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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18. 2019

과연 독서가 영국의 저력이었을까?

책을 쓴다니 지나던 소가 웃었다 #5 독서의 허상

책을 읽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워 보였다. 특히, 좁고 혼잡한 런던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멋지다 못해 근사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누렇게 뜬 낡은 책을 읽는 신사의 모습은 그 유명한 버버리 코트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10년도 훨씬 넘어 보이는 책과 코트는 그 신사를 더욱 근사하게 만들고 있었다. 군 전역 후 영국 어학연수 때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영국인들의 책 읽는 모습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그들의 독서에 대한 열정이 부러웠다. 물론 지금은 SNS의 발달로 지하철 내의 그림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두툼한 책을 읽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한때는 그 모습들이 바로 영국의 저력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까지도 했던 적이 있었다. 이젠 그들도 휴대폰이나 킨들로 책을 읽는다. 하지만 종이책을 읽는 모습은 언제 봐도 깊은 울림을 준다. 평온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모습은 나에게는 무언의 압박이었고 압력이었다. 제발 책 좀 읽으라는.....,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들을 읽고 싶었다. 독서를 통한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가 되고 싶은 것은 나의 오랜 바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실제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였다. 낮에는 생업이 있기 때문에 주로 휴일이나 밤에 읽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이 읽은 것도 아니었다. 나의 독서는 늘 어정쩡하였고 뭔가 부족하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듯이 좋아하는 책만 골라 읽었다. 심지어 10번 이상을 읽은 책도 있었다. 거의 해마다 연말이면 모든 독서를 중단하고 삼국지를 읽었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처럼 말이다. 누렇게 뜬 삼국지는 많은 지혜와 혜안을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해마다 읽어도 낯선 대목이 더 많았다. 최소 10번쯤 읽었다면 외울 정도는 아니어도 그다음 장면들이 바로 연상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결정적인 순간의 장면들뿐이었다.      


독서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10번 읽은 것보다 한번 필사를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사라는 방식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남의 생각을 읽는 것도 모자라 노트에 적고 외운다는 일은 부도덕한 일쯤으로 생각되었다. 필사가 문장력을 높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필사를 택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나 따위가 어떻게 책을 써 “라는 생각이 강하였다. 내가 평생 책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며 오로지 독서에만 의지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안식년을 맞이하여 한국에 와서 본격적인 인생의 독서가 시작되었다. 불행하게도 그 좋던 시력에는 일찍도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오래전부터 노안이 와서 돋보기에 의지한 독서는 쉽지 않았다. 10분 읽고 1분 쉬는 악조건 속에서도 매일 읽고 또 읽었다. 자기 계발 서적들부터 인문서적들과 심지어 철학책에도 손을 댔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 알량하고 잡다한 지식들은 선술집의 막걸리 잔 주위에서나 맴돌 뿐이었다. 심지어 지인이나 친구들은 그런 책 따위에 관심조차 없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수원의 친구와는 책에 관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경청하는 입장이었다. 그 친구의 독서량은 상상을 초월하였기 때문이었다. 책을 한 권 읽어도 제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친구였다. 물론 국문학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마저도 나에게 위안이 되지 못하였다. 그 친구는 오랫동안 절필을 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글은 쓰레기처럼 대하면서 독서에만 매달렸다.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몸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데 죽을 때까지 독서만 한다고 생각하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평범하다 못해 지질한 나 따위의 사람에게도 나를 알릴 방법이 필요하였다. 글을 쓰려고 돌이켜볼 때마다 나의 이민생활조차 지극히 평범한 삶이었다. 정확히 10년 전에 만들어놓은 블로그에는 런던 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정말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쓴 글들을 타인들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손가락은 쥐포나 오징어가 구워질 때처럼 오그라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나의 삶이 평범한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식당일이 전부였다. 심지어 흔한 미국이나 호주도 아닌 영국 이민생활조차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조립당하는 자동차 신세와 다르지 않았다. 평범하고 개성 없는 삶이  나의 손가락들을 결박했다. 그 결과는 아프고 참담하였다. 10년 동안이나 나의 블로그는 동면을 취해야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독서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위기감은 나를 더욱 옥죄어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죽기 전에 뭐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것이 거창한 묘비명이나 건물 따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였다. 나의 지적 허영심을 달래줄 그 무엇은 나의 내면을 송두리째 까발려서 빨래 줄에 널어줄 것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내 이름으로 된 책이라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내면을 지배하는 화두는 “나 따위가 감히 어떻게 책을 써 “라는 자학적이기까지 한 지극히 피해망상적인 생각이었다. 교보문고에 갈 때마다 느낀 점은 ”저 많은 책을 누가 다 썼을까? “ 와 ”저 많은 책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질까? “였다. 내 생각에 최소 70% 이상은 도서검색용 컴퓨터가 아니면 찾아볼 수 도 없는 위치에 있었다. 심지어 몇몇 책들은 직원들도 사다리를 놓고 찾아내야 할 정도였다. 심지어 글을 쓰고 책을 쓴다는 것은 아마존의 살림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나마 전자책은 사정이 나았다. 그래서 전자책부터 써 보기로 하였지만 이도 마음뿐이었다. 여전히 나의 손가락들은 자판 위로만 올라가면 불 위의 쥐포나 오징어처럼 그렇게 오그라들었고 있었다. 그러다 운명처럼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가 나를 살려주었다. 1년의 허울 좋은 안식년이라는 늪에서 나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온몸은 이미 진흙탕에 빠져들었고 머리만 겨우 내민 채 위태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PS: 이 글은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쓴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년 10월 14일에 제작된 ebook이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0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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