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대상 응모 후기와 봉사활동

벧엘의 집 봉사활동에서 단둘이서 35인분의 저녁을 준비하다.

by 런던남자


벧엘의 집 봉사를 재개한 지 1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에도 단풍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2019년 11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다. 벌써 벧엘의 집 봉사를 재개한 지 1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김장철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대부분이 주부 회원이어서 걱정은 했지만 예상대로 참여자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여기서 봉사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다. 아무도 나오지 못한다면 혼자라도 해야만 했다. 유실과 나는 일당백의 자세로 임하였다. 유실은 감기몸살 중이었고 나는 다음날 자정으로 다가온 일생일대의 원고 마감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와 그들의 한 달이라는 시간은 같은 듯 달랐고 다른 듯 닮아 있었다.


둘 마저도 봉사활동을 나갈 형편이 아니었다. 유실은 병원을 다녀와서 장까지 보고 벧엘의 집으로 직행하였다. 나는 브런치 대상 공모를 하루 반나절 앞두고 고민이 컸지만 차마 유실이 혼자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브런치 대상에 응모하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우리를 기다리는 35명의 벧엘 가족들이 소중하였다. 우리에게는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그들에게는 손꼽아 기다린 한 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빠서 이번 달은 갈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시가 되자 나도 모르게 카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까맣고 늙은 나의 차를 찾아 헤매었다. 어디에 주차했는지 몰라서 항상 그런다. 벧엘의 집까지는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사이 강 건너 일산의 알라딘 중고서점에 잠깐 들러 책 몇 권을 골랐다. 3시경 벧엘의 집의 마지막 난관인 언덕을 오르기 직전 유실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분 후에 도착하냐는 전화였다. 5초 후라고 대답하자 허탈하게 웃는다. 그녀는 주부 내공이 무려 17년이고 나는 요리 내공이 15년이다. 일당백의 자세로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하였다.


"해투님 언제쯤 도착하나요! 응 5초 후에.."


오늘의 메뉴는 제육볶음, 동그랑땡, 콩나물국이었다. 간식으로 귤을 두 박스 준비하였다. 제육볶음에 들어갈 양파와 양배추 파를 먼저 씻어서 손질하였다. 콩나물국은 멸치육수를 낸 다음 끓였다. 유실은 동그랑땡을 계란을 입혀 부쳐내기 시작하였다. 간간히 조리장님이 나오셔서 도와주셨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준비하는 모습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워낙 간단한 메뉴로 두 사람이 해도 충분하였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콩나물국이었다.


쉬워 보여도 내공이 필요한 콩나물 국과 제육볶음


사실 콩나물국 끓이기가 된장찌개만큼이나 어렵다. 육수용 봉지들을 건져낸 후 콩나물 두 봉지를 씻어서 넣었다. 마늘과 소금을 넣은 다음 바로 뚜껑을 닫았다. 중간에 뚜껑을 열면 여지없이 비릿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다 끌을 때까지 절대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 간은 다 끓은 다음에 맞춰주면 된다. 제육볶음은 샌불에 고기를 먼저 볶다가 준비된 야채를 넣으면 된다. 샌불이 아니면 물바다가 되어 제육볶음이 아니라 제육 국이 되어버린다. 야채의 양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야채는 익어가면서 품고 있던 수분을 토해낸다. 혹시라도 탈까 봐 불을 줄였다가 주부 9단 유실에게 잔소리 좀 들었다. 여차하면 제육볶음이 아니라 제육 국이 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마무리는 주부 9단이 해주었다. 정말 셰프가 맞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주방을 탈출해 홀로 향했다.


행복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다. 그 행복 때문에 봉사를 온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입꼬리 한번 올리겠는가!


