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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27. 2019

#30~32주차,어머니도 여자였다는 사실을 그때..

매주 한권 책 쓴다(2019년 9월 2, 9 15일)

Note: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 쓰기 프로젝트는 나의 평생 프로젝트로 2019년 2월 11일 월요일에 춘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죽기 전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을 소망한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면, 나는 이미 질병과의 전투에서 1패를 기록하며 다른 별로의 고독한 여행을 시작하였을 확률이 아주 높다.




@ 부제: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삶을 보고 자라면서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직업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 분량: 이북 기준 총 450페이지(폰트 22)

@ 판매: 블로그 서점(https://blog.naver.com/jebyi)



프롤로그


어머니! 

세상에서 이보다 더 정겹고 아픈 단어가 또 있을까? 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그리움을 넘어서 회환이다. 세상의 전부였던 어머니는 나의 결혼과 동시에 역할을 축소하기 시작하였다. 부모와 자식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일은 예정된 슬픔이었다. 닥쳐올 기나긴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일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였다. 물리적 거리가 주는 아득함이 서러웠는지도 모른다. 그 사실조차 어머니가 떠난 후 깨달아가고 있다. 영원히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어머니였다. 그러던 어머니는 더 이상 곁을 내줄 수 없는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나셨다. 어머니의 부재는 고향의 상실로 다가왔다.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다. 짬짬이 어머니를 회상해보는 일은 이제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막연하고 아련한 고향과 안식처의 이미지로 존재한다. 어머니 자궁 속에서의 10개월을 기억하진 못해도 그 안의 평온함과 안락함은 본능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평생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자식들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여성이 아닌 어머니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기억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특별하고 언제나 그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살아 계실 때 느꼈던 감정과 돌아가신 후의 감정은 미묘하게 달랐다. 애증의 그림자가 희미해지면서 그리움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결혼 전 어머니는 꿈 많은 소녀였고 서울 명동의 부잣집의 큰 딸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살아낸 세월은 역동적이었고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과 피난생활을 거쳐 아버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6남매를 키워낸 격동의 세월을 사셨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한 여인의 일대기지만 나의 어머니이기 전에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어머니는 굉장히 성격이 급하고 손이 크셨다. 체구도 크셨고 서울 떡(댁)이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셨다. KBS 1기 어린이 합창단원이셨고 명동에 있는 일신초등학교 재학 중 전쟁을 만났다. 전쟁 통에 금 수저였던 외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의 종착지는 정읍이었고 그곳에 정착하셨다.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데 전쟁 통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것은 어긋나기 시작하였다. 종로와 을지로에 있던 많은 사업체들과 땅은 주인 잃은 땅이 되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아버지는 정읍 토박이셨고 전봉준 장군의 친척이었다. 우리 집은 녹두장군과 김개남 장군의 생가와는 십리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동학혁명의 시작은 바로 우리 동네에서부터였다. 아버지의 터전은 정읍이었고 나의 고향은 자연스럽게  정읍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천안 전 씨에서 런던 전 씨의 시조가 되었다. 물론 아버지는 모르는 극비 사항이다. 아시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족보에서 파낸다고 겁박하실 게 틀림없다.     

어머니도 여자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이었다. 6남매를 키우며 많은 농사와 떡 방앗간에 시부모까지 모시며 그렇게 서울 아가씨는 야전의 전사처럼 삶을 살아냈다. 그리고 몇 년 전 밭에서 일하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온갖 합병증과 싸우다가 요양병원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당연히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에 어머니는 혼자 살고 싶다고 여러 차례 자식들에게 말하였지만 묵살되고 말았다. 다 늙어서 이혼한다는 것을 자식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해할 마음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다. 어머니도 한 여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 어머니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고 싶었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기에는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 어머니를 추모하고 추억하는 일이라고 판단이 서자 글로서나마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어 졌다. 총 3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토대로 작성되어서 픽션과 논픽션을 오갈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 목차: 


제1권 격동의 세월 (2019년 9월 2일)    


1. KBS 1기 어린이 합창단

1. 물리적 거리의 비애

2. 말 못 하는 어머니의 노래

3. 어머니에게서 소녀의 눈물이    

 

