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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17. 2019

고정관념을 깨느니 차라리 혁명을..

 책을 쓴다니 지나던 소가 웃었다 #2 자기계발중독

지난해 여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런던의 날씨는 매일 환상 그 자체였다. 그 화창한 날들에도 심신이 무너져 내렸다. 내리는 것은 비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무너지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천지 창조의 케이아스나 아마겟돈이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날 줄은 몰랐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임계점과 마주하고 있었다. 변곡점이 필요한 시점에서 똥 싼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평생 없었던 심야토론이 몇 번 이루어졌다. 목소리를 낮추어야 했다. 2층에서는 아이가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의 모든 시계는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내와의 협상은 그리 쉽지 않았다. 결렬이나 타결이냐를 두고 끝장토론처럼 마라톤협상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아내와의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졌다. 아내는 내가 평생 생각지도 못한 안식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살며시 내밀었다. 그 카드의 의미를 따지고 파악할 만큼 나의 심신은 온전하지 못하였다. 옐로카드인지 레드카드인지 반신반의였지만 일단 그 카드를 챙겨서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죽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다. 1년의 안식년은 파업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던 노사의 극적 타결처럼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해 가을이 시작되기 무섭게 짐을 꾸려 런던 히스로 공항으로 향하였다. 30킬로용 대형 이민가방 두 개와 작은 기내용 가방 하나 그리고 노트북용 검은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마중 나온 아내와 아이와의 짧지만 긴 이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별의식은 아내에게 자동차 키를 넘겨주는 것이 전부였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아이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달리듯 검색대로 향했다. 그렇게 피난 나오듯이 런던 히스로 공항에 대기 중이던 영국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1년을 한국에서 보내기 위한 기본적인 옷들만 챙긴 채 급하게 한국으로 날아왔다. 이민 가방 두 는 사계절을 담은 채 영문도 모르고 두리번거리며 나를 따라왔다. 영국의 집으로 다시 돌아갈 날을 기약받지 못한 그 가방들이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가을이 농익고 있었다. 지난해 한국의 가을은 유난히 길었다. 오전에는 병원, 오후에는 교보문고 그리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일이 두어 달 이상 반복되었다. 모두 나의 결핍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병원 치료도, 자기 계발 서적들도, 심지어 친구들을 만나 향수병을 달래는 일도 무의미해지기 시작하였다. 나의 안식년은 허울 좋은 말 뿐이었다. 휴식도, 치료도, 공부도, 일도 아닌 잡탕밥 같은 하루들이었다. 하루라는 매일은 그렇게 의미를 상실한 채 오고 머물다 사라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연말연시가 되면서 친구들마저도 연락이 뜸해졌다.    

  

20년 만에 맞이하는 한국의 겨울은 내게는 혹독하였다. 비록 눈은 몇 차례 오지 않았고 비교적 포근했다고 하는 겨울이었다. 친구와 병원의 빈도수가 줄어드는 대신 교보문고로 출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 종일 자기 계발 서적들 위주로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모두 그 사람들의 사적인 이야기일 뿐이었다. 방법을 몰라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은 점점 굳어져갔다. 그리고 자기 계발 서적들을 끊었다. 금단 현상이 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소설을 비롯하여 읽을거리가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갓 구운 빵처럼 방금 나온 종이책들을 대하는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인쇄술이 발전해서인지 잉크 냄새는 나지 않았다. 반면, 풋풋하고 나무 향이 나는 펄프의 원재료를 만지며 간지럽히듯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곤 하였다. 의미를 살포시 보듬고 있는 활자들이 망막과 시신경을 통과해 뇌를 거쳐 가슴으로 내려갈 때의 충만감은 강렬하였다. 상당히 유통기한이 지난 오래된 책들만 상대해야 하는 영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모국어 한글만이 주는 특별함이었고 동질감이었다.     