모두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서 그녀도 나도 미소가 절로 난다. 조금 아프다고, 원고 마감일 때문에 바쁘다고 오지 않았더라면 이 행복은 결코 마주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내가 먹어도 맛이 있었다. 유실 아줌마도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벌써 벧엘 가족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계시는 여자분들은 반갑다고 껴안고 난리가 아니다. 그녀의 인기가 부러웠다. 은근히 질투까지 난다. 반갑다고 여자 분하고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괜히 혼만 났다. 남자와 손을 잡는 악수도 피하고 있었다. 과거에 만연했던 성희롱이나 인권 문제도 자리를 잡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 사는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유토피아가 따로 없었다.


때가 되어 이파리를 내주는 단풍나무와 황태 덕장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시래기도 행복을 내주고 있었다. 행복은 땅에도 떨어져 있었고 허공에도 걸려 있었다.


브런치 대상에 응모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빨래처럼 두줄로 널려 있는 시래기를 봐도 행복하였다. 저 무청들의 푸름이 머지않아 색을 버리면 맛있는 먹거리로 변신할 것이다. 한국의 늦가을을 저 시래기들이 알려주고 있었다. 대관령 용대리의 황태 덕장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는 시래기 곁의 작은 은행나무는 잎을 벌써 반이나 내주고 동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가느다란 햇살이 은행나무 곁까지 뻗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내준다는 의미는 내가 성장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단순한 사실을 자연이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을 내줄 수도 있고 여름을 같이했던 이파리를 내줄 수도 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었을까?


브런치 대상 응모 24시간 전에 15편의 글을 올리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의 사투가 떠올랐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 천하의 고양이도 동시에 2마리의 쥐를 잡을 수 없다. 한 마리 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 마리다 놓치고 만다. 고양이도 치타도 사자나 호랑이도 아는 이치를 우리 인간만 모른다. 얻기 위해서 포기할 줄 안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따듯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다음날인 일요일에 15편 분량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 동네 별다방은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다. 14시간을 별다방에서 사투를 벌였지만 마무리는 하지 못하였다. 집으로 달려갔다. 자정까지는 채 2시간도 남지 않았다. 다행히 점심을 늦게 먹어서 배고픈 줄도 몰랐다. 다시 집에서 시작된 사투 끝에 15편을 다 올렸다. 시계를 보니 마감시간 30분 전인 2019년 11월 17일 일요일 23시 30분이었다. 30분 안에 브런치 북을 완성하고 소개글까지 써야 한다. 다행히 15분 만에 끝이 났다. 매주 하루 만에 한 권 책 쓰기의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몰입과 집중력은 나를 아무도 환자로 보지 않을 정도이다. 23시 45분에 응모 완료 버튼을 누른 다음 그대로 쓰러졌다. 마감 15분 전이었다.


나는 매일 엉덩이로 글을 쓴다.


그러한 사투 끝에 나의 마지막 브런치 북은 완성되었다. 그 브런치 북이 미스터리 3, 영국, 너 잠 깐 만이다. 미스터리 1은 런던, 전생의 고향이다. 미스터리 2는, 런던 고향이 되기까지다. 1, 2편은 이미 응모를 해둔 상태였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3권의 15편을 그렇게 사투 끝에 올린 것이다. 이제는 몰입의 힘을 믿기 때문에 하루 만에 책 한 권 쓰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15시간의 엉덩이가 만들어낸 위대한(?) 결과물이었다. 나는 글을 손으로 쓰지 않는다. 엉덩이로 쓴다. 그래서 나의 글은 구리고 직설적이다. 구어체의 비문도 많이 사용한다. 주어 동사나 목적어 보어 따위는 따지지 않는다. 사용하지 말라는 접속사는 많이 사용한다. 형용사도 장난 아니다. 3권의 책에서 내가 전하고 싶은 내용의 핵심은 "권력"이었다. 예상대로 조회수가 엄청났다. 어떤 글은 이틀도 안되어 15만 명을 넘어서기도 하였다.


그 글 중 하나는 순식간에 조회수 15만 명을 기록하였다. 제목은 "런던에서 만난 한국의 국가대표급 진상들"이었다.
내주면 반드시 돌려받는다는 사실을 브런치가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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