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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27. 2019

골드 레벨 카페 기생충은 오늘도 쓴다!

안식년 맞아? 그러다 과로사해 #4

 

지난해 연말이었다. 해가 바뀌기 직전까지도 나에게 불행이라는 녀석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질기고 포기를 모르는 녀석을 따돌리려면 빨리 해가 바뀌어야만 했다. 사주팔자나 운세를 믿어서가 아니다. 2년 정도나 나를 괴롭혔으면 충분하다는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설마 3년째까지도 괴롭힌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비인간적이지 않는가!      


하지만 질병이라는 녀석들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실제로 죽음이라는 실체와 조우할 뻔하였다. A형 독감을 경험하면서 제임스가 떠오르곤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오매불망 바라던 죽음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질병으로 시달리던 몸에 면역력도 최악으로 떨어져 있었다. 거기에 침투한 A형 독감은 나의 온몸을 고열로 녹여버릴 듯 밤새 나를 괴롭혔다.   

   

A형 독감이 찾아온 것은 크리스마스이브의 늦은 저녁이었다. 세상은 성탄 전야를 자축하고 있었다. 한가롭고 조금은 쓸쓸한 저녁이었다. 두고 온 영국의 집 생각이 났지만 그뿐이었다.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 원룸이라는 좁고 아담한 집에서 혼자 이브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가혹한 신은 그마저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노크도 기별도 없이 불쑥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왔다. 잘 포장된 상자에는 A형 독감이라는 생전 처음 접하는 선물이 들어있었다. 낮부터 열이 나면서 단순한 감기몸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감기몸살 치고는 열이 심하게 올라갔다. 심지어 헛것이 보이면서 검은색의 두루마기에 갓을 쓴 사람이 아른거렸다. 저승사자의 구 버전이었다. 신 버전은 검은 정장에 검은색 넥타이였을 것이다. 동트기 무섭게 구급차를 불렀고 인근의 한양대 구리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 응급실에는 환자들이 넘쳐났다. 앉을자리도 없어서 서서 대기하였다. 물론 간호사가 내미는 연한 파란색의 환자용 마스크를 쓴 채 말이다. 환자들은 한 사람씩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병원 전체가 휴무였고 응급실만 겨우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대여섯 명씩 한꺼번에 확인을 하고 검사를 하였다. 그 검사가 이루어지면 다시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 했다. 의사의 진료와 확진 판정도 복도에서 대여섯 명 단위로 이루어졌다.      


우리 조 차례가 왔다. 모두 음성이었고 나만 양성이라고 하였다. 뛸 듯이 기뻤다. 다행히 A형 독감이라는 무서운 녀석은 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젊은 당직의사는 한마디 했다.     


”양성 판정받은 분은 주사실로 이동해 주세요. 양성은 A형 독감에 감염되었다는 의미예요. 나머지 분들은 수납하시고 귀가하셔도 됩니다.”     


“밤새 고열에 시달려서일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대기실에서 임시 커튼을 치고 운영되는 주사실로 갔다. 그리고 엉덩이를 까 벌렸다. 그렇게 서서 주사를 맞고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섰다. 지하식당에서는 크리스마스 예배와 함께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약을 받고 병원을 나서면서 알 수 없는 설움이 몰려들고 있었다. 울고 싶었지만 오늘 이 순간을 꼭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실컷 울던가 아니면 이를 악물어야 했다. 물론 후자를 택하였다. 순간 아들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항상 아들에게 아빠가 해 준말은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이었다. 나는 그렇게 꼰대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언제 어디에서든 항상 강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가장이고 멋진 아빠가 되는 길이다.”      


아무리 주위를 서성거려도 내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휴대폰의 카톡과 휴대폰 번호들을 체크하고 또 체크하였지만 연락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도 가족도 의미를 상실한 채 지구 상에 나 혼자만 남겨져 있었다. 나의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한 척하며 살아온 남자의 최후를 보는 듯하였다. 우울이라는 먹구름이 물밀듯 밀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눈을 맞으며 터벅터벅 북향으로 창이 난 구치소로 향하는 나의 오른손에는 약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왼손은 주머니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며칠 후, 구치소 같은 원룸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였다. 그렇다고 북향으로 햇살이 들어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1주일 정도의 사투 끝에 외출을 시작하였다. 여전히 찾아오는 이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근처의 여동생이 미역국을 한 솥 끓여서 가져다주었다. 문 앞에 다른 반찬과 함께 놓고 도망치듯 갔다. 물론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화를 걸어주었다. 문을 열고 내다보라는 것이다. 여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여동생은 큰 소리로 억지로라도 먹으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여동생의 목소리는 휴대폰과 복도를 통해 동시에 밀려왔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찾아온 느낌이었다. 무 대포인 여동생도 두려워할 만큼 A형 독감은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었다.      


