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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30. 2019

세상에! 하루 안에 글감이 널려 있네

안식년 맞아? 그러다 과로사해 #5

휴일도 휴가도 반납     



2019년의 반전은 드라마틱하다 못해 야구에서 9회 말 만루 홈런을 친 기분이었다. 1월의 추운 겨울에 동면을 깨고 나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감조차 잡지 못하면서 말이다. 1월에는 눈도 제법 오고 정말 추었다. 컨디션 난조도 이어졌다. 북쪽으로 창이 난 구치소 같은 원룸에서 벗어나야 했다. 1월 말에 드디어 나를 발견하였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나는 초밥을 만든다고 9킬로그램짜리 통 연어를 해체하는 초밥집 사장이 아니었다. 100인분이 넘는 야키소바를 볶고 데리야키 소스를 만드는 일식집 주인도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꿈조차 꾸지 않았던 일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고 계속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브런치와 블로그에 공개하고 있는 하루 만에 책 쓰기로 매주 한 권 책을 쓰는 프로젝트였다. 하루 만에 책을 한 권 쓰는 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바쁘게 하루와의 일전을 치르고 있다. 하루를 더 이상 허비하는 일은 없다. 나에게는 휴일도 휴가도 없다. 24시간 글쓰기만 생각한다.      


안식년 도중에 갑자기 인생의 항로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진정한 휴식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며 몸과 마음의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경험한 진정한 휴식은 의외로 엉뚱하고 심지어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것이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목숨 걸고 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휴식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게 무슨 휴식이냐고 따지는 친구도 있었다.     

 

쉴 때는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뒹굴뒹굴 빈둥거리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휴식 방법이다. 일상에 찌든 사람들이 꿈꾸는 휴식이기도 하다. 거기에 조미료처럼 여행이라는 것이 가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명절이나 징검다리 연휴 때가 되면 공항은 북새통을 이룬다. 휴식의 한 방법인 여행을 위해서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휴식 방법은 전혀 달랐다. 바로 하루 12시간 이상 카페에서 지내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 일찍 카페로 출근한다. 그리고 카페가 문 닫을 시간쯤에 퇴근한다. 하루 종일 글을 쓴다. 가끔은 읽기도 한다. 이미 써 둔 글들의 원고를 퇴고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37권의 전자책을 다 들여 다 보기에도 벅차다. 다음 주에 쓸 책들의 제목과 목차도 정해야 한다. 참고문헌은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회문제나 시국을 해석하고 글로 풀어낸다. 이제는 치부를 드러내는 일도 제법 익숙해졌다.     


안식년 도중 갑자기 일속에 파묻혀 버렸다. 글이라는 산사태에 깔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당장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서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이처럼 행복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막연하던  행복과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책을 쓰면 쓸수록 나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20년 만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제주도와 울릉도는 물론이고 독도까지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이 없다. 책 쓰기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다녀왔을 것이다. 1년의 시간은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다. 그 1년이 이처럼 빨리 갈 줄은 몰랐다. 안식년 치고는 너무 바쁘게 보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쁘다는 말 하나만으로도 살맛이 난다. 그동안 삶의 생채기들이 조금씩 아물기 시작하였다. 나에게 휴일도 휴가도 없는 이유다.    

  

백수도 매일 출근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조만간 백수라는 이름표를 떼어내고 프리랜서를 선언할지도 모른다. 프리랜서가 되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수입이 발생해야 한다. 책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돈이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덤벼드는 돈을 피할 재주는 없다. 돈이 덤벼들고 말고는 지금부터 걱정하지 않는다. 꾸준함 하나만으로도 언젠가는 생활비와 월세 정도는 벌 수 있으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러면 꿈에 그리던 낙향이나 세계 일주가 가능해지리라!            


