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새해 꿈을 듣고 왜 다 웃는 거죠!

나의 꿈 이야기

by 런던남자



20191225_150228.jpg


1월 3일 금요일이었다. 아침 햇살은 마이너스의 수은주와 씨름하고 있었다. 삼성 중앙역에서 연구소까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면서도 햇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 추운 겨울에도 해가 뜬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 영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5분 정도 시린 햇살을 즐기며 연구소에 도착하였다. 이미 많은 회원들이 나와 있었다. 새해가 밝고 나서 첫 강의와 모임이었다. 1주일 만에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눈물 날 정도는 아니지만 가슴 찡하게 반가웠다. 마치 1년 만에 만나는 것처럼 19와 20은 의미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강의 도중 각자의 새해 계획과 꿈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부분 많은 계획들과 멋진 꿈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SNS에 매일 글을 올리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처음 보는 젊고 예쁜 여자 회원들도 있었다. 내가 10년만 젊었더라면 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활기와 밝은 기운이 넘쳤다. 내가 매주 두 번씩이나 연구소로 출근하는 이유도 젊음 청춘들과의 소통 때문이다. 많은 꿈들을 잃어가고 미래가 암울하기는 해도 젊음은 역시 축복이고 축제다. 하룻밤의 꿈처럼 사그라들지만 그 순간을 즐기고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따위의 책들은 중년 이상이나 읽었으면 좋겠다. 젊은 청춘들이 읽기에는 아무리 봐도 좀 그렇다. 그렇다고 무작정 열심히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젊음을 얼렁뚱땅 보내고 중년이 되어서 후회하지 말자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엔 젊음은 짧고 인생은 길다. 지은 죄가 많으면 100세나 그 이상까지도 살아야 한다. 축복인지 재앙인지는 본인의 젊은 시절에 의해 결정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열심히 또는 게으르게 살자는 말잔치 들은 자신의 일기장에나 쓰는 걸로 하면 좋을 것 같다.


마침내 나의 차례가 왔다. 나는 새해엔 꿈도 계획도 없다고 발표하였다. 새해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 매일 글을 읽고 매주 책을 쓰는 것이 평생 목표로 정해져 있는 이상 더 이상의 계획도 꿈도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해마다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해마다 다른 꿈을 꾸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게을러서 그게 잘 안된다. 건강에 대한 기원이나 돈벼락 맞아서 부자가 되는 꿈도 더 이상 꾸지 않는다.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에게는 이 하루가 언제까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사실 내년에도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내겐 주어지지 않는다. 아직 병명도 모르는 희귀 난치병과는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다. 대면 대면한 친구처럼 지낼 것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해에도 병원 유목민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내가 꿈꾸었던 삶은 힘든 노동을 하며 글을 쓰는 것이었다. 땀을 흘리지 않고 사시사철 최적의 온도와 환경에서 팔자 좋게 글을 읽고 자판을 두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광장 정치에도 관심이 많지만 눈길도 주지 않는다. 둘 다 맞지도 둘 다 틀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만이라도 인정하게 하는 일은 글쟁이들의 몫으로 남았다. 지질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글을 선호하였지만 점차 사회문제로 빠지고 마는 이유다. 볼링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공을 굴려도 스트라이크는커녕 자꾸 똥창(?)으로 빠지는 것과 흡사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스트라이크를 치려고 다듬고 또 다듬는다. 독자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글로서의 숨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 진지하게 자신의 신년 계획과 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꿈도 계획도 없다고 하자 순간 연구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베리아 출생의 한랭전선이 연구실을 얼어붙게 하고 말았다. 바깥 날씨가 영하 10도 가까이 내려가서일 수도 있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그리도 나에겐 소박한 꿈이 하나 있기는 하다고 하였다. 순간 20여 개의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의 입을 주시한다. 부담스럽다. 이걸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결국 나의 작고 소박한(?) 꿈을 털어놓았다. 새해의 탱글탱글하고 쫀득쫀득한 꿈은 아니라는 단서를 붙었다. 또 하나의 단서는 내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꿈이길래 저리 단서가 많아! 라면 눈동자들은 더 초롱 거리기 시작하였다.


"노벨문학상"이라고 하자 다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수군거리는 듯하였다. 아주 대놓고 크게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해 2월 11일 평생 프로젝트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도 당장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좋아서였다. 그리고 원대한 꿈이 있었다. 50이 넘어서 시작한 글쓰기로 20년간 매주 책 한 권씩을 써 내다보면 다작 분야에서 기네스에 오르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노벨문학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2월부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을 꾸준하게 읽어오고 있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조미료가 빠져 있었다. 그리고 시대를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독자의 입맛은 트렌드에 따라 자주 바뀐다. 음식에도 유행이 있듯이 글에도 유행이 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은 독자들의 입맛에 따르지 않았다. 조미료 없이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글을 써오던 작가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이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나의 꿈은 노벨문학상이다. 비웃어도 좋다. 어차피 한 개인의 꿈일 뿐이다. 이왕 꾸려면 꿈은 원대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20년 안에 받을 것이다. 20년 동안 매일 읽고 매주 한 권 쓸 것이다. 주제는 사회문제와 사회변혁이다. 결국은 사람 이야기지만 사람만 가지고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펜은 검보다 강하다"라는 말을 아직도 신봉한다. 한국사회를 바꾸려면 정치인들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바뀔 확률은 0%이다. 정치인들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투표만 있지는 않다.

만일 20년 안에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면 노벨상 제도가 없어졌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다음 달이면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년이 된다. 1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진통제를 먹지 않고 글을 써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사촌 여동생 장례식 기간에도 썼다. 책 쓰는 날 허리 통증 완화제로 착각하고 먹은 약이 잘 때 먹는 수면제 성분들이 5알이나 들어있는 우울증 약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날 춘천 별다방의 낮 하늘엔 태양 대신 하루 종일 달이 떠 있었다. 그날은 비몽사몽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책을 썼다. 그 책들은 블로그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브런치에도 올리고 있다. 평생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강의 신청하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발칙한 이색 조기축구회 송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