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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17. 2019

세상 물정 참 모르네, 책은 아무나 쓰는 줄 알아!

책을 쓴다니 지나던 소가 웃었다 #1 프롤로그

프롤로그


계절이 변할 때마다 세월도 흘렀다. 그만큼 달갑지 않은 나이테도 훈장처럼 켜켜이 쌓여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책에 대한 짝사랑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소하지만 제법 컸던 꿈은 은근슬쩍 나를 압박해오기 시작하였다. 그 꿈은 다름 아닌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 내보자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평생 한 권이라도 책을 쓴다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올해 초까지는 그랬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었다. 


짝사랑의 운명은 언제나 슬픈 결말로 끝이 난다. 상처라기보다는 그 운명조차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더욱 애잔하고 애달프다. 용기를 가지고 고백을 하지 못한다. 몇 번의 차임을 당하면서도 물고 늘어져서 쟁취했더라면 운명은 바뀔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사랑을 더 이상 짝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단어 앞에서 얼쩡거리던 ”짝“이라는 어설프고 배짱 없는 녀석을 떼어낸 결과는 헤피 엔딩이다. 나의 책 쓰기에 대한 고정관념도 ”짝“이라는 어설프고 배짱 없는 녀석을 달고 살았다. 망신당하느니 짝사랑의 추억이라도 간직해 보자는 자아는 고집스럽게 나를 괴롭혔다. 


”너 따위가 책을 쓰면 소인 나도 쓰겠다. “ 여기에 고양이, 개들도 동참했다. ”웃기고 자빠졌네! 차라리 로또를 사 지그래!!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일이 오히려 더 쉬울걸! 석회가 잔뜩 들어있는 영국 물 오래 먹더니 그 석회로 뇌가 굳은 겨? 아니면 혈관이 막힌 겨? 세상 물정 참 모르네. 책은 아무나 쓰는 줄 알아!!”


2019년 1월 말이었다. 하루 만에 책 쓰기로 그것도 매주 한 권씩 책을 쓴다고 했을 때 정말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생전 글 한 줄 써보지 않은 사람이었고 글쓰기의 기본조차 모르는 사람의 허언 정도로 여겼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정말 글쓰기의 정체도 모른 채 무작정 도전장부터 내밀었던 것이다. 나의 무 대포 정신이 만들어낸 어설픈 시도였다. 그것이 말랑말랑한지, 딱딱한지, 날카로운지 아니면 두리뭉실한 구름 같은 것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칠흑 같은 동굴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하나씩 만져가며 온몸으로 그림 그리듯이 써나갔다. 전위 예술가가 따로 없었다.


태어나서 아무런 글쓰기 수업을 받지 않고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결론은 드디어 나의 사랑에도 ”짝“이라는 어설프고 배짱 없는 녀석을 떼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놀랍게도 하루 만에 책 한 권을 완성한 것이다. 그 책의 질이나 가치를 따지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팔릴만한 책인지 아닌지는 머나먼 남의 나라 일처럼 막연하고 추상적이기까지 하였다. 누추하고 미약하지만 마침내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Dreams come true. 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 월트 디즈니가 한 말로 기억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매주 쓰고 또 쓰게 하였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책이란 전자책을 말한다. 폰트는 아래한글 22에 분량은 150에서 200페이지 정도다. 가끔 200페이지를 넘길 때도 있지만 분량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100페이지가 넘지 않고도 모든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짧고 강렬할수록 독자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좋다고 방영하던 드라마를 종영하지 않고 연장시키면 역효과가 오는 것과 유사하다. 


우연하게 그리고 운 좋게 참여한 책 쓰기 모임은 매달 한 권씩 12개월 동안 12권을 쓰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었다. 한 권을 쓰고 나서 다시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1년 동안 안식년 중인 나에게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백수가 하는 일이라고는 오전에 병원, 오후에는 광화문 교보문고로 출퇴근하는 것이 루틴이었다. 칸트가 오후 2시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을을 산책하는 일처럼 말이다. 직원도 아닌데 마치 직원처럼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출퇴근하였다. 


하지만 그 루틴도 곧 지겨워졌다. 책은 아무리 읽어도 그때뿐이었다. 벌써 20년째 의미 없는 독서는 더욱더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물론 읽을 당시에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지식 획득에 매료되어 종이책에 코를 박고 푹 빠져들고 만다. 재미있는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빠져들고 나서 며칠 후 고개를 들면 그새 무슨 내용인지 절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몇 년쯤 지나면 줄거리도 생각나지 않는다. 독서에 대한 회의를 매번 느끼면서도 그 짓거리를 멈출 수도 없었다. 다른 대안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정말 억세게도 운이 좋았다. 그 막연하기만 하던 대안이 코앞에 현실로 찾아왔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한 달이 아닌 매주로 자연스럽게 설정을 바꾸었다. 내가 처음, 그것도 하루 만에 어렵게 쓴 ”인생의 반은 외국에서 살아봐라“라는 책을 보고 프로젝트 진행자는 나를 만류하였다. 아무래도 그건 무리라는 것이었다. 몸도 여기저기 아픈데 그냥 한 달에 한 권씩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처음 써낸 책은 부실 덩어리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부실공사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부실이라는 단어를 조금씩 희석시켜 나갔다.  