몸이 좀 회복되자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강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졌다. 그 일은 반드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과의 대화가 가능해야만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글을 쓸 수 있는 모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일이 나에게도 가능하다는 것을 하루 동안 온몸으로 체험하였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그렇게 해서 책 쓰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나의 안식년 프로젝트는 유배에서 해배되어 아내나 임금님보다 더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쓰면서 많은 독자들과 교감하고 강의를 하면서 많은 수강생들과 친구가 되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북쪽으로 창이 난 교정시설 역할을 하던 구치소는 다시 본래의 주거 기능인 원룸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전히 창문 주위로 햇살은 기웃거리지 않았다. 이제는 오지 않는 친구들 전화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가족의 연락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인간은 철저하게 혼자 왔다가 혼자 가야 하는 것이다. 운명을 거슬러가며 과거의 인연에 집착하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드디어 내려놓은 것이다. 모든 것은 아니었지만 양쪽 어깨를 짓누르던 짐들이었다. 친구도 가족도 의미를 상실한 채 나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로 인한 좌절과 절망은 우울로 발전하여 나에게 끊임없이 좌우 연타를 날려댔지만 쓰러질 수 없었다. 비틀거리며 견디다가 결국은 수건을 집어던진 것이다. 그 수건은 기권이나 항복을 의미한다. 나의 수건도 그랬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은 항복이나 기권을 넘어서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숭고한 의식이었다.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수건을 던지고 난 삶은 단순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글“이라는 매개체였다. 눈으로만 읽던 남의 글들이 주는 상실도 내려놓았다. 나의 손가락들을 이용해 자판을 두드리면서 나는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글 한 줄 못쓰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다. 좌절이나 절망 그리고 우울 따위는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것 따위들을 붙들고 씨름하던 시간들이 불편해지고 아까워지기 시작하였다.      


왜 이렇게 완벽한 자기와의 대화 방법을 모르고 있었을까? 왜 그 많은 작가들은 엉뚱한 문법들과 좋은 글쓰기만 가르치고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일단 쓰게 하는 것이었다. 마라톤 선수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체육학 이론들을 먼저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론들을 마스터한 후에야 운동화를 사주고 달리기를 연습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마라톤 선수는 일단 달려보는 것이다. 100미터부터 달려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1킬로미터, 5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다. 그 거리는 스스로 줄이거나 늘리면 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운동화 한 켤레였다. 심지어 유니폼이나 운동복도 필요 없었다. 오늘도 매일 쓰고 또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의 치열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의 발견 때문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철저하게 자신과의 대화 그 자체에서만 가능하다. 단순한 생각의 나열은 글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다. 물론 일기도 글쓰기의 한 방법이기는 하다.      


하루 종일 몰입해서 책을 한 권씩 써나가면서 아팠던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하였다. 그 마음은 많은 관계로부터 공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아내조차 무자비하게 나를 쪼아댔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조차 무의미해질 정도로 상실된 것은 단순한 상실 이상이었다. 그래서 내려놓았다. 내려놓고 싶어서가 아니라 짊어지고 가기에는 그 등에 진 짐들이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마음이 치유된다는 의미는 힐링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마침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 결과는 더욱더 글쓰기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마치 마약에 중독되듯이 나는 글쓰기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 중독의 결과는 나를 더욱더 바쁘게 하고 있다. 나에게는 하루가 금쪽같고 한 시간이 다이아몬드보다 더 소중하다. 한 시간이면 꽤 많은 분량의 글을 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카페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된 지 오래다. 카페 측에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매일 가서 커피와 간단한 먹거리를 팔아주기 때문에 골드 회원이라고 대우까지 해준다. 카페 기생충에게 골드 레벨 회원이라니! 그렇게 카페에서 하루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혼자라면 눈치가 보일 텐데 다행히도 나 같은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 사람들의 눈에도 나는 좀 특이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어떻게 하루 종일 앉아서 자판을 두드려댈까?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좀 이상할 정도이기는 하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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