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7시에 눈을 뜨긴 했는데... 추운 날씨 탓에 선뜻 축구장에 나가기가 망설여진다. 이불 밖으로 나가면 왠지 얼어 죽을 것 같은 영하 6도의 아침 날씨였다. 그래도 올해 마지막 토요일은 조기축구 송년회가 있는 날이다. 경기는 7시부터 10시까지다. 12시부터는 반포에서 송년회가 있다. 아파 운동은 못해도 얼굴도장이라도 찍어야 한다. 얼굴이라도 내밀고 상품권이라도 하나 받아야 한다. 하늘 같은 선배들에게 빠따(?)를 맞지 않으려면....., 선배들은 빠따(?)를 잔소리가 아닌 굵은 소리로 한 번씩 던진다. 그 빠따(?)에 찔리면 온몸이 아프다! 9시 반쯤 겨우 하남 경기장에 도착해보니 거의 마무리 단계다. 일단 출석 체크는 한셈이다. 10시가 되자 정확하게 경기가 끝났다.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대부분이 하늘 같은 선배님들이다. 동기와 후배는 겨우 서너 명도 안된다. 일단 학번도 학번이지만 쪽수에서 너무 밀린다. 무조건 복종이다.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드러누워 배라도 보여줄 태세다. 30분이면 송년 회장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토요일 오전의 시내방향 올림픽 대로는 막히지 않는 편이다. 2시간이나 여유를 둔 이유를 선배님에게 물으니 한강에 가서 씻고 오라는 것이다. 이 추운 겨울에 말이다. 이유는 오늘은 식당이 아니라서 땀 냄새 풍기면 곤란하단다. 다행히 난 경기에 뛰지 않아서 한강물에 손을 담글 일은 없었다.
조기축구가 열리는 하남 종합운동장 주경기장까지는 집에서 딱 50킬로 미터다. 다행히 올림픽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40분 만에 하남에 도착하였다. 그 추운 겨울 아침에 공 하나를 두고 아들부터 아버지까지 몰려다닌다. 새벽 6시 반부터 나와서 몸을 풀고 7시부터 10시까지 그 짓거리를 하고 있다. 외계인이 보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장면 가운데 하나다. 동그란 공하나를 두고 22명이 쫓아다닌다. 3명의 심판은 인간들이 동그란 것을 잘 쫓아다니는지 감시한다. 때로는 카드를 내밀어 인간들을 혼 내키거나 운동장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월드컵이란 걸 치르면서 지구 전체가 들썩거리기도 한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순하다. 언제든 점령해서 빼앗을 수 있을 것 같다. 동그란 공하나 만 던져주면 된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 축구를 할 수는 없어도 동그란 공이라도 한 번씩 보지 않으면 우울해진다. 그 공을 쫓아다니는 인간 군상들을 보면 가족보다 더 반갑다. 단지 학교 동문이라는 것 외에는 같은 게 없다. 심지어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직업도 다양하다. 현직 검사나 변호사부터 교수, 의사, 기업체 임원, 중견기업 오너, 자영업자, 선생, 예술가, 정육점 사장, 일용직 노동자 등등 다양하다. 유일하게 직업이 없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가장 당당하다. 축구장에서는 선후배도 그 무서운 학번도 소용없다. 오직 실력만이 그 사람의 인격이고 도덕이고 권력이다. 그것이 바로 축구장의 생존법이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다를 바 없다. 온갖 질병으로 경기에 나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올여름까지는 나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나는 20년 이상의 구력이지만 선배들은 경기장에서 축구공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이 많다. 그 작은 골프공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손으로 하는 골프와 발로 하는 축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예능 프로그램 중에 뭉쳐야 찬다의 어쩌다 FC 팀이 있다. 거의 유일하게 매주 보는 프로그램이다. 한국 스포츠의 전설들이 모여서 조기축구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천하의 이만기나 허재 양준혁과 이봉주도 축구공 앞에서는 어설프고 엉성하다. 그래도 모태범과 여홍철이 축구공과 좀 친해 보였다. 그런데 축구에 빠진 선배들은 어느 날부터 계란보다도 훨씬 작은 공을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축구에 미쳐가기 시작하였다. 개인 레슨부터 하체 훈련까지 주전으로 뛰기 위해 온갖 편법들을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수요일마다 반포 운동장의 레슨만으로 부족함을 느낀 것이다. 공정을 논할 필요도 없다. 자발적인 학습이고 자습이다.
