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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ul 21. 2019

하루 만에 책 쓰기 #3 하루 만에 책 쓰기의 비밀

나는 매주 한 권 책 쓴다

자기 발견: 우리는 모두 천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계발에 몰두한다. 실제로 대형 서점에 가보면 눈에 잘 띄는 중요한 자리에는 반드시 자기 계발 코너가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시간을 자기 계발에 투자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도 자기 계발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여 시중에 출간되는 대부분의 자기 계발 서적을 탐독해 왔다. 자기 계발 서적들을 읽을 때마다 공감을 느꼈고 큰 울림들이 밀려왔다. 바로 이거야! 그래 맞아! 하며 무릎을 치기도 하고 손뼉을 치면서 기쁨의 희열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나의 생활은 10년이 지나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릎까지 치며 격하게 공감했던 내용들을 생각하려 애써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것도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은 자기 계발 서적들을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차라리 쉽게 읽히는 소설책들이나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였다. 자기 계발 서적들만 읽는다고 자기 계발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루하루 꾸준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실천을 해야 변화가 나타난다. 그러기에는 평범한 우리 인간들이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작고 사소한 습관부터 따라 하기를 반복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자기 계발 서적들과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자기 계발 무용론 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기 계발 대신 나는 지기 발견을 주장하게 되었다. 혹자는 자기 계발이나 자기 발견이나 뭐가 다르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너무 다르다. 자기 계발이란 자기 내에 없던 것을 일정한 시간과 행위가 배합되어 만들어내는 제조의 과정과 비슷하다. 반면 자기 발견은 이미 자신 안에 깊이 내재되었던 특정 요소를 단지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는 개발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의 사례를 통하여 그 차이를 설명해 보겠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무대 및 광장 공포증 환자였다. 사람들 앞에서 강의는 물론 간단한 프레젠테이션도 하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 또한 싫어하였다. 내가 그 사람들을 앞에 두고 연설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트라우마처럼 나를 괴롭혔다. 아무도 광장에서 나에게 연설은커녕 말도 걸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광장에만 가면 그런 공포에 휩싸이곤 하였다. 대학시절 조별 발표 때에도 발표자가 되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직장시절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나의 단점을 고쳐보려고 1년 이상 스피치 학원에도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스피치 관련 책도 많이 읽었지만 역시 변화는 없었다. 강의나 연설이라는 분야의 자기 계발에 실패한 나는 좌절과 절망의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평생을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기로 했다.

     

그러다가 지난가을에 치료 및 휴양 차 한국에 오게 되었고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의미 있는 강의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나에게 다음 주에 강의 한번 해보라는 제의가 들어왔고 얼떨결에 네!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1주일이 1년 같았다. 떨리고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맞서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왕 나선 김에 객기까지 부려보기로 하였다. PT자료나 원고 없이 1시간 반을 강의해 보기로 하였다. 당일 날 아침 강의시간이 다가왔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지기 시작하였다. 백치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강의는 시작되었다. 1시간 반으로 예정되었던 나의 강의는 2시간을 다 채웠다. 그래도 전하고 싶은 내용들의 반도 말하지 못하였다. 강의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정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원고나 PT자료 없이도 2시간을 소화해내는 나 자신의 모습에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나였다. 수강생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에 강의를 잘하고 못하고 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나 또한 내가 횡설수설하면서 강의를 하였지만 나름 너무나 훌륭한 강의였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무릎을 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러한 뿌듯함을 형언하기란 쉽지 않았다. 뿌듯함을 넘어 근거 없는 자부심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나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글쓰기나 강의 능력이 나의 몸속 깊숙이 내재되어 있으리라고는 결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러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나의 좌우명은 물론 인생관 자체가 바뀌어 버리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천재들이다. 다만 자신조차 인정하지 않고 모르고 있는 그 천재성을 남 들인 들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글쓰기나 강의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나의 재능들을 발견해 가고 있는 중이다.

