 종지기가 종을 울릴 수도 있다.


그래서 하루살이처럼 살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보자. 나에게 내일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픔도 우울도 사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초 단위까지는 아니지만 하루하루를 허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또 무언가를 남기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슬프게도, 우리가 습관처럼 입 밖으로 내뱉는 "내일 해야지! 또는 내일 만날까!"라는 말을 하루살이들은 할 수가 없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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