                       


쓰고 읽고 쓰다 잠들다     



요즘 나의 생활 패턴이다. 24시간 글쓰기만 생각한다. 글쓰기에 이렇게 치명적인 중독성이 들어있는 줄 몰랐다. 자면서도 글 쓰는 꿈을 꿀 정도다. 특히, 산책을 하면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글감이 떨어지거나 생각들이 진부해지기 시작하면 더욱더 산책을 나간다. 걷다 보면 많은 생각들이 정제된다. 벼가 도정되어 현미나 백미가 되듯이 생각들이 다듬어지고 아이디어도 불쑥 튀어나온다. 많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겼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철학자들은 걷지 않고 쓴 글들은 모두 헛소리라고까지 하였다. 그만큼 걷는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부수적인 선물이다. 정신이 건강해지고 생각이 정리된다. 머리가 아프다거나 글감이 마땅치 않을 때는 무조건 걸어보라. 걷다 보면 철학 공부를 하지 않고도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     


어제 일요일에는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녹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별 다방으로 출근하였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비몽사몽으로 글을 두 편 써서 브런치에 올리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별 다방에서 조퇴하였다. 대낮에 집에서 빈둥거려 보기는 처음이었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눈꺼풀이 감기는데도 낮잠은 오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TV를 켰고 두 편의 연속극을 보았다.     

 

연속극을 보면서도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는 내 모습에서 웃음이 났다. 그동안 연속극을 무시하고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스스로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속극의 시나리오가 치밀하다 못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연속극에서 많은 글감들을 발견하여 메모해 두었다. 저녁 직전에는 어제 주문한 테이블이 왔다. 조립하느라 30분이나 끙끙거렸다. 드디어 집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테이블이 생긴 것이다. 한국에 와서 처음 사본 물건이었다.      


조립을 마치고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해질 무렵의 한강을 끼고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벌써 가을이 제법 깊어가고 있었다. 억새인지 갈대인지 모르는 것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한껏 분위기를 잡아주고 있었다. 한강 건너편의 일산과 파주는 희미하였다. 한강 하류는 바다처럼 넓어져 있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이 코앞에 있었다. 1시간의 산책 동안에도 몇 개의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산책을 하다가 아이디어나 글감이 떠오르면 멈추어서 휴대폰 메모지에 바로 적었다. 그리고 멈춘 김에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쌀도 사고 쇼핑도 하면서 또 글감이 떠올라 메모를 하였다. 돼지고기가 한 참 세일 중이었다. 손님들은 몇 번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그냥 돌아섰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렇다고 한우를 사자니 너무 비싸고 미국산 소고기를 먹기도 그랬다. 호주산 냉동육을 살 수도 없었다. 이 기회에 채식주의자가 되어볼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다시 메모를 하였다. 언제부터 인간이 동물을 먹이로 먹었을까? 원시 수렵 사회부터 사냥을 통해 동물들은 수난을 당해 왔다. 같은 동물들에게 먹히는 것도 모자라 인간에게까지 잡아 먹혀야 하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동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고기되신 결국은 야채와 참치 캔을 하나 샀다. 참치는 동물 아닌가! 참 세상 어렵다.      


이사 후 집에서 처음으로 저녁을 지어서 식사를 하였다. 반찬은 없었다. 각종 쌈 채소와 참치 캔을 따서 쌈장과 마늘을 올려 쌈을 싸서 먹었다. 물론 백세주도 한잔 하였다. 처음으로 일요일 오후를 집에서 보내면서 오히려 더욱 많은 글감들이 떠오르는 경험도 색달랐다. 시간이 나지 않더라도 산책과 휴식을 빠트리지 않으려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이처럼 단순한 일기 같은 일요일 하루를 면밀히 살펴보면 일상에서도 많은 글감들이 숨어있다. 글을 쓰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중독 현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의미를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그래서 글감이 없더라도 실망하거나 초조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장 평범한 소재가 가장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 어차피 글이라는 것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써야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방법이고 그 모습이 곧 나의 은밀한 사생활이다. 글쓰기와의 동거는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죽기 전날까지만 쓰고 싶다. 자판을 두드릴 수 없으면 녹취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말이다. 죽기 직전의 나의 마지막 심경이 섞인 인터뷰마저도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아내와는 헤어졌어도 글쓰기와는 헤어질 수 없는 이유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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