     

몰입의 힘

     

올해 1월 말에, 하루 만에 책 쓰기 강좌가 강남역 인근에서 열렸다. 수강생은 나를 포함하여 3명이었다. 그중에는 이미 책을 출간한 작가도 있었다. 나는 강의 도중 여러 번 질문을 하였다. 기존의 상식과는 배치되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사고와 배치되거나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일단 질문부터 하고 본다. 그 과정이 해결되지 않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 자체를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약간 별난 성격이다. 그날도 2시간의 강의시간 내내 질문을 던졌고 반발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나는 일단 도전해보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용기라기보다는 일종의 호기심이었다. 나머지 두 분은 강의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첫 책 쓰기 도전은 시작되었다. 책 쓰기 며칠 전에 제목과 목차 및 프롤로그를 간략하게 적어서 제출하였고 괜찮다는 승인을 받았다. 장소는 강의실도 아닌 춘천의 어느 스타벅스였다. 아침 9시에 도착하여 곧바로 책 쓰기 대장정에 돌입하였다. 통유리를 통해 스며드는 겨울의 아침 햇살이 참 따스하였다. 하지만 그 햇살과 만남의 즐거움은 찰나였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저녁 7시가 좀 넘어서 그렇게 나의 첫 하루 만에 책 쓰기는 끝났다. 내용을 두어 번 읽어보며 마무리를 하였다. 오탈자 등은 무시하고 문맥과 일관성만 체크하였다. 아침에 시켜둔 머그잔의 커피는 몇 모금 마시지 않은 채 그대로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생수병의 물만 반쯤 비어있었다. 중간에 화장실에는 딱 한번 다녀왔다. 휴대폰과 인터넷은 모두 차단한 상태였다. 커피를 마시면 자주 화장실에 가는 나의 특성을 잘 알기에 일부러 커피를 마시지 않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점심은 건너뛰었다. 점심 후의 식곤증을 이길 재간이 없어서였다.

     

이처럼 몰입의 조건들을 갖추고 나서 하루 만에 책 한 권을 써냈다. 난생처음 시도해보는 실험이었고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한마디로 몰입의 힘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한 달이 주어져도 아니 일 년이 주어져도 결코 불가능해 보였던 책 쓰기를 하루 만에 해낸 것이다. 몰입의 힘은 참으로 놀라웠다. 이 놀라운 힘을 지천명이 지나도록 모르고 살았다니 지나간 세월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다. 물론 학창 시절 시험 때마다 벼락치기 공부를 통해 몰입의 힘을 어렴풋하게 느낀 적은 있었다. 한 학기 공부를 하룻밤 사이에 끝내는 놀라운 힘을 알고는 있었다. 그 놀라운 능력을 다른 분야에 활용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책 쓰기 뿐만 아니라 독서, 운동 등 모든 분야에서 몰입의 힘을 시험하고 실천하고 있다. 몰입의 힘은 정말 놀랍고 위대하다.


