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 집 봉사활동에서 단둘이서 35인분의 저녁을 준비하다.
벧엘의 집 봉사를 재개한 지 1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에도 단풍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우리와 그들의 한 달이라는 시간은 같은 듯 달랐고 다른 듯 닮아 있었다.
"해투님 언제쯤 도착하나요! 응 5초 후에.."
쉬워 보여도 내공이 필요한 콩나물 국과 제육볶음
행복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다. 그 행복 때문에 봉사를 온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입꼬리 한번 올리겠는가!
때가 되어 이파리를 내주는 단풍나무와 황태 덕장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시래기도 행복을 내주고 있었다. 행복은 땅에도 떨어져 있었고 허공에도 걸려 있었다.
브런치 대상에 응모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빨래처럼 두줄로 널려 있는 시래기를 봐도 행복하였다. 저 무청들의 푸름이 머지않아 색을 버리면 맛있는 먹거리로 변신할 것이다. 한국의 늦가을을 저 시래기들이 알려주고 있었다. 대관령 용대리의 황태 덕장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는 시래기 곁의 작은 은행나무는 잎을 벌써 반이나 내주고 동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가느다란 햇살이 은행나무 곁까지 뻗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내준다는 의미는 내가 성장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단순한 사실을 자연이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을 내줄 수도 있고 여름을 같이했던 이파리를 내줄 수도 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었을까?
브런치 대상 응모 24시간 전에 15편의 글을 올리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의 사투가 떠올랐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 천하의 고양이도 동시에 2마리의 쥐를 잡을 수 없다. 한 마리 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마리다 놓치고 만다. 고양이도 치타도 사자나 호랑이도 아는 이치를 우리 인간만 모른다. 얻기 위해서 포기할 줄 안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따듯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다음날인 일요일에 15편 분량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 동네 별다방은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다. 14시간을 별다방에서 사투를 벌였지만 마무리는 하지 못하였다. 집으로 달려갔다. 자정까지는 채 2시간도 남지 않았다. 다행히 점심을 늦게 먹어서 배고픈 줄도 몰랐다. 다시 집에서 시작된 사투 끝에 15편을 다 올렸다. 시계를 보니 마감시간 30분 전인 2019년 11월 17일 일요일 23시 30분이었다. 30분 안에 브런치 북을 완성하고 소개글까지 써야 한다. 다행히 15분 만에 끝이 났다. 매주 하루 만에 한 권 책 쓰기의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몰입과 집중력은 나를 아무도 환자로 보지 않을 정도이다. 23시 45분에 응모 완료 버튼을 누른 다음 그대로 쓰러졌다. 마감 15분 전이었다.
나는 매일 엉덩이로 글을 쓴다.
그러한 사투 끝에 나의 마지막 브런치 북은 완성되었다. 그 브런치 북이 미스터리 3, 영국, 너 잠 깐 만이다. 미스터리 1은 런던, 전생의 고향이다. 미스터리 2는, 런던 고향이 되기까지다. 1, 2편은 이미 응모를 해둔 상태였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3권의 15편을 그렇게 사투 끝에 올린 것이다. 이제는 몰입의 힘을 믿기 때문에 하루 만에 책 한 권 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15시간의 엉덩이가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물이었다. 나는 글을 손으로 쓰지 않는다. 엉덩이로 쓴다. 그래서 나의 글은 구리고 직설적이다. 구어체의 비문도 많이 사용한다. 주어 동사나 목적어 보어 따위는 따지지 않는다. 사용하지 말라는 접속사는 많이 사용한다. 형용사도 장난 아니다. 3권의 책에서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의 핵심은 "권력"이었다. 예상대로 조회수가 엄청났다. 어떤 글은 이틀도 안되어 15만 명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그 글 중 하나는 순식간에 조회수 15만 명을 기록하였다. 제목은 "런던에서 만난 한국의 국가대표급 진상들"이었다.
내주면 반드시 돌려받는다는 사실을 브런치가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