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벌써 두 번째 겨울과 용감하게 맞서고 있다. 전사가 따로 없다. 한국의 겨울은 정말 춥다!
온몸이 종합병동이 되어 휴양차 온 지도 1년이 넘었다. 휴양을 하긴 하는데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어버렸다. 팔자에도 없는 일이다.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다. 영국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눌러앉게 생겼다. 질병들은 어쩌면 평생 같이 가야 할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친구 사귀는 재주는 아직 녹슬지 않았나 보다. 온몸 여기저기서 친구 하자고 난리다. 당장 화요일 무릎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보호자도 가족도 없다. 간병인이 없어서 1주일간 화장실은 참아볼 생각이다. 20년의 세월을 이방인처럼 살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막상 돌아와 보니 시차 적응하듯 적응할 일이 제법 많다. 한국에 와서 가장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하이패스와 배달음식이었다. 서울 외곽의 신도시들은 어디를 가든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구간구간마다 톨게이트가 있다. 이놈의 톨비는 도대체 언제까지 받아 처먹을지 모르겠다. 어떤 구간은 900원짜리도 있다. 김포에서 구리나 분당을 가려면 톨비를 서너 번은 내야 한다. 참고로 영국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다.(최근 건설된 M6 민자구간과 다리 한두 곳은 톨비가 있지만 나머지는 무료다.) 1년에 한 번 내는 로드 텍스는 한국의 상, 하반기 자동차세를 합한 것과 비슷하거나 약간 비싸다.
문제는 이놈의 하이패스다. 물론 하이패스를 달면 만사형통이다. 톨비를 내겠다고 속도를 줄이며 애써 "현금"이라고 쓰인 게이트를 찾아 아찔한 차선 바꾸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인들은 왜 이 귀찮은 일을 1년이 넘도록 반복하느냐고 핀잔을 준다. 너무 게으른 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금이나 카드는 한두 곳만 남기고 하이패스 구간으로 바뀌어가고 있어서 불편함은 커지고 있다. 하이패스를 달지 않은 이유는 그나마 한 두 곳 남아있는 톨게이트의 하청 노동자들을 위해서다. 지난해 가을 태풍이 부는 날에도 서울요금소에서 고공 농성을 하는 그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문제다. 오죽하면 톨게이트 상단의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태풍과 맞서며 농성을 하고 있을까!
내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들의 일자리를 지켜 주는 것뿐이었다. 내가 하이패스를 장착하지 않는 이유다. 게으르기는 하지만 하이패스도 장착하지 못할 만큼 게으르지는 않다. 이러한 소극적인 도움보다는 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적극적인 도움이 절실해 보인다. 정치하는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글 쓰는 사람들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나 하나 먹고살기도 벅차다는 것쯤은 안다. 결혼도 못 할 정도로 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힘들수록 더 힘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매월 한 번이지만 벧엘의 집에 봉사를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벧엘의 집을 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병원에 입원해도 잠깐이라도 다녀오는 이유다.
또 하나 불편함 점은 아무 생각 없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몇 번 강제 추행을 당할 뻔했다. 아슬아슬하게 키스를 면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배달 오토바이들이 키스하자고 달려들면 오금이 저리고 순간 하늘이 노래진다. 처음 당했을 때는 사거리 한복판에서 바지에 실수할뻔했다. 신호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신호를 창출한다. 사거리에서 크로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물론 이제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강제 키스를 피해 요령껏 건너 다니지만 아직도 불안 불안하다.
한국에 와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배달을 시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배달을 시켜야 그들의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혼란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은 건당 3천 원도 되지 않는 돈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결국 배달업계의 승자는 플랫폼 업자들뿐이다. 식당들도 고액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배달업체에 등록한다. 식당 사장들은 국민들의 배달음식 추세를 거스를 수도 없다.
그래도 사장님들은 배달하는 노동자들처럼 매번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된다. 배달 오토바이들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창출해 가며 키스하려 달려들 때는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키스하려 달려드는 그들을 대하는 자세는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그래도 쌍욕을 하면서 헬멧에 가려진 그들의 얼굴 윤곽이라도 보려 애쓴다. 대부분 엣띤 청년들이다. 서커스에 가까운 묘기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 사이로 축구 드리블하듯 돌파하는 그들을 보고 웃지도 울지도 못한다. 마라도나나 메시 그리고 손흥민이 떠오를 뿐이다.
내가 언제까지 하이패스를 장착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세상은 변화의 물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그 급류에서 한두 사람에게라도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은 적지 않다. 언제까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 않고 버틸지도 의문이다. 배달의 민족이고 백의민족이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한숨이 나온다. 슬픈 자화상을 보며 잘리지도 않았는데 나의 왼쪽 귀를 만지작거려 본다. 우리가 이렇게 빨리빨리를 외치며 급하고 편리함을 추구한 이면에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널려있다. 그 죽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플랫폼 업체들의 배만 불려주는 배달 음식을 나라도 거부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비판을 듣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마당에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인다고 한다. 그러한 비판 또한 겸허하게 수용한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의 선이나 면으로만 존재하지 못한다. 반드시 그림자가 있고 음지가 있다. 한 번쯤은 음지의 추운 곳을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겨울이다. 그 엣띤 청년들이 3천 원도 되지 않는 돈을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봄다운 봄은 언제쯤이나 올 수 있을까! 우리의 빼앗긴 횡단보도에도 과연 봄이 올지를 생각하며 오늘도 겨울이라는 낯선 들판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참고로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는 삼성동 아지트리에서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 만에 책을 쓰고 매월 또는 매주 책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처럼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이 15명 이상 되었다. 앞으로도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강의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https://www.onoffmix.com/)에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