비독서의 힘


대부분의 책 쓰기 전문가들은 책 쓰기의 기본은 많은 분야의 다양한 독서라고 강조한다. 일부 책 쓰기 강사는 몇 천권부터 만권 이상을 읽었다고 자랑한다. 여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일부는 동의하지만 일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책을 몇 권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게 진정 그들의 생각인지 수많은 작가들의 생각을 짜깁기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어느 정도 공감은 가지만 어떤 감동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면들이 보였다. 모방도 훌륭한 창작이다. 이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막 한글을 떼고 시집이나 산문집을 낸 80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책이 훨씬 감동적이었다. 그분들은 평생 독서라는 걸 해보지 않았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한글을 모르는데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하루 만에 한 권을 쓰고 그것도 매주 한 권씩 써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비법은 간단하다. 나는 특정 주제의 책을 쓸 때 참고 서적이나 참고 자료를 전혀 찾아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이다. 만권의 책 속에는 무한한 지식과 지혜 및 정보가 들어있다. 나는 그러한 지식이나 정보를 재생산해서 재분배하는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다. 오로지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눈으로 보고 내 가슴으로 느낀 것만을 글로 써낸다. 그러기에도 내가 써내야 하는 책의 소재는 평생 써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무궁무진하다. 내가 천재 여서도 전문가 여서도 아니다. 글의 특성과 글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글에도 내공이 있고 깊이가 있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나 오랫동안 감옥이나 사찰 등에서 깊은 사색을 하신 분들의 내공을 독서로 흉내 내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겪고 고민하고 사색한 것들이 글이라는 언어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나의 글이고 나의 스토리가 되어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의 핵심은 지식의 과시가 아니고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다. 가장 아프고 부끄러운 것까지 드러낼 때 독자는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교감하고 공감하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독서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행위만이 독서라고 보는 근시안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소일거리가 없어서 하루 종일 TV 드라마를 보고 뉴스를 보는 것도 독서의 일종이다. 평생을 그렇게 사신 80대 노인들은 만권이 아니라 십 만권 이상의 독서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책에서 읽었을 때보다 더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그리고 독서에 비해 여운도 오래간다. 심지어 그날 본 드라마를 두고 마을회관에 모여 갑론을박의 토론도 한다. 그것이 독서토론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드라마나 영화의 대본은 방송작가들이 쓴다. 책은 일반 작가들이 쓴다. 방송작가는 작가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한때 독서광이었고 지금도 거의 매일 교보문고나 도서관을 들락거린다. 그 이유는 TV를 안 보기 때문에 독서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책 쓰기의 힘과 소재는 이미 내 안에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차고 넘치는 게 소재고 쓸거리다. 독서를 하지 않았던 사람도 생각을 바꿀 때이다.


비전문가의 힘 


일반인들은 책 쓰기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전문 작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러한 생각의 함정에 빠져서 살아왔다. 그동안 너무나도 막연하게 책 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너무나도 막연한 동경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얼마 전 내가 받은 책 쓰기 강좌를 통해서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생각이 무너지면서 나의 생활은 극적인 변화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책 한 권을 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강의의 내용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내 주위를 돌아보니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당장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교수나 특정분야에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활동하는 지인들이 쓴 책들을 검색하였다. 놀랍게도 논문 이외는 거의 없었다. 아마 그들이 너무 바빠서 그럴 거야! 라며 그래도 수긍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 쓰기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인 것이다. 물론 나도 평범하고 아무런 지식이 없는 대학도 겨우 졸업한 비전문가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쓸 때 거리낌이 없다. 잘난척하려고 참고문헌이나 참고자료들도 인용하지 않는다. 아예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냥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낼 뿐이다. 물론 매일매일 그 주에 쓸 책 내용들을 머릿속에 저장해 두는 정도이다. 나이가 많이 들수록 책 쓰기가 수월해짐을 느낀다. 그만큼 TV도 오래 봤고 인생의 굴곡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젊은이도 비록 독서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간접 독서를 매일 하고 있다. 다양한 정보를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접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모두가 다 책 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비전문가의 시대가 우리 코앞에 와있다.


모든 소재는 내 안에 있다. 

    

나도 처음 책을 쓸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문장력도 구성력도 아니었다. 바로 책 쓰기의 소재였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자꾸 근사한 제목의 남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책 쓰기 자체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바로 내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망설여지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자랑스러운 성공담이나 전문적인 영역이 며칠을 생각해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끄럽고 실패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심지어 아내에게 항상 구박받고 쫓겨나다시피 영국을 떠나온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심지어 외로움과 우울증에 허리디스크까지 모두 아픈 이야기들뿐이었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는 도저히 나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기란 불가능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치부를 드러내 보고픈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바로 블로그부터 활성화시키고 나의 이야기들을 써나갔다. 가끔은 자랑할 만한 내용들도 쓰고 싶었지만 자랑할 만한 일을 하나 쓰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반면 나의 아픔과 부끄러운 이야기들은 1분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인생 자체가 모두 글의 소재가 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바로 나의 치부를 드러내야 했다. 실제로 그렇게 글을 쓰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하였다. 그러면서 교감과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글쓰기도 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솔직 담백한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편견들

     

