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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26. 2019

제기랄! 일보다 휴식이 더 어렵네..

안식년 맞아? 그러다 과로사해 #3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라는 말이 있다. 1년 동안 쉬면서 가장 피부에 와 닿았던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오랫동안 쉬어본 일이 없었다. 학생 시절에는 의미를 상실한 공부로,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는 취업으로, 퇴사 직후에는 곧바로 이민을 떠났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머뭇거려 본 적이 없었다. 앞이 어딘 줄도 모르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 이유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으면 삶의 낙오자가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 나 자신을 던져야 마음이 편안했다. 남들처럼 살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살다 보니 남들처럼 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민생활이라고 특별한 것도 대단한 일도 아니다. 애당초 이민을 이사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사람 사는 일은 나라가 바뀌어도 그리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은 어학연수를 통해 배웠다.      


일속에 묻혀 살면서도 왜 일을 해야 하는지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은 그만큼 맹목적이고 본능적인 인간 본연의 의식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인간의 몸은 자동차처럼 파트에 문제가 생겨도 소모품으로 대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면서 일에 함몰되었던 자신을 꺼내지 않으면 친구 제임스처럼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곤 하였다.      


오직 쉬면서 치료하는 일 외에는 특별히 고를만한 선택지가 없었다. 그 선택지가 바로 1년이라는 안식년이었다.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문제는 그 선물이 결코 선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혹독한 유배였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유배자의 삶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해배라는 희망하나였을 것이다. 해배가 되면 아내와 임금 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조차도 고문이었고 사치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몇 달이면 충분하였다.      



1년 동안의 안식년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노동의 가치와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동시에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고 압박을 하였다. 때로는 심한 발길질을 해대었다. 그 발길질은 매서웠고 피할 수조차 없었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다. 20년 전에 영국으로 이민을 가서 가장 먼저 밀려온 것은 외로움도 그리움도 아니었다. 바로 퇴사에 대한 후회였다. 그 편하고 안락함을 걷어찬 대가가 너무 혹독하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이민자가 경험하듯이 이민 생활 초창기에는 몸을 쓰는 노동일을 하게 된다. 나처럼 거의 무일푼으로 이민을 간 경우는 그 노동의 강도가 셀 수밖에 없었다. 설사 돈을 어느 정도 싸들고 와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돈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개 코 원숭이들이 즐비하다. 돈 냄새가 나는 사람 주위에는 항상 파리들이 끊이지 않고 들러붙는다. 파리가 진한 비린내를 뿜어내는 생선을 본 이상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은 그 파리들은 생선의 몸에 빨대를 꼽고 그 돈을 다 빼내간다.     


화이트칼라에서 블루칼라가 되는 일은 나 자신이 선택한 옵션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혈기 왕성한 젊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택시운전부터 이삿짐센터는 물론이고 온갖 몸을 쓰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마다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나의 학력이나 경력들은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이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들만도 못한 입장이었다. 그들은 영어라도 완벽하게 하였다. 그래서 한인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과거 지향적 언어들이 난무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왕년에 한국에서로 시작하는 그 말의 귀결은 항상 같았다. 결국 잘 나갔는데 영국에서 이러고 있다는 하소연이었고 항변이었다. 그러니 자신을 무시할 생각은 애당초 할 생각도 말라는 일종의 방어막이자 경고였다. 20년을 살아도 한인 친구가 거의 없는 이유였다. 이민 사회는 인정이 넘치거나 서로를 위하고 감싸주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좁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삶이 주는 또 다른 애환이었다. 한인 타운은 바로 우리네 집성촌이었던 것이다.     


1년간의 휴식은 노동의 가치를 다시 정립시켜 주었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반복되고 지루하다 못해 평범하기까지 한 그 일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일이 주는 의미는 그 어떤 가치보다 상위 개념이었다. 본업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사람의 영혼을 살찌울 수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다가왔다.      


여행의 의미도 바뀌었다. 1년 동안의 긴 휴식시간에 많은 나라의 여행을 꿈꾸었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은 물론 몽골의 고비사막과 시베리아 횡단까지도 계획하였다. 하지만 겨우 동해 한 번과 남도 서너 번이 전부였다. 심지어 제주도도 가보지 못하였다. 바쁜 직장인들은 시간을 쪼개고 연휴를 활용하여 알차게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물론 나도 영국에서는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본업에서 한발 물러나 안식년을 보내면서 여행 자체에 의미가 사라져 갔다. 어디를 가도 감흥이 없었다. 미각이라는 맛만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각도 무뎌지고 감정도 무덤덤해져가고 있었다. 일이 필요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삶의 리듬을 타고 싶었다. 단순 반복되는 그 리듬이 그리워졌다.     