2018과 2019라는 숫자 사이에 내가 빠져서 익사할 뻔한 일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해가 바뀌기 직전에 A형 독감에 걸리면서 1주일가량을 거의 혼수상태로 원룸이라는 골방에서 혼자 지내야 했다. 이러다 죽으면 누가 나를 찾아올까?라는 생각은 차라리 현실적이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고립으로 인한 지독한 외로움 그 자체였다. 자발적 격리치료라고는 하지만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그 1주일은 평생 잊을 수가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보상으로 “깊은 사색“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 사색은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별로의 여행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 여행에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였다. 지난한 세월이 수차례 타이르듯이 알려주었던 사실이다. 세월은 뭐라도 해보자로 선회시켜 주고 있었다. 마치 자율주행이나 자동항법장치처럼 나의 항로를 바꾸어주기 시작하였다.
    

그 깊은 사색은 나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죽이고 새로 태어나는 일이었다. 컴퓨터를 초기화하는 리셋 과정이 나에게도 절실하였다. 몸이 좀 회복되면서 동내 내과에서 매일 맞던 영양주사도 끊고 다시 바깥출입을 시작하였다. 그 바깥은 더 이상 광화문의 교보문고로 국한되지 않았다. 나를 통째로 변화시킬만한 곳을 두더지처럼 후각으로 더듬거리며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두더지의 후각에 걸려드는 곳은 주로 비즈니스와 관련된 강의와 모임이었다. 그 와중에도 책 쓰기 교실 따위는 두더지의 예리한 후각의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았다.  

    

1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그동안 교보에서 읽은 자기 계발 서적들을 정리한 노트를 들쳐보다가 무자본 창업과 해적들의 창업 이야기란 두 권의 책이 생각이 났다. 연말에 읽고 연락처를 메모해 두었다.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회사였다. 그 영업사원 역할을 책이 하고 있었다. 나처럼 책을 읽고 멤버십에 가입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나는 그날 바로 멤버십 결제를 하였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백만 원이 넘는 멤버십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그곳에서 개최하는 강의들을 들으러 갔다. 강의를 듣다가 얼떨결에 하루 만에 책 쓰기 강의를 들었고 또다시 책 쓰기 멤버십에 가입하였다. 백만 원이 약간 넘는 돈이었지만 속는 셈 치고 두 개의 멤버십에 가입한 것이다. 그 돈이 아깝다고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절박감은 나를 리셋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귀처럼 달려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무자본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먼저 매료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사업은 무자본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 안타까웠다. 이미 많은 돈을 날렸고 그 보상은 아픔과 상처만을 가득 남겨주었다. 사업 아이템이 넘쳐났지만 나는 돈에는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사랑보다 더 가혹하고 무자비한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이 돈이었다. 평소엔 모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본색을 드러내었다. 평소엔 사랑처럼 달콤하고 다정하지만  일단 수가 틀리면 고양이 발톱보다 더 날카로운 생체기를 남기고 자신도 사라져 가는 것이 돈이었다.     


자기 계발 서적 중독에서 빠져나오면서 그 대안으로 찾은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무자본 창업 관련 강의를 들으려고 갔다가 하루 만에 책 쓰기 강의를 반 강제적으로 듣게 되었다. 2시간의 강의 내내 설득당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별의별 사기가 난무한다는 한국,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 버텨보았다. 하지만 그 강의는 이론적으로 완벽 그 자체였다. 강의에서 제시한 이론처럼만 된다면 이보다 멋진 일은 없어 보였다. 결국은 설득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해서 책을 쓰고 내가 그 강의를 시작하게 된 것은 나의 절박함 때문이었다. 같이 강의를 들었던 두 사람은 아직도 아무런 변화 없이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블로그 친구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소식을 접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취미나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것이었다면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시작하였어도 금방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그렇게 우연하게 시작되었다. 그것도 반 강제적으로 말이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기란 혁명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이 들수록 점점 심해지는 현상이다. 언젠가는 상대성 이론도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의 유연성이 없다면 세상은 더 이상 진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PS: 이 글은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년 10월 14일에 제작된 ebook이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0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강의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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