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날려준 인생 족발!

장애인들이 쌈 싸 먹는 일을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다.

by 런던남자


가을 가을 한 가을이었다. 청명하다 못해 눈이 부신 가을날의 토요일 오후는 도로를 차들로 가득 메우게 강요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가을 행사들로 분주하였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계절이 농익어가고 있었다. 시골에서 술이 익어가듯이 진한 향을 발산하는 계절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그득하였다. 도로를 메운 차들도 마치 사람인 양 들떠서 가을을 가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모두가 가을이라는 계절을 붙들고 주말을 불태우려고 작정한 듯한 오후는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일요일이 떠받들고 있는 토요일 오후여서일 것이다. 숨 고르기가 끝나면 단풍이 떨어지기도 전에 추위가 들이닥칠 것이다. 그래서 마음들이 분주해지는지도 모른다. 분주한 마음들은 시간을 붙들고 단풍 하나라도 억새 하나라도 더 가슴에 담아두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계절이 너무 빠르게 바뀌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 봄과 가을은 방심할 틈이 없다는 사실을 주입시켜 주고 있다. 계절마저도 주입식으로 가르치려 들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봄과 가을은 여름과 겨울에 밀리고 말기 때문이다. 봄과 가을은 나그네처럼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마당을 서성이다 쫓겨나고 만다.




지난주 토요일은 일산 벧엘의 집 봉사를 재개한 지 1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었다. 아쉽게도 10월 셋째 주 토요일은 다들 바빠서 참가인원이 역부족이었다. 참가 신청을 한 회원은 나와 유실이 달랑 2명이었다. SOS를 쳐서 겨우겨우 4명을 만들었다. 아우라지와 마루치가 구원투수로 몸도 풀지 못하고 급히 등판하였다. 지난달에는 10명 이상이 참가하였는데 ㅠㅠ 화창하고 청아한 가을날에 아이들 데리고 가족 나들이 가느라 다들 분주하였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 회원들이어서 어쩔 수 없다. 20대 초반의 앳된 처녀총각들이 어느새 40줄에 들어선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가장 간단한 메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메뉴는 바로 족발이었다. 역시 주부 9단의 내공을 가진 통이 큰 유실이다. 사실 봉사활동 참여 인원 부족으로 다른 요리를 선택할 옵션이 마땅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유실이 미리 주문한 족발을 저녁식사로 쌈과 함께 제공하였다. 좋은 일에 쓴다고 해서 족발을 넉넉하게 주신 사장님께도 감사전화를 드렸다. 역시 유실아짐이다.




드디어 준비가 되고 배식 시간이 되었다. 족발은 신의 한 수였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다들 너무들 맛있게 먹어주셨다. 이분들이 상추에 쌈을 사서 드시는 일을 번거롭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은 편견이었다. 족발을 쌈에 싸서 드시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1주일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조리장님 말씀에 또 한 가지 사실을 배웠다. 이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가 고기를 상추에 쌈 싸 먹는 일이라는 것이다. 상추 위에 고기를 놓고 마늘도 한점 올리고 쌈장 듬뿍 찍어서 쌈을 싸서 먹는 즐거움을 다들 즐기고 있었다. 물론 현철 씨처럼 장애가 심한 분들은 족발을 잘게 잘라서 드려야 한다. 쌈을 싸 먹을 수 있는 분들은 그래도 장애 정도가 중증이 아닌 분들이다. 다음 달에는 유실이와 상의해서 삼겹살을 준비해서 상추와 깻잎을 싸서 드실 수 있게 할 생각이다. 우리도 준비하면서 족발 맛을 본다는 것이 그만 배부를 정도로 먹고 있었다. 내가 먹어본 족발 중 인생 족발이었다. 족발은 역시 뼈를 발라먹어야 제맛이 난다.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는 족발은 처음이다. 거기에 멸치로 진한 육수를 우려내 만든 배추 된장국은 족발로 이미 채워진 배를 다시 공략하게 만들고 있었다. 배추 된장국에 잡곡밥을 말아 두 그릇을 후다닥 먹어치웠다. 족발 먹은 기운으로 마루치와 오랜만에 식당 대청소도 하였다. 대청소를 할 때는 마음의 찌든 때까지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쓸고 닦으면서 눈에 익은 커다란 항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네 명이서 겨우 봉사를 마치고 인근 단골 카페에서 1주년을 기념하는 여유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20년 전의 원년 멤버 넷이 다 모였다. 다들 20년 전의 추억을 더듬느라 어색하면서도 즐거웠다. 그땐 그랬었지라는 말들은 막연하였지만 제법 구체적이었다. 빛바랜 추억이 다시 빛을 발하게 하는 힘은 역시 변하지 않는 우리의 심성들이었다. 소외된 곳을 돌아보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족한 일이다. 그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또 다른 힘을 보여주곤 한다. 가족 나들이나 행사로 참여하지 못한 회원들이 많아서 아쉬웠다. 한 달에 한번 얼굴을 보는 기쁨도 소소하지만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들조차 그리워지는 것도 봉사활동이 주는 연대감에서 나오는 기쁨이었다. 그만큼 우리는 오랜 세월을 공유하며 나이 대신 추억을 먹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20년을 추억하게 하는 쌀독에는 쌀이 절반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며칠 후에는 다시 쌀독을 채워 그득하게 할 것이다. 식당 창가에 자리하고 있는 쌀독 항아리는 역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쌀독이 지금도 세월을 받들고 쌀독 본연의 임무수행을 하고 있었다.




20년 전의 현철 씨가 지금도 나를 보고 미소조차 짓지 못하는 슬픔은 쌀독만이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멋진 휠체어가 현철 씨를 태우고 빛을 내고 있었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아름다웠던 토요일 저녁이다. 사람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지만 추억만은 그것을 견디고 있었다. 넉넉하게 커다란 쌀독 항아리처럼 말이다. 20년 전 가을에도 호박들이 쌓여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랬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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