하남 종합운동장에서 오랜만에 선배들과 인사를 나누고 송년회 장소로 향하였다. 송년회는 말로만 듣던 "더 리버"라는 선상 레스토랑이었다. 사실 더 리버는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많은 선배들이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반포 한강공원에서 몇 바퀴를 돌다가 찾아오는 생경한 곳이었다. 심지어 축사하러 온 의원님도 리버사이드 호텔로 갔다가 왔다고 한다. 이곳에 와본 회원은 서너 명 정도였다. 1층 카페나 2층 레스토랑은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니다. 하지만 3층 프라이빗 룸들은 멤버들만 사용 가능하다. 그곳을 이용해본 회원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그곳의 존재만을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한다. 한강의 선상에 위치한 더 리버는 놀라운 풍경이었다. 한강에도 이런 럭셔리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2층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다. 식사는 미리 뷔페식으로 70인분을 주문을 했다고 한다. 조기 축구회 송년회를 이런 곳에서도 할 수 있다니 파격이었다. 김치찌개나 삼겹살만 먹던 회식에서 갑자기 상류충(?)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리 태연하고 당당한 척 해려 노력해도 상류층 행세는 어려웠다. 선배들도 서로 얼굴을 보며 어색함을 와인으로 달래고 있었다. 반포 광주식당의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일 줄 알았던 송년회였다. 가랑비에 뭐가 젖고 낮술엔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 맞았다. 평소에 소맥이나 막걸리파들이 달달하거나 시큼한 와인을 생맥 주마시듯 한다. 결과는 여기저기서 혀 꼬부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막내들은 귀빈 손님은 물론 이 선배들까지 챙겨야 한다.
운영진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두당 10만 원짜리를 통째로 빌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1년에 한 번뿐인데 이때라도 뱁새가 황새 한 번 따라가 보자는 것이었다. 다리가 찢어져도 할 수 없다. 점심 한 끼가 10만 원이라니! 내 1주일 식비였다. 송년회가 다 그렇듯이 정기총회를 겸한다. 가장 막내 학번인 나와 동기들은 잔심부름에 선배들 술 따라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12시부터 시작된 송년회에서 많은 시상식이 있었다. 회장단이 바뀌면서 운영진의 개각도 있었다. 개각의 폭은 넓었고 드디어 우리 학번들도 부총무에 둘이나 입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나중에 살펴보니 70명 중 절반은 감투를 쓴 것 같았다. 부총무의 역할을 굳이 설명해주는 사회자의 설명에 모두 뻥 터졌다. 한 명은 물과 음료 당당 또 한 명은 축구 장비 담당이었다. 감투 하나만 씌워주면 1년 동안 자연스럽게 그 허드렛일을 해내는 것이 인간이다. 완장 하나면 채워주면 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우리의 근현대사도 마찬가지였다.
12시에 진행된 송년회는 곧바로 회장 인사말과 함께 정기총회 모두로 전환되었다. 1시가 넘어가도 밥 먹을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진수성찬이 한강변의 창가에 차려져 있어서 가져다 먹기만 하면 되는데 밥 먹자는 소릴 안 한다. 박수를 얼마나 쳐 댔는지 손바닥이 얼얼하고 없는 복근까지 경련을 일으킨다. 다행히 1시가 조금 넘어서 점심을 먹으면서 진행하기로 했다. 학번이고 선배고 나발이고 가장 먼저 일어서서 달려갔다. 정신없이 한 접시를 담아다 폭풍 흡입을 하였다. 바로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난다. 온갖 산해 진미를 다 차려 놓았지만 한 접시에서 만족해야 했다. 두 번째 접시는 다른 사람들이 술안주로 활용했다. 2시 반쯤 음식이 철수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박수는 계속 쳐야 했다. 그 많은 시상식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는 겨우 작고 아담한 화장품 하나 받았다. 한나절이나마 상류(충)이 되어보려 했던 나의 꿈은 허망하게 물 건너갔다. 그 야무진 꿈은 강물 위에서 햇살의 난반사처럼 튕겨 나오며 손바닥이 급기야 빨개졌다. 4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난 상류(충) 송년회는 망한 한나절이 되고 말았다. 집에 오면서 다행히 체기가 내려갔다. 허겁지겁 밥을 해서 얼마 전 여동생이 보내준 김장김치와 먹었다.
역시 산해진미 체질이 아니었다. 3주일쯤 된 김장김치는 이제 본격적으로 맛을 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두 그릇을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내년 송년회는 평소 하던 대로 광주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놓고 했으면 한다. 고기는 제육볶음이 스테이크보다 열 배는 맛있다. 1년에 한 번 정도 허세를 부리는 것을 탓할 순 없다. 상류(충)들은 밥 먹듯이 하는 일들을 일반인들이 좀 하면 어떤가! 나 같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사는 하류층에게 상류(충) 생활은 그림의 떡이었다. 편하지도 부럽지도 않았다. 그들 생활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한진가의 경영권 분쟁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박살난 유리창과 도자기들의 파편과 상처는 돈 앞에서는 부모와 자식이나 형제자매도 없어 보였다. 그냥 김치와 밥만으로도 행복하다. 상류(충)의 라이프 스타일 따라 하기는 더 이상 사절이다. 그냥 오피스텔에서 김치와 멸치볶음 하나면 충분하다. 삼겹살이라도 굽는 날에는 호강이 따로 없다. 오늘 오후 내내 그 어색함을 견뎌낸 모든 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