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Oct 12. 2019

우린 인연이 아니라 묘연이야!

12년 차 고양이 아빠의 반려동물 이야기 #14


산책하는 고양이들을 만났다. 반가웠다. 우린 묘연이라고 해야 하나!! 오늘 또 감자와 땅콩을 만났다.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우연한 만남이다. 그들의 재롱으로 약간 외롭거나 쓸쓸하던 감정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데는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하였다.     



햇살이 넉넉한 토요일 오후의 동네 카페는 인파로 북적였다. 공부하는 학생들부터 부동산 투자나 투기 이야기들까지 별 다방의 2층에서는 별별 이야기가 다 펼쳐지고 있었다. 저잣거리가 따로 없다.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읽고 쓰고 씨름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듣기 싫어도 들려오는 인생사들에는 그들만의 애환과 그들만의 스토리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어쩌다가 한강 신도시까지 미끄러져 나왔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들렸다. 강남이나 분당에 살았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내용들은 측은하다 못해 웃펐다. 그다음이 아이들 문제였다. SKY라는 단어도 가끔 들려온다. 그 뒤를 보험이나 기타 영업하는 사람들의 상담 이야기들이 이어간다. 세상의 축소판이 로 없다. 글쓰기에 필요한 글감들은 별 다방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의 이야기들이 여론이고 민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세상과 동떨어진 글이라면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느지막한 점심을 먹기 위해 별 다방을 나와 인근의 찌게 마을이라는 단골집으로 향한다. 토요일이어서 가족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창가의 햇살이 반짝 들어오는 테이블은 비어있었다. 사장님은 주문을 받으시면서 한국인들은 햇빛을 유독 싫어한다고 하시며 빈자리가 많아도 항상 그 자리에 앉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셨다. 햇살이 좋아서 창가에 앉는데도 애써 안쪽의 빈자리를 권하신다. 오늘은 점심때가 약간 지난 오후였지만 식당은 창가 한자리를 제외하고는 빈자리 없이 북적였다. 내가 앉은 그 자리에는 여지없이 직사광선이 통유리 창문을 난입하고 있었다. 식사 내내 햇살을 즐기는 호강 때문에라도 단골이 되었다. 햇살에는 단순하게 온도와 색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향기도 들어있다. 그 향기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다.



새로 이사 온 오피스텔에서는 아직 햇살을 접해보지 못하고 있다. 벌써 이사한 지 정확하게 2주가 지났는데도 말이다. 서향이어서 오후에 빛이 드는 구조인데 별 다방이 문 닫는 시간이 나의 퇴근시간이기 때문에 햇살과 마주할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점심 식사 동안이라도 햇살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마침 요즘은 온도도 많이 떨어져서 햇살은 더욱 정겹고 포근하다. 혼밥을 하는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까지 나의 친구가 되어 준다. 나에게도 친구가 아닌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이사한 지 2주 만에 마음 줄 친구가 둘이나 생겼다. 그래서인지 오전 내내 아팠던 허리 통증도 오후에는 더 이상 칭얼대지 않고 잠잠하다. 특히 땅콩이의 저 눈망울은 만병 통치약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를 닮은 감자는 언제나 표정이 좀 그렇다. 무슨 후기 인상파도 아니고....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정감이 간다. 아내는 "인상 좀 펴고 살아"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나는 우울에 찌든 얼굴로 살아왔다.


     


식사가 끝나면 별 다방 인근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한다. 그런데 운 좋게도 지난번 만났던 감자와 땅콩 이를 오늘 또 우연히 만난 것이다. 고양이와의 만남을 인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묘연이라고 해두기로 하였다. 둘은 산책을 나와서 나처럼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웃거렸다. 간식을 먹기도 하고 벌레를 잡기도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들에게 시비를 걸기도 하였다. 아기 고양이들은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귀엽다고 여기저기서 몰려든다. 그러면 금방 귀찮아서 어쩔 줄 모른다. 고양이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동물이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고양이에게 어정쩡한 중간이란 없다. 개처럼 주인에게 무작정 꼬리를 흔들며 충성하지도 않는다. 주인도 일개 집사처럼 대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린 아기 고양이의 귀여움에 먼저 반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시크한 면에 다시 반한다. 영국에 두고 온 둘째 아들 단오가 더욱 보고 싶어 진다. 단오야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하루살이처럼 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