중요한 것은 나의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포기할 때 포기하더라도 매주 한 권씩 써보겠다고 객기를 부렸다. 단순한 오기에서 비롯된 객기는 아니었다. 나 자신도 100%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포기"라는 단어를 은근슬쩍 사용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책 한 권 쓰려면 얼마나 많은 참고문헌과 자료들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거두어들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매주 한 권씩 쓰려면 어떻게든 참고문헌이라는 높고 험한 고정관념의 벽을 넘어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할 확률은 100%에 가까웠다. 고육지책으로 대책도 없이 모든 참고문헌을 배제시켰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 확인 정도만 하였다. 그 또한 틀에 얽매이지 않도록 사전 또는 사후에 이루어졌다. 


참고문헌을 배제시킨 이후 두 번째 쓴 책이 ”결혼, 서약하지 말고 계약하라.“다. 학창 시절부터 동경하던 파격적인 결혼 형태였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와 그의 연인 시몬 느 보바리의 계약 결혼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모든 내용은 내 경험과 생각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내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중간에 막히거나 특별히 어려움 없이 비교적 쉽게 완성하였다. 아침 9시부터 춘천 별 다방에서 시작된 책 쓰기는 저녁 7시에 끝이 났다. 10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퇴고와 오탈자까지 마치자 추가로 2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12시간 만에 바로 판매할 수 있는 책이 한 권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내용도 제법 그럴듯하게 나왔다. 이 책은 또 다른 퇴고 없이 바로 블로그에 올렸다. 물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판매가 시작된 것은 다섯 권쯤 집필했을 때부터였다.   


책을 한 권 쓰고 돌아오는 밤마다 벅찬 희열과 감동이 몰려왔다. 춘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언제나 텅 비어있었다. 조용히 내려앉은 어둠은 적막하지만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감상시켜주려 애쓰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습관처럼 FM을 들었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신났다. 우울증 환자의 얼굴이 이렇게 활기로 넘쳐도 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충만감과 동시에 밀려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즐거운 피로와 광기의 허기였다. 그 허기에는 평생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려주고 있었다.


세 번째 책부터는 아예 블로그에 선포를 하고 쓰기 시작하였다. 블로그 서점에 매주 월요일마다 한 권씩 쓰는 책들을 올리고 판매도 병행하였다. 판매는 주문이 들어오면 PDF 파일로 변환하여 메일로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저러다 말겠지! 하며 냉소적이기까지 하였다. 블로그 서점 판매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괜한 일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무언의 압력들이 세포들을 자극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너 따위가 쓴 책들이 무슨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을 거야! 제발 정신 차려!!“라며 물어오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스스로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라는 강의도 시작하였다. 주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앞만 보고 나아갔다.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목적도 없었다. 책 쓰기라는 일에 하루를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명분은 충분하였다. 그리고 행복하였다. 오히려 다른 이유나 목적이 있었더라면 2월 초부터 10월 둘째 주까지 36주째 36권을 쓰지 못하였을 것이다. 틀림없이 중도에 포기하였을 것이다.   


이제는 그 과정을 블로그뿐만 아니라 카카오 브런치에도 올리고 있고 브런치 북으로도 출간하였다. 종이책 출간은 최대한 늦추고 있다. 내가 출간하고 싶다고 출간할 수도 없다. 출판사의 ”간택“이라는 가문의 영광 없이 여기저기 투고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직 수정 보완해야 할 내용들도 많다. 52주 차를 마치면 정확하게 1년이 된다. 그때는 적극적으로 종이책 출간을 준비할 예정이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나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의미와 가치를 떠나서 세계 최초(?)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도전은 생을 마치기 전날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글이란 쓰면 쓸수록 는다. 소위 말하는 내공이라는 녀석이 쌓인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기대수명은 늘어가는 반면 먹고살아야 할 터전인 일자리는 줄거나 사라지고 있다. 특히 시니어들은 재취업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대한민국을 프랜차이즈 공화국으로 만든 것도 노동의 탄력성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재취업이 너무나도 어려운 장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해고는 곧 가정의 붕괴를 의미했다. 노동자들은 굴뚝이든 어디든 올라가야만 했다. 사정이 좀 나은 퇴직자들도 자발적으로 통닭 튀길 준비부터 해야 할 정도였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우리나라의 헌법 제1조를 개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대한민국은 프랜차이즈 공화국이다.“로 말이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지구 반대편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가족과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가르침을 주신 스쿨몬스터 최규철 대표와 같이 매주 그리고 매월 한 권씩 책을 쓰고 있는 동료 작가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PS: 이 글은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년 10월 14일에 제작된 ebook이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0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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