어떤 일이라도 상관없었다. 취미생활부터 다시 시작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은 고통이었다. 그 고통에는 꿈에 그리던 독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1년 동안 독서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영국을 떠나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독서조차도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독서도 결국은 일이 아닌 취미생활이었다.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면 일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놀이처럼 즐겁고 돈도 되는 일거리를 찾아내야만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점점 더 깊은 유배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했다. 돈이 먼저는 아니었다. 일이 먼저였다. 그리고 그 일은 해가 바뀌면서 숙명처럼 찾아왔다.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 좋아하는 단어가 아닌 운명은 노크도 없이 은밀하게 찾아왔고 그 운명의 치마 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던 것이다.           

                                                                               



우리 삶에는 항상 머피라는 녀석이 들어있는 듯하다. 본업에 충실하며 정신없이 돈을 벌 때에는 시간이 없다. 심지어 돈 쓸 시간도 없다. 여행 한번 가려면 큰 맘먹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본업에서 한발 짝 물러나니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잉여의 시간들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많으니 돈을 쓸 일뿐이다. 세상에 이렇게 돈 쓸 일이 많은지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백수로 지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움직이면 모든 것이 돈이었다. 시간의 잉여는 소비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으면 언제나 돈이 없거나 부족하게 된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 사람이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생각되자 그들이 갑자기 부러워졌다. 심지어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 그 쉬운 여행도 다닐 수가 없다. 기본적인 생활비는 물론이고 병원비까지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몇 천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무하다 못해 나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였다. 미니멀리즘을 실행하며 살아도 한국에서의 서민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고달픔을 이미 넘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머피의 법칙 속에 갇혀서 어정쩡한 날들이 아깝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도 자유도 살아가는 공간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처음 접한 한국의 원룸이라는 공간은 마치 구치소처럼 느껴졌다. 그 구치소에서 1주일을 꼼짝도 하지 않고 지내던 일도 있었다. 북으로 난 작은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오는 일은 결코 없었다. 한국의 겨울은 영국과 달라서 혹독하게 추워도 해가 났다. 창문으로 한 줌의 해라도 들어온다면 그나마 살 것 같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의 짧은 해는 방안을 단 한 번도 서성이지 못하였다. 밖으로 나가서 그 햇볕을 즐기기에는 너무 추웠다. 서향으로 난 여동생의 집에 가는 이유도 바로 햇살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남향보다 해가 들어오는 시간은 짧았지만 오후의 햇살을 받아내기에는 서향이 더 좋았다. 그 햇살만 받아도 살 것 같았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카페는 최악의 장소였다.      


유배 생활로 1년을 꽉 채울 수는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반전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 자신이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사는 이유조차 분명하지 못하였다. 막연하게 일을 하고 그 일속에서 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 일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그 보람은 결국은 돈 때문이었다. 돈과 시간을 물물 교환하면서 희생되어가는 시간이 애처로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임스의 죽음 이후부터는 돈을 걷어내고 그 속에 갇혀있는 시간을 꺼내 들고 싶어 졌다. 그 시간들에도 숨구멍들이 있었지만 거의 막혀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호흡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숨구멍들에 막혀 있는 것은 비단 산소만은 아니었다. 나의 꿈 자체가 그 숨구멍에 걸려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꿈은 실체가 없는 막연한 것이었다. 그 꿈을 찾아내고 싶어 졌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나에 대한 탐구가 먼저 시작된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험난하였다. 내가 누구일까?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언제쯤 삶을 정리하고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날까? 꿈인지 망상인지조차 모른 채 내면으로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자기와의 대화에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북으로 난 창문이 달린 구치소에서 몇 년 복역하다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었고 그 구치소에서도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하였다. 마치 아기 고양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자기 영역을 넓혀가듯이 말이다. 고양이는 일단 자기 영역이라고 표시하면 누구의 침범에도 단호하게 응징하려 든다. 나도 고양이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나의 영역을 최대한 넓혀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영역에 침입자가 나타나면 일전을 불사할 태세였다. 그만큼 우울과 광기에 쌓여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의 영역에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영역은 고사하고 나 자신조차 세상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존감이 바닥인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에 잠시 머물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었다. 제임스처럼 말이다. 그래도 제임스는 재산이라도 남겨놓고 사라져 갔다.      


나 자신을 알지도 못한 채 의미를 상실한 휴식은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노동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은 입맛도 유지시켜 주면서 꿀잠이라도 잘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무엇일까? 머리를 밀고 출가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만학도로 신학대라도 입학해서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혼란스럽던 차에 나 자신을 아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였고 운이 좋았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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