2격동의 세월이 맺어준 인연

1. 동학과 나의 독박 육아

2. 여당과 야당의 싸움

3. 고부갈등     


3부부는 평생 닮아가지 않았다

나는 변하지 않고서

2. 아버지처럼만 아니면

3. 아버지의 사랑     


4시골 마담뚜와 로비스트

1. 시골 로비스트

2. 시골 마담뚜

3. 슈퍼우먼     


5베푸는 삶과 검소한 삶의 충돌

가마솥과 식객들

일이 놀이가 되다

상실된 고향    

 

제2권 어머니라는 직업(2019년 9월 9일)     


6추억의 음식들

1. 우물 안의 김치냉장고

2. 동태찌개와 겨울

3. 호박잎 쌈과 나물들

4. 감 장아치와 야생 버섯들     


7겨울날 풍경

아버지의 취미와 부업

2. 가마솥

3. 겨울날의 방안 도마

4. 화롯불과 내복     


8운명의 장난

1. 6남매의 육아와 집안일

2. 외삼촌의 잠적

3. 할아버지와 같은 어머니의 병     


9효부

군수가 보내온 효부 상

2. 매달의 제사와 끔찍한 명절

3. 무료급식소 같은 방앗간 풍경     


10어머니라는 직업

1. 모성애

2. 부부, 고부관계

3. 직업으로서의 어머니


제3권 어머니도 여자였다(2019년 9월 15일)


11어머니의 믿음

1. 좌절과 방황

2. 어머니를 위하여

3. 시골 로비스트의 사랑     


12나는 피노키오였다

1. 어학연수

2. 이민

3. 역 기러기 아빠     


13그리움의 고통

1. 8000km

2. 간헐적 상봉

3. 향수병     


14독립선언

어머니의 꿈

2. 어머니만의 공간

3. 어머니의 철학     


15어머니도 여자였다 

1. 남녀의 생각 차이

2. 어머니도 아내도 여자였다


에필로그



에필로그


아무리 돌아가신 분이라지만 어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쓰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쓰려면 나의 가정사가 공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사적인 이야기를 쓸 때는 아무리 어머니 이야기라 할지라도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조연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이나 비판이 무서워서 어머니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더 이상 남기고 싶어도 남길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어머니의 자서전을 대필해 드리는 심정으로 책을 쓰고 있다. 여러 번 언급하였지만 어머니의 삶은 한 편의 소설과 같은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한 사람의 삶이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느낄 수 있었다. 한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외부의 자극과 충격에도 삶은 심하게 요동칠 수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바로 나의 어머니의 삶이 그랬다. 전쟁이라는 하나의 변수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왜곡시키고 걷잡을 수 없이 와해시켰다. 그 단절의 역사에서도 삶은 앞으로 나가야 했고 그 힘겹고 험난했던 개인의 삶을 위로해줄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마저도 할 수 없는 개인 스스로가 스스로의 상처를 봉합해야 하는 일이 전쟁을 겪은 세대들의 실상이다.   

   

전쟁을 통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고 전쟁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본은 재건할 수 있는 부를 축적하였고 결국은 우리보다 앞서서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하였던 것이다.      


단지 어머니 개인사만을 다루려 했는데 자꾸 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전쟁이라는 매개 변수가 너무나도 크게 판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그 전쟁의 공포를 온몸으로 겪으며 소녀 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다. 졸지에 금 수저에서 아래로 네 명의 동생들을 돌보는 소녀 가장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아니었으면 나는 나의 어머니를 만날 확률은 제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인연의 질기고 무서운 끈을 간과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불러보지만 다가갈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린 어머니라는 존재는 이제는 비현실 속의 어머니가 되고 말았다. 일순간에 내가 의지할 고향은 물론 세상이 사라진 느낌이다. 그만큼 나의 몸과 마음이 많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단지 나를 낳아준 생모로서의 존재뿐만 아니라 영원한 고향이고 안식처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는 사실도 이번에 깨닫게 되었다. 아내나 형제들도 나를 버릴 수 있지만 어머니만큼은 세상 어디까지라도 따라와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는 이처럼 위대하고 훌륭한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에는 추석이 빨라서 시골에도 일찍 내려간다. 어머니를 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고 심장박동수가 올라간다. 이번 추석에는 어머니 앞에서 목 놓아 울어도 보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다. 어머니가 잠들에 계시는 선산에는 배롱나무 세 그루가 백일홍이라는 꽃을 피우며 기다릴 것이다.         

 

2019년 9월 16일

목포의 어느 카페에서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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