글쓰기에 대한 편견은 일부는 우리 스스로 만들었고 일부는 전문가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글쓰기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나는 기꺼이 이렇세 말한다.  " 글쓰기는 배설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이미 진화를 마친 지 오래되었다. 인간의 두뇌는 스펀지처럼 수많은 정보들을 빨아드릴 뿐이다. 그 과정이 독서일 수도 있고 TV나 영화 또는 스마트폰을 통해서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한 지식이나 정보들을 먹기만 할 뿐 배설을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나면 아무 때나 책만 읽었다.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밥을 먹고 똥을 싸지 못하는 변비 환자처럼 일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데는 5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을 돌고 돌아온 세월이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변비는 치유되었다. 배설의 힘은 놀라웠다. 나는 매일 똥을 싸야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였고 책 쓰기였다. 똥을 싸고 나면서부터 나의 잔병들도 덩달아 치료가 시작되었다. 이는 놀라운 발견도 기적도 아니다. 너무나 단순하고도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글쓰기 분야에서는 전문가들만 똥을 쌀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에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전문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책의 역할이라고 알고 살아왔다. 그러한 책보다는 쉽게 쓰고 독자들을 공감시킬 수 있는 책들이 훨씬 많이 팔린다. 오히려 거기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가 들어가면 머리만 아파진다. 그러한 책들은 대학교재나 논문으로 따로 분류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글쓰기 강사들이 강조하는 문장력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은 작가의 문장력을 보려고 책을 읽지는 않는다. 우리가 맛 집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집의 멋진 인테리어나 분위기를 보려고 가지 않는다. 그 집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줄까지 서며 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맛 집들이 노포인 경우가 많다. 인테리어나 위생만을 따진다면 굳이 그 맛 집에 가지 않을 것이다. 책 쓰기에서의 문장력도 마찬가지다. 솔직 담백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경험들이 먼저다. 거기에 문장력까지 갖춰지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욕심이다. 오히려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 맛 집인 50년 된 설렁탕집 노포를 초현대식 인테리어로 바꾼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어울리지 않은 노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될지는 자명하다. 없는 문장력을 자꾸 발휘할수록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꼴이 된다.

     

시간적 여유도 마찬가지다. 몇 달이나 몇 년을 주어도 책을 한 권 완성해낼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하루 만에 한 권을 쓰기는 아주 쉽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몰입의 힘에서도 잠시 설명하였다. 매일 조금씩 써서 한 달에 한 권을 완성한다고 예를 들어보자. 글의 스토리가 매끄럽게 이어지질 않는다. 다음날 글을 쓰려고 보면 어제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고 있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급한 경조사나 출장이라도 생기면 며칠 후에 다시 보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써두었던 글 전체를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수정하고 있다. 이렇게 수정하다 지치면 글쓰기가 재미도 없고 자신의 능력 없음에 좌절만을 맛보게 된다. 그러면서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한번 포기하면 다시는 책 쓰기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하루 만에 책을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몰입의 힘도 중요하다. 문제는 시간이 많고 길어지면 더욱 불리해지고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하루 만에 책 쓰기의 핵심이다.

      

수많은 방해꾼들


누구나 책을 쓰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일수록 책 쓰기가 쉬워진다고도 이미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쓰기를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일부는 수많은 편견들에서 이미 밝히기도 하였다. 가장 큰 방애꾼들은 책 쓰기를 전문 분야로 인식하게 강요하며 어렵다고 부추기는 일부 책 쓰기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많은 양의 독서량을 강조하고 문장력을 내세우며 그것들을 배우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홍보하고 있다. 실제로 몇 백만 원부터 수 천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치르고 작가가 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분들 덕분에 이 책을 쓰고 있기도 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책 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평생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책을 쓸 수 있다. 평생 글을 몰랐다가 노년에 한글을 깨치고 책이나 시집을 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분들이 낸 책이나 시를 읽어보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읽고 느낀 감동은 만권 이상의 독서량을 자랑하는 작가의 글보다 몇 배 더 감동적이었다. 책이나 시집을 읽다가 눈물을 흘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분들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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